고전주의 회화로부터 현대회화 쪽으로 오면서 그림의 경향에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는 데 한마디로 말하면 객관적 관조에서 주관적 왜곡으로의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대상물의 실제 이미지를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묘사했던 것에서 점차 화가 자신의 어떤 의도를 반영하기 위하여 강한 왜곡을 가하는 쪽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실제에 가깝게 대상을 표현하려고 하는 과거의 경향에서 실제의 모습에 얽매이지 않는 경향으로의 변화가 시작하는 지점에 소위 말하는 인상파 화가들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상주의 화가들의 등장 무렵에 사진기가 발명되어 활용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과거에 그림이 가지고 있던 사실적인 기록이라고 하는 역할을 사진이라고 하는 새로운 발명품이 앗아감으로써 그림은 필연적으로 다른 부분에서 그 존재 가치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미술 작품은 사진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대상의 표현에 있어서 의도적이던 아니던 다소간의 왜곡(데포르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데포르망은 크게 분류해서 형태적인 것에 있어서의 데포르망과 색상에 있어서의 데포르망 둘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보편적인 미적 기준에서 본다면 형태가 변형된 것보다는 색깔이 변형된 경우에 덜 혼란스럽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밤에는 물체의 색깔이 탈색되어 보인다거나 계절에 따라 물체의 색깔이 다르다거나 하는 등 물체 자체가 가진 고유의 색깔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을 종종 경험해 왔습니다.
그러나 형태는 그림자를 통해서 보는 경우 외에는 왜곡된 형상을 보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그런 경우의 왜곡이라고 해도 그 물체가 가진 틀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의 뇌는 형태의 왜곡 보다는 색상의 왜곡에 더 잘 익숙하도록 훈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네모 난 모양으로 그린 빨간 사과하고 동그란 모양으로 그린 파란 사과하고 어느 것이 더 이상하게 보이는가 질문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네모난 모양의 빨간 사과가 더 이상하게 보인다고 답변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형태의 파괴 내지는 왜곡을 심하게 시도하는 현대 회화가 이해하기도 어렵고 즐기기는 더더군다나 어려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에두아르 마네 등으로 시작하는 인상파 화가들은 우선 색상에서의 자유를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사물의 고유색을 부정하면서 어두운 실내에 갇힌 틀에 박힌 색깔이 아니라 햇빛이 내려 쪼이는 야외에서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하는 빛과 색의 반사를 포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니 빛과 색의 변화라는 이름으로 대상을 왜곡하여 표현하므로써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파악해 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물론 나중에 입체파 등 다른 유파는 더욱 파격적으로 형태의 왜곡을 들고 나오게 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이 시도한 색상에서의 변화만으로도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인상파 화가 중의 하나인 르노아르는 같은 인상파 화가인 세잔 등과도 다르게 형태의 왜곡은 거의 없고 단지 색상에서의 부드러운 왜곡을 통하여 대상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한 특징이 있는 화가입니다.
르노아르가 현재까지도 인기 있는 화가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여체나 밝은 야회 풍경등 일반인들이 받아 들이기 편한 통속적인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그런 이유 보다는 그의 표현 방식이 일반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는 인상주의가 기본적으로 가진 색상을 통한 왜곡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화려하고 강렬하여 다소간의 거부감을 초래할 수 있는 원색을 사용하기 보다는 원색의 배합으로 파생되는 부드러운 중간색(빨강과 노랑의 혼합색인 주황이나 파랑과 노랑의 혼합색인 녹색 등)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그림에서는 다른 화가와는 다르게 색조의 강한 대비가 비교적 적을 뿐 아니라 그런 효과를 이용할 때라도 가급적 왜곡에 의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배려하였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의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 색상 대비의 경계 부분을 부드럽게 뭉게 버리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전철 안에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연애 소설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눈에 부담이 없이 편하게 읽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렵게 역사를 따지고 분석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유쾌한 느낌이던 포근한 느낌이던 감상을 얻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은 그가 인기 있는 화가로 남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르노아르는 자화상을 그다지 많이 남긴 화가는 아닙니다.
그는 거의 대부분 풍요로운 귀부인이나 소녀의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어린 시절 너무도 가난하게 살아 온 것에 대한 반작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살아가는 이유 또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솔직하고 끊임없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림이든 말년에 빠진 조각이든.
저는 말년에 관절염으로 마비된 손에 붓을 감고 그림을 그린 그의 끊임없는 열정이 좋습니다.
"풍경화라면 그 속에 들어가 놀고 싶은 생각이 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나부라면 그 등이나 유방을 어루만지고 싶은 생각이 나는 그림을 나는 좋아한다."는 감정의  솔직함이 좋습니다.
그래서 르노아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사람입니다.
그의 꿈은 "새하얀 냅킨을 화폭에 담는 것" 이라고 했는데 오늘은 그의 몇 안되는 자화상을 감상해 봅니다.







#2 동민 등록시간 2014-05-07 11:29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르누아르.. 책으로 그림을 접했던 고등학교 시절까지 정말 좋아했던 인상파 화가였는데... 동시에 원화를 보고 홀랑 깨버린 ;;;; 인쇄본에선 부드러운 색감의 변화와 대비가 선명하게 드러나서 좋았는데 원화를 보니 완전 흐리멍텅............ 파스텔 털뭉치로 만든 사람들인건지... 실망했었죠 ^^

댓글

저는 젊을 때는 르노아르를 상당히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닌게 아니라 치열한 삶의 모습이 담긴 것 같지 않아 좀 가볍게 보이긴 하더군요. 다만 말년의 그의 치열한 화가의 모습을 보고는 좀 존경스럽기는 했습니다. 저도 그럴 수 있을지....  등록시간 2014-05-07 12:50

스마트폰 모드|진오비 산부인과

© 2005-2025 gynob clinic

빠른 답글 맨위로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