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의  일생에 있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인생의 행로를 크게 뒤흔드는  중요한 고비를 대개는 몇번 쯤 맞게 마련입니다.
그런 고비를 통해 더 나은 세계로 발전해 나가는 사람도 있고 더 나쁜 상황으로 추락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비를 어떻게 맞이하고 넘기느냐 하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그런 고비에 대한 대응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작품을 선물하느냐 하는 점에서 남다르게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소개할 화가는 두 살이 되기 전에 이미 무언가를 그려내기 시작했고, 일곱살 무렵엔 두툼한 노트 하나 가득 철도역의 기차를 드로잉 해 낼 정도로 탁월한 미술적 재능을 가졌지만 그만큼 인정 받지 못하고 불우한 삶을 산 화가 에곤 쉴레입니다.
에곤 쉴레에게 있어서 인생의 큰 고비는 세 번 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쉴레가 14살 되던 해 매독으로 사망한 쉴레의 아버지가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한 처벌로써 쉴레의 소묘들을 태워버린 사건입니다.
또 다른 사건은 그의 나이 22 세때 어머니의  고향 마을인 크루마우라는 마을로 이주하여 그림을 그리던 시절 모델을 섰던 가출 소녀가 부도덕과 꾐이라는 죄명으로 그를 고발하여  노이렌바하 감옥에 24일 간 갇히게 된 사건입니다. 이때 재판 과정에서 판사는 쉴레의 드로잉 한 점을 불에 태워 버리게 됩니다.
이 두 사건으로 하여 그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염세적 성향의 작품 세계로 빠지게 됩니다.
또한 이것이 아마 그가 남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는 성향을 띄는 작품을 다수 그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다른 한 가지 사건은 클림트의 모델이었던 발레리에 노이첼(발리)이라는 여성을 만난 일입니다.
그녀는 나중에 쉴레가 다른 여자와 결혼할 때까지 함께 살았으며 집안일은 물론이고, 쉴레의 선정적인 누드 모델 역할과 그런 드로잉들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심부름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녀로 하여 쉴레는 에로틱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근대 심리학의 발달이라는 시대적 조류도 작용하기는 했을 것입니다.
그 시기는 프로이드라는 걸출한 심리학자에 의해 인간에 있어서의 성의 중요성이 한창 부각되던 시기였습니다.
여하튼 에곤 쉴레의 그림에서 가장 큰 특징은 이런 에로티시즘이지만 그의 그림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클림트와는 구분되는 다른 요소 즉 좀 더 솔직한 고발이라는 요소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여성의 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아니면 자위를 하는 모습을 담은 경우도 있으며 전반적으로 인체의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했다기보다 어떻게 하면 좀더 추하고 혐오스럽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한 작품처럼 보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린 그림들은 자화상은 물론이고 많은 여자들의 에로틱한 포즈의 초상들조차 전혀 부끄러운 기색이 없이 관객을 쏘아 보는 듯이 정면을 향해 시선을 응시하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내가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인지 그림 속의 인물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혼동을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다른 작가의 초상들이 비스듬하게 정면을 약간 비껴 바라보는 포즈를 주로 취한데 비하면 특이한 포즈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물 사진의 경우 예쁘게 보이려면 45 도 옆 방향으로 하고 약간 상방에서 찍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엇인가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포즈를 취하면서도 정면을 향하는 시선은 관객들을 당혹케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특징이 사회 일반이 화가로써의 그를 소외시킨 이유일 지도 모릅니다.
어느 사회이든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일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그가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는 이유 또한 바로 이 부분에 있습니다.
그는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제도권으로부터 받은 모욕을 그림을 통해 관객을 조롱하면서 돌려 주는 것입니다.
그의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흡사 "그림을 그린 나나 그림을 보는 당신이나 모두 이중적이며 위선적이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많은 예술가 들이 요절하지만 에곤 쉴레도 28 세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까운 화가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 1차 세계대전 말기에 번진 악명 높은 스페인 독감으로 당시 임신 6개월이던 쉴레의 아내가 먼저 독감에 걸려 사망했고 그 사흘 뒤 쉴레도 독감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3천여 점에 이르는 드로잉과 약 3백 점에 이르는 회화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열정이 많고 치열한 내적 고민의 투쟁을 겪었는지 쉽게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고흐나 렘브란트처럼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에 속하기도 하는 데 대개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들은 불우한 생을 산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불우한 생은 그렇지 않아도 내적 고민이 많은 이들에게 그 응어리를 토해내는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응시하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래 감상 할 그림은 그의 여러 자화상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자화상으로 “겨울 버찌와 자화상”이라는 작품을 포함해 그의 자화상 몇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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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산모 [2014-05-06 15:45]  
#2 동민 등록시간 2014-05-07 11:28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에곤 쉴레의 드로잉과 드로잉 같은 회화작품들은 정말 좋습니다. 그닥 추해보이거나 혐오스럽다 생각한적은 없고요~ 드로잉에서 드러나는 거침없고 도발적인 성향을 많이 닮고 싶네요. 물론 작가 본인의 삶과 작품을 일치화 했을때 더욱 진정성 있는 작품이 나오기 때문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댓글

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등록시간 2014-05-07 15:44
두 분 모두 비슷하십니다 ㅋㅋㅋ  등록시간 2014-05-07 15:38
에곤쉴레도 심장님이 안 좋아하실듯, 하지만 뭔가 비슷할 듯? 한데 아닌가요  등록시간 2014-05-07 15:37
답글을 보고 다시 그림을 보니 동민님과 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작가의 그림은 제 취향은 아니기는 한데 자꾸 보니 예전보다는 거부감이 좀 덜하기는 하더군요. ㅎㅎ  등록시간 2014-05-0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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