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뿐 아니라 어느 누구든 이 세상에 태어나 '나는 평탄한 삶을 살았다'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을 지도 모릅니다.
평탄해 보이는 어떤 인생도 속속들이 들여다 보면 불안정하기 그지 없으며 고통스럽고 괴로운 순간의 연속입니다.
다만 가난한 자가 부자의 삶을 바라 볼 때, 아름답지 못한 사람이 미인을 볼 때, 배우지 못한 사람이 많이 배운 사람을 볼 때처럼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부분에서 만큼만 바라 보는 대상이 평탄하고 부러운 인생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모든 분야에서 전부를 완벽하게 가지지는 못했기 때문에 가지지 못한 것으로 하여 때때로 괴롭고 끊임없이 허전해 하면서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갈증은 인간의 기본적 성정이기 때문입니다.
배는 부르지만 몸이 피곤하면 배가 불러서 행복한 것이 아니고 피곤해서 괴로운 것이 인생입니다.
예술가들이란 말하자면 그런 괴로움을 좀더 강하게 느끼고 그 해결의 방법으로 운동 선수가 운동을 택한 것처럼 예술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부유한 은행가 아버지를 두었고 법과 대학을 다니면서 그림을 좋아했다면 그가 누구든 평탄한 생과는 거리가 멀었을 거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현대 미술의 장을 열었다는 폴 세잔입니다.
그도 살아 생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다른 화가들의 일반적인 특징과 그리 다를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전시회에 초대 받거나 스스로 전시회를 가진 것도 손꼽을 정도로 매우 적습니다.
다만 부유한 은행가 아버지를 둔 덕분에 고호등 다른 미술가처럼 경제적인 차원에서 고단한 생을 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두에 꺼낸 이야기 그대로 경제적으로 고단하지 않았다고 평탄한 삶을 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죽는 순간 만큼은 그는 누구나 바라는 가장 최고의 죽음을 맞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는 진행 중이던 농부 그림을 계속 그리려고 정원으로 내려 갔다가 작업 도중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 나지 못하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그런 모습은 나로써도 슬쩍이라도 흉내 내 보고 싶은 부러운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는 평탄한 삶은 아니었겠지만 불행한 예술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미술 사조상 후기인상파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그들과 다르게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대상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했습니다.
그것이 나중의 야수파나 피카소와 브라크와 같은 입체파가 생겨나게 한 견인차 역할을 한 이유가 됩니다.
그가 시도한 데포르망은 그전의 화가들과 다르게 색채분할법과 전통적인 원근법의 포기, 그리고 형태의 단순화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유난히 팔이 긴 빨간 조끼을 입은 소년의 그림처럼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은 형태에서건 색상에 있어서건 실제의 인물이나 정물 또는 풍경의 모양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형태적으로는 그는 자연에서의 모든 것을 원통과 원뿔과 구체 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으며 실제로 그림에서 게 표현했습니다.
색채적인 부분에서는 그는 풍경화나 인물화에서 원근감을 제거한 대신에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면과 면을 임의로 재조합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도한 풍경이나 정물의 해체와 조립은 자연 상태를 많이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난해하지가 않습니다.
즉 예술가나 작가들이 누리는 창조의 희열을 누리면서도 일반 대중으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는 배려.
그것이 세잔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가 그린 풍경은 일상의 풍경과는 분명히 달라 보이지만 완전히 동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인물들이 다소 기형적인 모습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의 입체파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비록 다소 빗바랜 사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과를 벗어난 것은 아니며 대신 다른 의미를 가진 사과로 보이게 됩니다.

데생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아그리파나 줄리앙 등의 석고 모델을 대상으로 데생을 하지는 않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연습은 정육면체나 원추 등의 모양을 가지고 하지만 보통 최소한의 기본기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대안면이라고 하여 비교적 단순한 음영인 예수의 반면상을 모델로 데생을 시작합니다.
유화 물감을 처음 시작하는 아마추어들에게도 어느 화풍을 추종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는 흔히 세잔을 답습하는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가 바로 현대 회화의 시작 테이프를 끊은 화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정물화를 많이 그린 화가이며 이해하기 쉬운 그림을 그린 점도 큰 이유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개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가장 쉬운 것은 정물이라고 하며 그 다음이 풍경이고 제일 어렵다는 것이 인물화입니다.

화가들에게는 유독 집착을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모딜리아니가 인물 특히 여성의 얼굴을 고집한 반면 세잔에게 그것은 사과였습니다.
세잔이 파리로 유학을 떠날 때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자화상도 많이 그렸고 고향 마을인 액상 프로방스의 풍경도 많이 그렸지만 무엇보다 사과를 많이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정물화 중 대부분의 그림에는 사과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세상에 유명한 세개의 사과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튼의 사과, 그리고 세째가 세잔의 사과라고 합니다.
아참 요즘은 아이폰과 애플 컴퓨터를 만든 스티브 잡스의 사과까지 포함해 4개의 사과가 세상을 바꾸었다고 말하곤 하죠. ^^
여하튼 이브의 사과는 인류의 기원을 열였으며 뉴튼의 사과는 과학의 세계를 열었다. 그리고 세잔의 사과는 현대 예술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이 세가지는 인간 세상의 기본을 형성하는 세가지  큰 특질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의미로는 세잔이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에게 사과가 갖는 의미가 크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가 이젤을 메고서 생 빅트와르산을 스케치하러 다녔던 길은 ‘세잔 루트’로 명명되어 있다고 하는 데 그는 생전에  "나는 무척이나 천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끝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끝이 없는 길에 선 화가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런 끝이 없는 나만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아래에 감상할 그의 자화상들 중 맨 위의 그림은 그가 많이 그렸던 자화상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그의 나이 40 세 무렵에 그린 것입니다.
현재  모스크바의 푸쉬킨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2 동민 등록시간 2014-05-07 12:07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부유한 은행가 아버지, 법대생, 그림을 좋아하는--> 이 세가지로 봐서는 머리좋고 집안 빵빵한 도련님이 고상한 취미생활도 하고 있는듯한 이미지인데, 세잔은 저 세가지를 모두 가졌으면서 그림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에 불행이 시작되었던거군요. ㅎㅎ (갑자기 남편의 고등학교 친구분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미술반을 기웃거리며 그림을 끄적이기도 하고 남편이 그림 그리는걸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았으나, 시골동네가 주목하는 수재라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S대 법대에 진학했다더군요. 승승장구 할 줄 알았는데, 수년 후 뭔가 반쯤 정신이 나간듯한 행색으로 고향동네를 배회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어쨌든 경제적으로 크게 시달리진 않았을테니. 그래서인지 고흐나 쉴레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원초적인것의 결핍에서 오는 불안함, 절절함 같은 느낌은 그닥 안느껴집니다. 그 유명한 사과 그림, 무수히 설명을 들어도~ 그래 무슨말인지 이해는 가는데 뭐 그림이 크게 와닿지는 않아. 이런 느낌이랄까? 뭔가 약간은 계산이 들어가 보이는 그림. 그래서 왠지 어색해 보이는 그림 보다는 전 힘차고 자유로운 (자유로워 보이는) 청량감이 느껴지는 그림이 좋습니다. 스스로 그러지 못하기 때문인지는 알수 없으나 ㅎ

댓글

회화과 친구들도 세잔, 샤갈에 대해 언급을 많이 하던데 전 별로 ....  등록시간 2014-05-07 15:25
역시 동민님 취향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도 긴 팔의 소년도 그렇고 세잔의 그림이 별로 와 닿지는 않는데 미술반 선배들은 교조처럼 모시더군요. ㅎㅎ  등록시간 2014-05-0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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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덕 [2014-05-0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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