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렉은 고호와 마찬가지로 37 세에 요절하여 불행한 삶을 살다간 화가치고는 많은 그림 특히 인물화를 남긴 화가입니다.
소묘든 데생이든 석판화든 유화든 다양한 방법으로 그가 그리고자 한 주제는 건강한 인간의 모습이었고 왕성하게 삶을 살아 나가는 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몸이 자유롭지 않았던 로트렉은 움직임이 없는 풍경이나 정물은 거의 그리지 않았으며 말과 같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나 무희들의 모습이 주로 그가 그린 대상입니다.
즉 그는 그가 가지지 못한 완전한 육체의 아름다움을 외부에서 찾았으며 그런 것들을 묘사함으로써 자신이 가지지 못한 갈증을 채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에게 그림이란 현실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하여 그림이라는 가상의 세계 속에서 꿈꾸어 볼 수 있는 완전한 육체에 대한 그리운 갈망을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1864 년 프랑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12 세와 13 세에 연이은 사고로 다리가 골절되어 성장이 멈추었으며 평생을 152 cm의 왜소한 체구로 살았는데 얼굴은 지나치게 큰 코로 기형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불완전한 모습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 심지어는 아버지로부터도 외면을 당하였으며 아무도 그를 위해 사랑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림과 여자 외에 독한 압상트 술로써 슬픔을 달래려고 한 그의 생활을 보면 아마도 자기 자신조차도 제대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햇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육체적인 허약함은 사촌 지간이었던 양부모의 근친 결혼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왜소증은 아마 어릴 때의 사고가 주원인일 것입니다.
육체가 한 인간의 정신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육체와 정신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함께 붙어 다니면서 서로에게 동전의 양면처럼 구속을 합니다..
아마도 그에게 못마땅한 육체는 평생 증오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이 그의 정신도 피폐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증오란 다른 사람에게 향했을 때도 괴롭지만 자신의 내부로 향했을 때는 매우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며 이런 사람들은 흔히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소극적 의미의 자살과 사실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고호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과 무절제한 생활로 성격파탄에 이르고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다가 1901 년 결국 37 세의 나이로 어머니 품에서 요절하게 되고 맙니다.
로트렉의 모습을 상상하면 영국 신사계급에서 절름발이로 태어난 남자가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겪는 험난한 경험을 다룬 서머셋 몸의 자전적인 소설 "인간의 굴레"에 나오는 주인공인 필립 캐리를 생각나게 합니다.
소설에서 그는 불행했던 소년 시절과 다리의 불구로 고통을 받고 그럼으로써 비뚤어진 성격을 갖게 되며 사랑하는 여성과의 사랑도 이루지 못합니다.
몸의 소설에서 주인공 캐리는 종교적 의무감과 행복에의 집착을 포기함으로써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데 로트렉에게 그것은 그림을 통하여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비록 완전히 성공해서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영국 시인 버틀러 예이츠의 경우 육체적인 결함으로 고통을 받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여인 모드곤으로부터 사랑도 이해도 받지 못하는 지독한 상실감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그의 아름다운 시들을 탄생케 한 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육체적인 것이던 정신적인 것이던 강렬한 고통이 한 화가나 시인의 탄생에 꼭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로트렉이 사고로 불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그 많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마주하게 되었을지에 대하여는 회의적입니다.
아마 불구가 되지 않고 정상적이었다면 결코 고통을 덜어 내기 위해 몸부림 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다른 평범한 귀족들처럼 평탄하고 화려한 생활을 한 이름 모르는 프랑스의 한 지방의 귀족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그의 불행을 초래한 육체적인 고통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혼동스럽기도 합니다.
로트렉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1891년 파리에 게재된 카바레 "물랑루즈"의 포스터입니다.
로트렉은 자신이 가장 좋아한 거리 몽마르뜨에 정착해서 여러 술집과 사창가, 카바레 등을 전전하면서 회화와 일러스트 그리고 포스터를 그리게 됩니다.
요즘으로 보면 디자이너에 가까운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도 대부분 디자이너들은 낮보다는 조용한 밤에 자신의 구상을 작품으로 만들지만 그 당시 로트렉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밤의 산책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밤이라는 것은 낮의 반대이고 밝은 것의 반대이며 완전한 것의 반대이고 건강한 것의 반대이며 아름다운 것의 반대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려낸 밤에 속한 것들은 더럽고 추하고 불완전하기 보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솔직하고 아름답고 건강해 보입니다.
그의 그림의 의미가 가볍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의 추함과 괴로움을 담담한 필치로 나타냄으로써 오히려 슬픔 가운데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묘파해 내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의 아름다움처럼.
그러나 아름다운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기쁘고 황홀하기 보다 애잔한 슬픔이 밀려 오는 것은 다소 처량해 보이는 흰색을 입은 사람들을 많이 그린 그의 그림의 색조적 특징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긴 세월을 넘어 생생하게 다가오는 그의 인생의 외로움 때문일 것입니다.
내 마음의 위안을 위해 그가 살다간 인생은 슬프도록 짧은 생이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만큼은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아래 자화상 중 의위 것은 유화로 그린 로트렉의 초기 작품이며 그의 나이 16 세 때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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