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짐승이 되어 그들과 함께 항상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짐승들은 저다지도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하는 것을.
나는 서서 오랫동안 짐승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 조건을 역겨워 하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캄캄한 밤에 일어나 죄를 뉘우치며 우는 일도 없다.
하느님에 대한 의무를 논하며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뭇 짐승들중 어느 한마리도 불만을 느끼지 않고
소유욕의 광기에 사로 잡혀 있지도 않다.
어느 한마리도 다른 짐승에게 무릎 꿇는 일이 없고
수천년 동안 살아온 종족에게도 무릎 꿇지 않는다.
지구 상의 어느 한 마리도 명예를 가지고 있거나 불행하지도 않다."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론"이라는 책의 서두에 나오는 월트 휘트먼의 시입니다.
러셀은 자신의 책 "행복론"에서 인간에게 불행이 초래되는 원인으로는 근본적으로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 보는 바이런적 불행으로 인한 것부터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 인한 것, 권태와 자극으로 인한 것, 피로나 질투 혹은 죄의식으로 인한 것, 피해 망상이나 여론에 대한 공포로 인한 것 등 여러가지의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부는 사회제도에, 일부는 개인의 심리에서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 글에서 보는 것처럼 행복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남자나 여자는 피할 수 있는 불행과 피할 수 없는 불행, 병과 심리적 갈등, 투쟁과 가난과 악의로 가득한 세계에서 각 개인에게 맹공을 퍼붓는 불행의 무수한 원인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서 그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가져야 할 방향으로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가능한한 폭 넓은 관심을 가져라. 그리고 가능한한 당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물이나 인간에 대해 적대적이기보다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라"

그의 행복론은 얼핏 보면 아주 평범하고 짧고 단순해서 스쳐 지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어렸을 적부터 "죄에 싸인 몸이 세상에 지치어"로 시작하는 찬송가를 좋아했고 사는 동안 삶의 권태를 견디기 쉽지 않았으며 숱한 자살 유혹을 수학에 대한 열정으로 간신히 극복했다고 하는 고백으로 볼 때 그가 주는 교훈이 그저 아무 생각없이 튀어나온 입에 발린 소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집착하여 편견을 갖기 보다는 시야를 넓은 세계로 돌려 우주가 주는 환희를 즐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렇게 하면 죽음을 생각할 때 조차도 크게 괴롭지 않다고 책의 말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감안하여 그리고 제 의견도 약간 섞어서 행복이라는 것을 그가 좋아한 수학적 표현으로 나타내자면 저는 아인슈타인의 공식처럼 H=E*L²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H는 행복이며 E는 노력, 그리고 L은 하나는 나에 대한 사랑이고 하나는 외부(사물이나 사람 혹은 어떤 활동)에 대한 우호적 관심 혹은 사랑입니다.

저는 사실 러셀의 생각처럼 행복이 노력만 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나 자신과 나의 결점에 무관심해지고 외부의 대상으로 관심을 돌리고 우호적 반응 즉 애정을 가지면 쉽게 얻게 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외부에 대한 관심은 고통을 수반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로 그런 고통은 삶의 본질을 파괴하지 않고 권태를 막아주는 어떤 활동을 일으킨다고 하는 데 그런 활동이 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표현한 공식이 얼마나 행복에 근접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저도 행복해 지고 싶은 많은 사람 중의 하나이고 보면 행복이 운명에 의해서보다는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휘트먼의 시처럼 불행을 느끼지 않기 위해 짐승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보다는 외부에 대한 관심이 때때로 고통을 동반할지라도 인간으로 살면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배부른 돼지가 되기 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어떤 이가 한 말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2 동민 등록시간 2014-05-08 01:19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적대적이기 보다는 우호적인 반응. 전 제가 관심을 가진 대상은 물론이고 저에게 관심을 가지는 대상조차 의심하고 살펴보고 경계하면서 살아왔던것 같습니다. 혹여 관계가 틀어졌을때의 충격이 두려워 그랬던서지요. 30이 넘어서야 조금씩 후회가 되더군요. 내가 좋아했던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더 많이 웃어주고 적각적으로 호감을 표현했다면 삶이 훨씬 재밌고 풍요롭지 않았을까.... 하고요.

댓글

사람이란 성격이든 취향이든 관심사든 어느 누구도 완전히 같을 순 없으니까 조금은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전 그런 점에서 젬병이긴 하지만.ㅋㅋ  등록시간 2014-05-08 02:00
그런데 또 제가 원치 않은 관심에 대해선 정말 어떻게 대처를 해야하는지...심지어 걷잡을수 없는 분노까지.. 그래서 필요이상으로 경계를 했었습니다. 앞으로는 과연 어떨지..  등록시간 2014-05-08 01:32
저처럼 잘못 사셨군요. 적대적인 사람에게야 그렇게 하기 어렵겠지만 우호적인 사람에게는 믿음과 사랑과 관심을 주었어야 하는데.....  등록시간 2014-05-08 01:24
#3 땅콩산모 등록시간 2014-05-08 01:20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외부에 관심을 갖을 수 있는 건  정신이 건강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전...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습니다 ^---^V
굳이....소크라테스가 되려면 배를 곯아야 하나요 ;;;;

댓글

그렇긴 하지만 스님이 아닌 다음에야 모든 욕심을 내려 놓을 수는 없는 일이죠. 너무 욕심을 많이 갖지 말라는 거지 성철 스님같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님. ㅎㅎ  등록시간 2014-05-08 01:31
행복에 대한 욕구도 욕심의 일종일텐데요....^^  등록시간 2014-05-08 01:27
욕심이 많으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행복론을 쓴 사람도 있는디요? ㅋㅋ  등록시간 2014-05-08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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