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은 어린 시절에 남자는 오이디프스 컴플렉스, 여자는 엘랙트라 컴플렉스를 거치면서 여자는 아빠를 사랑하고 남자는 엄마를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랑이 대부분 이상적인 이성의 모습으로 자신의 내부에 자리잡게 되는데, 융은 이러한 이상적인 연인상을 곧 자신의 일부로 보고 그것을 아니마, 아니무스라고 부른다.
아니마는 남성속에 있는 이상적인 여인상이고, 아니무스는 여성속에있는 이상적인 남성상이다.
우리가 이성을 만나 배우자를 삼는다는 것은 사실은 어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자신의 여성성(여성에게는 남성성)인 바로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우리들의 이상형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불리워지는 것들이다.
점성학에 따르면, 자신의 태양궁으로부터 120도 각도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불(사자, 사수,양), 물(게, 전갈, 물고기), 바람(물병, 쌍둥이, 천칭), 흙(황소, 처녀, 염소) 자리의 사람들은 서로 같은 기질을 가졌기 때문에 눈빛만으로도 서로 잘 통한다.
이들은 그들의 의식과 의식에 가장 가까운 무의식 부분이 공통을 이루기 때문에 매우 친근하고 편하다.
이들이 부부를 이룬다면 안락함과 평화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안락함이란 바로 에너지의 이동이 없는 죽음의 상태이고 이것은 무기력하고 우울증을 만들어내는 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자신의 태양궁으로부터 60도 각도를 이루는 별자리의 사람들은 대부분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약간의 서로 다른 부분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같이 있으면 서로에게 많은 발전을 끌어낼 수 있고, 일생동안 많은 발전을 기대 할 수 있다.
자신의 태양궁으로부터 정반대 쪽에 있는 즉 180도를 이루는 별자리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사람들인데 동전의 앞뒷면이 바뀐 것 같아서 사실은 매우 비슷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 또한 서로 매혹적으로 끌리게 된다.
또한 자신의 태양궁으로부터 90도 각도에 있는 사람들은 고집불통은 고집불통끼리, 우유부단은 우유부단 끼리, 기회주의는 기회주의자끼리 만나는 관계이므로 대립과 충돌이 자주 일어난다.
얼핏생각하면 서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원앙처럼 만나서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력의 에너지이며,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살았던 화성인들과 금성인 모두 결국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무기력하여져서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기억하자.
진정한 행복이란 작은 만족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작은 만족들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생이란 단 하나의 탄생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인생에 대하여 배우려고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제사지낼 때 지방문을 보면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쓴다.
그렇다.
우리 모든 인간은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학생이다.
모든 인간은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지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Self라고 부르는 인간의 참 자아를 찾기 위하여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많이 다른 사람에게서 더욱 더 많은 것을 배울 기회를 얻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아니마, 아니무스를 가지고 있던지 그것은 우리가 극복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산 일뿐이다.
하나의 아니마 상에 만족하여 산사람은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아니마의 영역을 확대시키는 데에는 실패하는 사람이다.
그는 어느 시절까지는 행복할지 모르나 참 훌륭한 인생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모든 아니마, 아니무스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한 아니마가 좀더 확대된다면 우리는 생을 통하여 좀더 폭넓은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배우자를 선택하였거나, 자신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는 배우자를 선택하였거나 이 모두는 자신의 영혼이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스스로의 확신과 스스로의 희망에 따라 선택한 것들이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란 배우자를 통하여 자신의 아니마의 전체의 상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역량에 따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모든 배우자를 선택한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였건 그것은 불리한 것도 유리한 것도 아니다.
각자 최선의 선택을 하였으며, 자신의 역량이 미칠 수 있는 한계까지 설정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단 하나,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삶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공한 삶이다.
우리들의 아니마, 아니무스 상은 오랜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나이 40정도에 이르면 드디어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가정에서 40이 넘는 남성들은 유순해지고, 40이 넘는 아내들은 드세지는 것이다.
유교사회에서도 여성들의 권위와 힘이 발휘되는 시기는 대략 40세 정도였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행하고, 부부관계에서도 실제적인 힘을 가지는 시기는 바로 그 나이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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