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겨울 다음에 봄이 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겨울 다음에 또 다른 숨어 있는 계절이 있는 것을 알았다
가슴이 아픈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회색 빛깔 계절
가슴에서 흐르는 무언가가 불러 오는 계절
눈을 가늘게 뜨면
그 계절은 희미한 모습으로
저만치서 온다
약간의 슬픈 감정과 약간의 외로운 감정과 약간의 허전한 감정의 누더기진 옷을 입고
당당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거지처럼
내 마음의 허름한 빈 곳을 용케도 찾아 낸다
겨울보다 춥지 않지만 더 춥고
봄보다 메마르지 않지만 더 메마르고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도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계절
사람들은 그것을 희망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 계절의 모습은
오지 않는 자의 기다림이고 눈뜨지 않는 자의 빛이며 들리지 않는 자의 외침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희망이라는 다리가 놓인 이 계절은 어떤 이에게는 얕고 어떤 이에게는 깊은데
이 계절의 얕은 강을 건너는 자에게 봄은 희망을 지나서 오지만
그 깊은 강에 빠진 자들은 희망은 하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에게 봄은 영원히 오지 않으며 겨울 다음에는 봄을 흉내낸 겨울이 올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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