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맞습니다. 박사님. 저도 이런 노을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박사님도 이러한 노을을 한번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
전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지만 상상을 통해 표현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한번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윌리엄 터너가 했다는 말인데 그림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에 대하여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그림이나 음악을 통해서 아니면 글이든 말이든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중에 자연의 경이로움---실제 존재하는 것이든 상상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든---도 하나쯤 넣어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고전주의 화가들이 주로 인물이나 성서 속의 내용을 묘사한 반면에 미술 사조가 자연주의와 낭만주의 쪽으로 넘어 오면서 당연히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이 늘어 났습니다.
풍경화가들은 그런 자연의 경이로움을 그저 스치듯 흘려 보내기 어려워서 사랑에 빠지듯 그 모습에 무작정 빠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터너도 그런 화가 중의 하나입니다.
터너의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정신 이상으로 그가 어릴때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그래서 10 살 때부터 삼촌에게 보내져 그림 공부를 했다고 하니까 그리 유복한 환경에서 그림을 시작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재능은 주머니에 넣은 송곳처럼 감추어지지 않는다고 하듯이 그도 21 세에 유화를 전람회에 출품하고 24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벌써 영국 왕립 아카데미 준회원이 되었다가 27세에는 정회원에 선출되어 대가들과 견줄 만한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는 이후 30 여회에 걸쳐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석양이나 항구, 눈보라, 기선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다수 그렸는데 1만 9천여점의 수채화와 300 여점의 유화로 남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수채 화가로서 더 이름이 높은 화가이며 다작을 한 화가 중의 하나입니다.
재능에 못지 않게 그가 그림에 쏫은 노력도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는 그 많은 곳을 여행 다니면서도 기차를 타고 다니기 보다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밀한 부분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흡사 이가 빠진 동그라미가 빠진 이를 얻어 빨리 구르면서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게 되니까 도로 이빨이 빠진 채로 주위의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천천히 돌아 본다는 어떤 시를 생각나게 하는 모습입니다.
터너는 풍경화가 많은 네덜란드 그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이 풍경화이며 인물은 잘 못그렸기 때문에 그린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가 그린 자화상도 여기 올린 것이 유일한 것입니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예술 이외의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풍경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낭만주의 풍경화의 대가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사실 두명의 여인이 있었고 아이도 있었다고 하며 76세 사망했으니까 명예와 부라는 점에서 그리 서운하지 않은 삶을 살은 편입니다.

그의 그림의 특징은 형태를 다소 무너뜨리면서도 전체의 분위기를 회화적으로 잘 살려낸 데 있습니다.
그는 낭만주의 화풍이 그렇듯이 객관적인 측면보다는 주관적인 감상을 중시하고 지성보다는 감성을 존중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보면 무언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가슴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일어나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의 말로는 이런 예술 활동의 원천은 신비로운 자연을 묘사하고픈 단순한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인 감정이 인종과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역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이라고 하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네의 일기가 아니더라도 일기를 포함하여 편지등 여러 작가의 내밀한 기록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만으로 그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림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든 어느 단면만으로 한 인물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해하고 나서 몇마디의 말로 그를 평가하라면 더욱더 어려운 일입니다.
심지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그렇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언제 태어났고 어디에 살았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다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하는 것은 하나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세상을 살때는 우리가 흔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지만 결국 나중이 되어 어떤 평가의 대상이 되었을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고흐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올랐는지 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평가하고 예술가로서의 그를 평가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에피소드는 단지 그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물에 대하여 극명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종의 캐리커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만드는 에피소드를 한가지씩 가지고 있는 화가들이 종종 있습니다.
윌리엄 터너의 다음 에피소드도 그런 부분에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그가 작품 '눈보라' 라는 그림을 그릴 때의 에피소드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악천후 속에 마차를 타고 알프스를 넘다가 마차가 전복되자 안내원과 마부가 서로 네 탓이라고 싸우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터너는 신경을 쓰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에게는 살을 에는 추위는 그가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으로 하여 그냥 시원함처럼 느껴질 뿐이고 주변의 번잡스러움은 아무런 방해를 할 수 없는 조용한 환경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에 열정적으로 빠진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에게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불에 타는 자연이 아름다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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