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면서 가끔 의사라는 존재에 대해 문득 돌아 볼 때가 있습니다.
의사 생활도 벌써 20년도 더 넘었지만 돌아 볼때마다 역시 아직도 의사란 무엇인지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세월이 지날수록 더 안개 속을 헤미이는 것 같습니다.
의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혹은 어떤 사람들인가 ?
주변의 다른 선배나 동료, 후배 의사들을 둘러 보아도 천차 만별이라 한가지로 모양을 단정해 버릴 수가 없고 어떤 모습이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인지 조차도 모르겠습니다.

경제적인 안정과 사회적인 지위가 보장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하나 ?
아니면 아픈 이들을 위하여 봉사를 하기 위한 희생적인 삶의 슈바이처 ?
또는 질병이나 인간의 몸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자 아님 근사하게 말해서 프로페셔널 ?
환자를 치료하여 완쾌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의 보람과 자부심으로 사는 자유인 ?
어느 것일까요 ?

몇년간의 의사 생활로 많은 돈을 벌어 빌딩을 올렸지만 주변의 환자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머리가 하얗게 쇤 선배 의사의 모습을 볼 때,
가난하게 아직도 전세방에 살면서 환자를 위한 봉사의 삶을 산다고 자부하는 존경하는 동료 의사가 많은 환자들에게 잘못된 의료 기술과 편견으로 오히려 환자의 건강과 의료 환경을 헤치는 모습을 볼 때,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또는 전문의 자격을 딴 후로 의학 서적은 읽어 본적이 없이 개업하면 책은 장식품이 되는 어느 의사의 모습을 볼 때,
실력도 있고 환자들께도 친절하다고 생각하면서 보람에 살던 후배 의사가 병원의 경영이 어려워서 어느날 문을 닫고 아내로부터도 이혼 당하였다는 소리를 들을 때,
어느 모습이 의사의 원래 모습인지 모습이어야 하는 지 또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건지 선택하고 싶은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아이의 눈으로 고개 돌려 되돌아 봅니다.

오만한 자부심일지언정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한다는 젊은 날의 열정도 이제는 많이 없어지고 하늘을 향해야 하는 머리는 잊어 버리고 땅을 딛고 있는 발만 내려다 보고 살아도 괴롭지 않을 만큼 냉정하지도 못한 나이에  무엇이 내게 의사로 계속 살게 하는 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페달이 멈춘 자전거가 얼마간 그냥 굴러 가듯이 젊은 날의 열정이 떠밀어 준 관성이 아직 남아서 일까요 ?
아니면 젊은 날의 사랑은 식었다 해도 잔잔한 노년을 즐기는 노부부처럼 냉정도 알고 보면 따뜻한 속알갱이가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어서일까요 ?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은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열정과 냉정의 사이.
아니 어쩌면 희망과 절망의 사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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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산모 [2014-05-1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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