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주변 선생님들과 모임이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치과 선생님께서 환자 중에 보철을 하면서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항의를 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런 경우에 본인은 이렇게 대답을 해준다고 하더군요.
"일 이년에 한번씩 사서 쓰는 신발이나 가방은 외제로 수십만원이나 하는 비싼 것을 아무 군소리 없이 사 쓰면서 평생 쓰는 이에 대해 한번 하는 보철 치료비로 일이백 만원 쓰는 것을 아까와 하면 되겠느냐"고 말이지요.
그 말씀을 듣고 산부인과 의사인 저는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츨산도 여성으로서 평생에 한번이나 두번 밖에 겪지 않는 일이지만 수백만원 씩이나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으니까요.
정상 분만을 해서 퇴원하면서 내는 비용은 병원에 따라 또 입원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이삼십 만원 많아야 사오십만원 정도 수준입니다.
그러나 그나마도 내용을 알고 나면 허탈한 마음뿐인데 정작 분만비 자체는 초산인 경우 4만 7천원 경산모인 경우 3만 6천원이고 이삼십만원 차지하는 병원비의 대부분인 나머지는 방값이나 식비로 의료 외적인 서비스에 부가된 비용입니다.
말하자면 의사가 대여섯 시간 심지어는 열 몇시간 씩 대기하고 산모를 진찰하고 분만을 도왔을 때 순수하게 분만을 하고 받도록 된 비용은 분만비 4 만원 정도와 회음절개비 1 만 9 천원 합해서 6 만원 내지 7 만원 정도라는 겁니다.
총 받게 되는 비용인 이삼십 만원도 의료 사고라도 발생하면 물어야 하는 수천 수억의 배상비에 비하면 서글플 정도로 작은 돈인 데 그나마도 순수한 의사의 기술료는 10 만원도 안되고 대부분 밥값, 방값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일반인들이 아는 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입원한 산모가 병원에서 먹는 밥값이 육칠천원 씩이나 주고 사먹기에는 너무 터무니 없이 비싸니 집에서 해다 먹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주변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어이없이 웃으면서 말씀하시더군요.
또는 흔한 것은 아니지만 출산 당일로 바로 퇴원해서 병실료를 아껴 보고자 하는 산모도 있었는 데 정말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면 의사로써는 분만하고 10 만원 안팍의 비용만 벌게 될텐데 간혹 발생하는 의료 사고가 안 생긴다하더라도 최소한의 운영비를 감당할 수 있는 병원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퇴원하는 산모의 분만비 계산서를 적으면서 서글픈 것은 총비용이 너무 적어서 항상 병원 운영을 걱정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불하는 대부분의 비용이 방값과 밥값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산부인과 의사로서 수고한 댓가인 분만 개조비가 대부분이 아니라 그것은 아주 사소한 액수이며 오히려 많은 비용이 부대 서비스에 따른 비용이라는 것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이지요.
아니 배꼽에 비하여 배가 너무 작다는 말이지요.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분만하고 내는 이삼십만원의 전체 병원비나 순수한 분만 개조비 삼사만원은 우리의 국가 경제적 수준이나 의료 서비스의 질로 볼 때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정당하게 분만비나 기타 치료와 관련된 비용을 적절한 수준으로 책정해서 의사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할 텐데 그렇게 하면 의료 보험에서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까 국가에서는 지금처럼 숫가를 책정해 놓으므로써 소액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일반 숫가인 병실료 등에서 보상하도록 만들므로써 의료 이용자인 환자나 산모들이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해놓은 것입니다.
결국 그럼으로써 일반 국민은 특별히 다른 특수한 서비스를 받은 것이 아니고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고 의사는 의사대로 자신의 노동에 대한 떳떳한 댓가를 정당하게 받지 못하고 굳이 방값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비정상적인 수입원을 통하여 보상을 받을 수 밖에 없도록 내몰므로써 어떤 점에서 돈이나 벌기 위해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는 도둑놈 집단처럼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제 동생처(제수씨)가 모 대학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했습니다.
자연 분만을 해서 2박 3일 만에 퇴원하면서 총 50 몇만원인가의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내외가 의아해 하는 점은 진찰 때는 특진을 했지만 분만시는 야간이어서 특진을 했던 교수님이 분만을 받지도 않고 전공의 선생님이 분만을 받았는데도 왜 특진 신청 항목에 싸인을 하라고 했는지 그리고 입원시에는 보험이 된다고 알고 있는 태아 전자 감시 검사를 비보험으로 처리하는지 또 오물 처리비 및 청소비나 좌욕비 등 기본적인 입원료 항목에 포함되어 있을 것 같은 비용을 일반으로 따로이 청구하는 지 하는 점이었습니다.
전문가인 제가 보기에 동생 내외가 지적하는 점은 모두 적절한 지적이었습니다.
당연히 특진 청구도 할 수 없으며 비보험으로 처리해서도 안되는 항목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대학 병원이 왜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지 저도 답답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동생 내외가 지불한 병원비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다고 해야 하겠지요.
최고의 시설과 인력을 갖춘 대학 병원에서 2박 3일 씩이나 있었는 데 그 정도면 아주 적은 비용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그런 총 비용을 맞추기 위해서 청소비하며 진료 하지도 않은 특진비하며 왜 그리도 구차한 방법을 사용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비용을 합법적으로 청구하면 액수가 너무 작아 병원 경영에 지대한 손실이 있을 것 같으면 정당하게 주장해서 찾을 것은 찾고 올릴 것은 올려야지 힘없는 개인 병원도 아닌 대학 병원이 그런 편법을 쓴다면 이런 잘못된 제도는 영영 고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떳떳이 법에 정한 것만 받아서 운영을 해보고 그렇게 하는 데까지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병원 문을 닫도록 하면 그리고 그런 병원이 많다면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라도 알려지지 않겠습니까?
의료 보험 숫가가 너무 작다느니 병원 경영이 어렵다느니 하면서 많은 의사들이 항의하면 정책을 책임지는 공무원들이 흔히 드는 주장은 그렇게 숫가가 적어서 경영이 어렵다면 경영 악화로 문을 닫는 병원들이 많아야 할 텐데 왜 그런 병원이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많지만 누구도 희생양이 되기 싫어서 편법으로 다 피해 가니까 문제가 부각되지 못하고 해결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 의약 분업 사태도 본질은 이런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잘못된 관행과 그 제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고 안으로 곪아 있었기 때문에 결국 밖으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저도 의사로서 사실 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망해서 문을 닫으면 의사가 오죽 못났으면 그렇게 되었을까? 얼마나 불친절하고 실력이 없으면 그리고 방만하게 경영을 했으면 망했을까? 하고 손가락질 할테고 그런 소리는 자존심 강한 의사로서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같은 고객 우선 주의 시대에 권위적이고 보수적으로 대처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들 말할텐데 실제 실력이나 경영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제도를 제대로 지키려고 노력하다가 그리 된 것이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리고 꼭 망해야 만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 준다면 자살을 해야만이 결백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되어야만 문제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죽기전에 알아 주었으면, 선량한 의사가 망하기 전에 고쳐 주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물론 동료 의사나 제 자신에게는 그런 주장과 다짐을 합니다.
"잘못된 제도이지만 정해 놓은 원칙대로 지켜보고 안되면 편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망하는 의사도 있어야 한다, 우리와 같은 젊은 의사들은 올바른 처신을 하지 못한 선배를 흉내 내지 말고 망하는 것을 목표로 원칙을 지켜보자"는 주장을 합니다.
우스운 말이지만 그래서 저는 망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물론 아직도 못 망하고 있어서 부끄럽지만.
잘못된 제도가 뿌리 내리는 동안 망하는 병원도 많이 있었다면 지금 젊은 후배 의사들이 양심을 택할 것이냐 생존을 택할 것이냐 하는 힘든 갈등의 구렁에서 고생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지금 죽어야 산다는 자세로 망하기를 각오하고 소신껏 꿈을 펼쳐 나가는 병원 어디 없습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