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성적 특성과 가치적 특성

모든 사물이나 존재에는 물성적 특성과 가치적 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술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면 몇 % 인가의 알콜과 대다수의 물로 구성된 액체의 물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즐거울 때나 또는 괴로울 때 마셔서 고민을 잊게 하고 긴장을 이완 시키는 물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자는 술의 물리 화학적 특성을 묘사한 것으로 물성적 특성 또는 외부적 가치라고 할 수 있으며 후자는 술의 존재 가치를 묘사한 것으로 가치적 특성 또는 내재적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물성적 특성과 가치적 특성을 같이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어떤 것은 물성적 특성에 의하여, 어떤 것은 가치적 특성에 의하여 그 존재가 평가 받을 것입니다.
길 위에 구르는 돌 하나도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 쓰임새 없는 작은 돌맹이 하나가 어떤 가치적 특성(내재적 가치)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것은 돌이라고 하는 물성적 특성(외부적 가치)으로만 평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의사는 가치적 특성(내재적인 가치)에 의해 존재 의미가 있는 대상일 것입니다.
의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 보았을 때 흰 가운을 입고 고객(환자)을 맞으면서 돈을 받는 만큼 웃음이던 친절이던 모종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하는 물성적 특성인 외부적인 가치로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란 댓가에 상관없이 고통에 있는 사람 곁에 있으면서 고통을 들어 주거나 아니면 약을 이용하여 또는 수술을 이용하여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애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즉 보편적인 사람이라면 의사의 내재적인 가치로서 의사를 생각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란 그러한 가치적 특성에서 누구보다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간의 돈을 댓가로 받고 서비스로 치료를 제공한다는 물성적 특성(외부적 가치) 측면에서만 본다면 산부인과는 아주 보잘 것 없고 누구도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에 빠져 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옆에 있으면서 고통을 나누고 그럼으로 보람과 희열을 느끼는 가치 특성적 측면(내재적 가치) 측면에서라면 산부인과 만큼 좋은 직업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누군가가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면 그는 매우 보잘 것 없는 물성적 특성을 선택할 수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매우 높은 가치적 특성 때문에 일부러 선택하여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은 그러한 가치적 특성이 높은 점 때문에 아직껏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의료 칼럼니스트는 병원에서의 친절이란 인사 잘 하고 웃어 주며 생일날이면 카드를 보내고 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쉽게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인데 저는 출산에 있어서 산부인과 의사란 진통으로 괴로워 하는 산모 곁에 있으면서 그 힘든 고통을 이해하고 도와 줄 일이 없을까 고민하고 빨리 산모가 이 순간을 이겨 나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산모 옆에 같이 있는 사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이면서 그 분야에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나 다른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너무 나쁜 물성적 특성 때문에 얼마나 오래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어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로써야 이 일을 하는 동안 만큼은 존귀한 직업으로 생각하여 제 능력이 닿는 한 산모의 순산과 고통에 있는 여성 환자의 건강 증진을 위하여 애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이나 웃음 등 외부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의료의 근본적인 존재 가치인 내재적 특성에서의 최선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따라서 저희 병원이, 의사가, 그리고 직원이 아주 친절하다는 소리는 못들을 지 모르지만 하지 않아도 될 수술을 하였다거나 해서는 안될 처치를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산모와 여성 환자들을 위하여 의료의 가치적 특성에 걸맞게 최선을 다하였다라고 자부할 수 있게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