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동 봄산부인과 때는 같은 건물에 피부과도 있고 내과도 있고 서울대 후배가 운영하는 치과도 있어서 서로 만남도 가지면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물론 그 악몽 같던 분만도 결국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분만만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꼭대기 층인 6층 전체를 빌려서 봄산후조리원도 열어서 아내가 운영을 하였습니다.
1층에는 친구의 아내이자 아내의 친구이며 자칭 제 애인인 L약사가 약국을 개원하여 몇년전까지 하다가 지금은 그녀의 남편이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봄산부인과는 한이년인가 혼자하다가 산모도 늘어나서 힘이 들기도 하여 서울대학교 산부인과 의국 후배인 남자 원장을 영입하여 동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여유가 있어 서대문구 의사회 활동도 하고 보건소를 중심으로 상담의사 모임도 만들어 대외 활동도 하고 매주 주변 의사샘들과 점심 모임도 만들어 지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쉬면서 2주에 한번 정도는 아내와 L 약사랑 셋이서 북한산 등산도 하면서 힘든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삶에서 아주 짧은 시간씩이었지만 벗어나는 여유를 가졌습니다.
어느날인가는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면서 지금이야 당연한 듯이 오르는 산이지만 언젠가는 아마 이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정말 말 그대로 봄산부인과를 떠나고 나서는 이후 거의 북한산을  올라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이년쯤 운영하다가 홍은동 봄산부인과는 장소가 협소하여 길 건너편의 홍제동의 현재 봄산부인과 자리로 확장하여 이전하였습니다.
단독으로 5층 건물이 마침 전체가 비게 되어서 6개월 동안 건물주를 설득하여 병원을 개원하였는데 월 분만 50건 내지 60건 정도로 주변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분만 산모를 보았습니다.
그 시절 분만 건수가 적지 않아 주변의 여러 분만 병원들이 문을 닫게 되어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주변 선생님들과도 친분을 쌓으면서 지냈고 파렴치한 방법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이라는 방법만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주위 선생님들로부터 크게 욕을 먹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저희 병원 때문에 분만을 접거나 폐원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신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겠지만....
물론 그렇게 분만 건수가 많다고 경영이 잘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만큼 의료 분쟁의 위험도 높고 의료제도상 문제가 많기 때문에 살림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새로 확장 이전하는 산부인과로 가면서  자금 여력이 없어 집(당시 봄 산부인과 바로 옆에 있던 홍제동 현대아파트)에 있던 큰 TV를 병원 대기실로 가지고 가게 되었는데 그때 막내 민혜가 울면서 서운해 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별 생각없이 입원실에 놓아 두었던 조그만 TV하나를 집에 가져가고 집에 있던 큰 TV를 들고 병원으로 가져가기 위해 낑낑거리면서 나서는데 막내딸 민혜가 갑자기 울더군요.
아마 어린 마음에 자신이 즐겨 보던 큰 TV를 가져가는 아빠가 많이 미웠던 모양입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라 TV를 끌어 안고 떼를 쓰는 아이를 간신히 달래서 가져가기는 했는데 그때 막내딸이 "아빠 나중에 돈 벌면 큰 거 다시 사줄거지?"하고 말해서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할 때 눈물이 글썽거리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TV하나가 뭐라고 아이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병원으로 가져갔나 싶습니다.
숱하게 많이 든 인테리어 비용을 생각하면 그 TV 하나는 정말 몇푼 되지도 않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 뒤로 저희 집에는 23인치의 낡은 TV가 거실을 지켰고 저는 오래도록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 경제 형편이 나아져서는 아니고 씀씀이도 헤퍼지고 또 TV값이 많이 떨어지기도 해서 얼마전 이제는 배불뚝이도 아니고 무려 40인치나 되는 LCD  TV를 장만했지만 이미 아이에게 한번 준 상처는 그렇다고 해서 회복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빠가 나중에 돈 벌어서 더 큰 것으로 사주겠다고 하고 간신히 TV를 병원으로 가지고 왔던 그 때의 기억과 병원 경영이 쉽지 않아 민혜의 피아노 학원을 끊었을 때의 일을 떠올리면 두고 두고 미안하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피아노 학원 끊을 때도 "아빠 나중에 돈 벌면 다시 다닐 수 있는 거지?" 하던 민혜는 아마 피아노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함께 다니면서 놀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서운해서 그렇게 울었을 겁니다.
막내딸의 눈에 눈물을 맺히게 하고도 저는 아직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하게 살지도, 치열하게 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안쓰러운 현실로부터 저는 아직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습니다.
"아빠 나중에 돈벌면" 그 말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면서 가족에게는 온갖 고통을 안겨준 제 양심과 원칙이라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냐 하는 비아냥 거림처럼 들려서 생각할 적마다 괴롭습니다.
학창 시절 수학 문제를 풀때의 열정과 정성의 반만이라도 가정 생활과 치열한 현실로서의 생활에 쏫아 부으면서 가장으로서 책임있게 삶을 꾸려 나갔다면 아마 지금쯤 아내와 아이들에게 최소한 경제적 차원에서의 고통은 덜 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다만 그렇지 못한 제 처지에서 바라는 것은 막내가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니며 멋진 TV가 없어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 뿐입니다.
물론 그런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하면서 살게 해 주지 못하고 그저 집에 없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편하게 된  못난 아빠가 되고 말았지만......

괴롭고 미안하기로 하면야 그 일 뿐 아니라 한두가지가 아니겠지요.
장인 어른이 아내 운동하라고 사준 골프 회원권도 제가 개원하거나 확장하면서 팔아 먹고 나중에 더 좋은 것으로 사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습니다.
건강을 위해 다니던 스위스 그랜드 호텔의 헬스 회원권도 팔아 먹고 더 나은 것으로 나중에 사주겠다는 약속도 못 지켰습니다.
그리고 보면 제가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라고 했던 것은 다 거짓말이군요. ㅎㅎ
지키고 싶고 지킬만한 가벼운 약속들만 지켰지 정작 중요한 약속들은 하나도 제대로 지킨 것이 없습니다.
제가 그 병원을 떠나면서 인수한 산부인과 선생님은 그 뒤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분만 건수나 환자는 제가 보던 시절보다 훨씬 적었음에도 말이지요. ㅋㅋ

봄산부인과 시절 의료 분쟁으로 두어번 고생한 적이 있는데 그건 이전 글에 쓰기도 했지만 정말 지금 생각해도 마음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며 산부인과 분만의로 사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업보와도 같은 일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산부인과를 운영하다 보면 종종 산모나 환자로부터 편지나 이메일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봄산부인과를 운영할 때 두분의 환자에게서 받은 편지는 잊히질 않습니다.
하나는 척추의 기형인 척수수막류를 제가 산전에 진단하지 못하고 출산한 어느 산모의 편지였는데 내용을 여기 올려 보려 아무리 찾아 봐도 이메일을 찾을 수가 없군요.
감추고 싶은 내 무의식이 어느 깊은 곳으로 버려 버린 것인지.....
저 자신에 대한 채찍으로 한동안은 편지를 보관해 두고 간혹 보고는 했었습니다.
내용은 제가 태아의 척수수막류 기형을 진단해 내지 못하여 저를 매우 원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척수수막류의 크기가 작기도 하고 그 당시 초음파 장비의 성능이 지금보다는 훨씬 떨어져서 진단해 내지를 못하였고 설사 진단해 냈더라도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산모의 입장에서는 많이 서운하고 속이 상했었나 봅니다.
출산후 세브란스 병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재활치료를 다니면서 전세집 사는 가난한 살림에 걱정도 많고 아이의 미래를 생각할 적에 고민도 많았다고  적었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이라도 자신들에게 온 것에 감사하며 그래서 이젠 마음의 앙금을 털고 원망도 내려 놓았다고, 다만 앞으로 제가 다른 의사들보다 부족하다는 의미에서는 아니지만 더욱 더 성실하게 초음파도 보고 진료를 하여 자기와 같은 산모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 주십사 부탁한다면서 보내온 편지였습니다.
아마 그 아이가 태어나고 한 6개월 후 쯤인가 메일이 왔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어떤 의료 분쟁 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병원도 보호자들의 행패로 시끄럽고 인터넷에도 저희 병원의 사례가 올라가서 저희 병원 홈피에 하루에도 수십명의 방문객이 몰려 왔습니다.
비난의 글도 있었고 간혹 저를 지지하고 위로한다는 내용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거의 대부분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올린 입에 담기도 어려운 쌍욕의 비난 글이었습니다.
며칠간 글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제가 일일이 댓글을 달면서 변명하기도 버거울 때였습니다.  
그 무렵 보낸 산모의 편지인데 다행히 그 편지는 원본이 있군요.
그 환자분은 별로 말씀도 없고 오히려 약간 수줍음이 많은 편이었던 환자로 기억하는데 이후에도 오랫동안 제게 이런 저런 질환으로 혹은 정기 검진으로 진찰을 받으러 오시곤 했습니다
그 당시 마음이 무척 힘들었던 제게 그 분의 편지는 마음에 많이 위로가 되었고 이후 저는 누군지 모를 익명으로는 절대 인터넷에 글을 쓰지 않는다는 각오를 하게 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 분의 편지 원본은 아래와 같습니다.

심상덕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께 진료 받는 박O숙이라고 합니다.
근래에 힘든 일이 있으셔서 안녕하시냐는 인사도 드리기가 어렵네요.

게시판에 글을 쓰고 싶었지만, 솔직히 선생님께 드리는 제 글이 오히려 선생님께 해가 될 까봐 차마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힘내시라는 메일이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그것도 쑥스럽고 해서 하지 못했고요. 그런데 이렇게 메일을 쓰는 이유는, 선생님께서 최근에 겪으신 일과 그로 인해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많이 힘드실 것 같아서 용기를 내서 몇 자 올립니다.

전 선생님보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세상을 살면서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한테 믿음과 신뢰를 받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잠깐의 이벤트나 기분에 따른 친절과 봉사는 감동을 줄 수는 있지만, 믿음과 신뢰까지 주지는 못합니다. 직원들이 웃고 탬버린 흔들어주는 그런 식당보다는, 믿을 수 있는 재료로 깨끗하게 조리하는 그런 식당을 원하는 마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당을 원합니다.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호사님들이 매번 밝게 대해주고, 의사 선생님이 은행 창구 직원처럼 반갑게 맞아주시기보다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모든 사람들이 바랄 것입니다.

봄산부인과는 제게는 그런 병원입니다. 예약을 하고 1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심선생님은 결코 이유 없이 환자를 기다리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나보다 급한 산모가 있는가보다라는 생각에 전혀 화가 나지 않는, 어떤 검사를 권하시든지, 어떤 시술을 권하시든지 간에 그것이 현재 내 상태에 가장 적합한 검사와 시술일 것이라는 신뢰를 갖게 한, 그리고 진료비가 얼마가 나오든지 간에 결코 병원에서 나를 상대로 돈벌이를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한, 봄산부인과는 그런 병원입니다.

이건 아마도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가끔 게시판에 보면 친절을 요구하시는 경우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분들은 웃음 뒤의 나태함과 안일함보다는 다소 사무적인 태도일지라도 책임감 있고 원칙 있는 그런 진료를 원합니다. 그런 점에서 봄산부인과는 환자들에게 책임감 있고 원칙 있는 병원이라는 믿음을 충분히 심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침묵하고 있는, 봄산부인과를 믿고 다니고 있는 분들의 마음은 모두 저와 같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원칙을 어기고 소신을 꺾으면서, 모두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남들도 다 그러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봄산부인과와 선생님께 바라는 것은, 부디 지금처럼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사시면서 경제적으로도 꼭 성공하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정당한 방법으로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 살면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제가 속물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왕이면 선생님의 소신과 노력이 경제적으로도 보상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모습이 소위 호구지책을 이유로 남을 속이고 법을 어기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말이 장황해졌습니다.
부디 선생님의 진심과 노력을 외면하는 몇몇 분들의 얘기에 마음 상해하시고 힘들어하시지 마시고,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께 감사하는 많은 분들의 마음과 따뜻한 눈빛에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건강 조심하시고, 선생님 마음이 편안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가정과 봄산부인과에 편안함과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4년 9월 14일  박O숙 올림


그 사건을 간신히 넘기고 그 후 한 이년 후 쯤인가 VIP 게시판에 올린 글에도 있지만 뇌성마비 의료 분쟁 건이 생겼고 2억원 가까운 합의금을 지불하고 합의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료되었습니다.
그 분쟁 사건을 마무리하고 한달 후 쯤 저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서  봄산부인과를 7년 만에 그만 두었습니다.
앞으로 나는 다시는 분만 산모를 보지 않겠다는 각오로 다른 산부인과 의사샘에게 병원을 넘겼습니다.
제가 휴가를 위해 해외 여행을 처음 간 것도 그때 병원을 관두고서 입니다.
발리로 약사 친구네 가족과 함께 저희 온 가족이 여행을 갔습니다.
아마 환자나 산모를 신경쓰지 않고 가족 모두 함께 간 여행은 그때가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다 잊고 싶었습니다
갔다 온 후 임신 출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둘째를 또 임신하는 산모처럼  저는 동교동에 다시 개원을 하였습니다.
첫째 출산 시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고 둘째를 낳는 산모는 이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얻게 되지만 저는 무엇을 얻으려고 다시 그 끔찍한 천국과 지옥의 이중주 속으로 기어 들어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TBC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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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마누라 [2015-06-23 17:37]  최현희 [2014-06-11 20:18]  
#2 최현희 등록시간 2014-06-11 20:23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저도 저 산모 편지처럼 지금처럼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사시면서 경제적으로도 꼭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의사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정당한 방법으로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 살면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산모메일글에 숟가락을 살짝 올려보았습니다. 오늘 진료보고 완전 심적으로 불안해하며 절대안정을위해 누워서 심원장님 고백록을 보며 웃고있습니다. 한번 더 감솨합니다.

댓글

저도 원칙 고수와 생활의 안정이라는 두가지가 동시에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희망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의사하고 있죠.ㅎㅎ. 그러나 혹시 그 둘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저는 착각 속에 한세상 헤매다 간 불쌍한 의사가 될 것입니다. 관 뚜껑에 못 박을 때는 알게 되겠지요. 어느 것이 맞았는지.....  등록시간 2014-06-12 00:14
#3 이연경 등록시간 2014-06-11 23:38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저도 진짜 힘들때 위로도받고싶고 그런데 뭐 손님들이 위로해주나요~~~ 택도없죠ㅜㅜ 그래도 원장님 많이 생각해주는 산모분들이 많이 있으니 기운이 나시겠어요~ 부럽삼

댓글

그런데 칭찬보다는 비난이 더 가슴에 확 와닿더군요. 그 반대였으면 좋겠는데.....ㅎㅎ  등록시간 2014-06-12 00:15
#4 최현희 등록시간 2014-06-12 00:56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최현희 2014-06-11 20:23
저도 저 산모 편지처럼 지금처럼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사시면서 경제적으로도 꼭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진오비앞에서 호객행위를 해서라도 세상 모든 산모 다 긁어 모아 두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길바닥에서만 안했지 여기저기 미끼?를 던져놓았지만..한번은 충무로 제일가는 병원의 농간으로 친구한명을 진오비빠로 만들수있었는데ㅡㅡ 못해서 아수웠지요! 아무튼 진오비파워를 맹글어보아용.♥ 그리고 전 낼 꼭출산을 하고싶습니다. 신이시여...원장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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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살살 수축이 있으시다니 내일이나 늦어도 모래 중에는 출산하게 되겠지요. 다 때라는 것이 있으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등록시간 2014-06-12 01:06
5# 최현희 등록시간 2014-06-12 01:22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최현희 2014-06-12 00:56
제가 진오비앞에서 호객행위를 해서라도 세상 모든 산모 다 긁어 모아 두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게 해...

넹. 어서 원장님도 쉬셔와요! 낼은 제가 힘드시게 할지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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