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 쯤 아이온 산부인과로 운영할 때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죽 저희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만삭이 되어 예정일이 2 일밖에 남지 않은 산모가 태동이 하루 전부터 느껴지지 않는다고 저희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초음파 검사를 해 보니 이미 자궁 안에서 태아가 사망한 상태 였습니다.
대학 병원으로 이송하여 유도 분만을 하여 자연 분만으로 출산하였는 데 예상대로 태아는 사산되었습니다.
아기에게 외형상 기형은 없었지만 아기가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힘들만한 내부적인 이상을 가지고 있는 지 또 다음 임신에서 재발 가능성이 있는 이상은 없는 지 확인도 하기 위하여 부검을 해 보도록 권유드렸고 결과는 한달쯤 기다려 보아야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궁 내에서 태아가 사망할 수 있는 많은 원인이 있고 검사를 통하여 알아 낼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SIDS (sudden infant death syndrom)이라고 해서 원인 불명으로 유아들이 돌연사하는 경우도 아직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것처럼 자궁 내 태아 사망도 원인 미상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예측 불가능하게 발생해서 본인과 가족 그리고 의사까지도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 비단 이것 뿐만은 아니겠지만 큰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미처 만나보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생명 앞에서는 누군들 초연하겠습니까 ?
더군다나 왜 발생하는 지 원인도 미상이면서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면 답답한 정도를 떠나 심한 무력감에 빠지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다른 진료과의 의사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산부인과 의사도 그런 점에서 정말 괴로운 순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이번 경우처럼 태아 사망을 선고해야 하는 경우도 그렇지만 오랜 기간 임신이 안되어 고생하다가 어렵게 임신이 되었는 데 비정상 임신인 자궁외 임신이 되어 순산은 고사하고 개복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태아를 제거 해야 하는 경우도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건강한 아기를 낳고 산모의 체력도 올려 주고자 한약을 복용하였다가 머리에 물이 차는 기형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머리를 가눌 수 조차 없이 살아 있는 몇년간 방에 그저 누어만 있다 죽어가야 하는 아기의 경우에도 의사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아니 종교가 주는 마음의 평안이라든지 선하게 살도록 유도하는 등의 몇가지 효용성은 믿지만 신은 믿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이 있는 지 없는 지 잘 모르겠지만 그의 능력은 믿지 않습니다.
그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인 능력의 소유자로서의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위의 사례처럼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때는 신의 존재와 관련하여서는 다음 가능성 중의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신이 계획한 고차원적인 숨은 의도가 있지만 인간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없어서 처음부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다.
이것이 답일까요 ?
아이가 독사를 만지지 말아야 할때 부모는 아이가 이해할 만한 말로 독사를 만지지 않도록 시도할 것이고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이해시키는 데 성공할 것입니다.
불완전하고 약한 인간마저 이러할진대 신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은 신의 행동을 이해해 주기 어렵습니다.
둘째, 어떤 의도가 있지만 신의 능력이 모자라 인간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인간도 이해시킬 정도의 능력도 없다면 더 이상 신이라고 불릴 수도 없는 것일테니까 역시 신의 존재를 인정해 줄 수가 없습니다.
셋째, 어떤 의도도 없었고 신은 인간사에서 벌어 지는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은 만들어진 순간 이후로 저절로 흘러 가도록 되어 있다면 신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니까 결과적으로 없는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겠지요.
넷째, 그런 신은 없다.
역시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은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는 데 그런 일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지 않고 그저 흘러 가는 데로 방치했으며 그렇게 방치한 이유에 대해 이 세상의 어떤 인간에게도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면 그게 신이든 아니든 저는 그가 매우 증오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증오하는 것 보다는 없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사실도 아마 그럴 것이구요.
그런 경우에는 누구를 미워하지 않고 그저 세상이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라고 속 편하게 받아 들이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혹시라도 만에 하나 그런 신이 존재하는 것이 맞다면 이제는 제가 부탁 하고 싶습니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 불행한 일은 만들지 마시고 굳이 만들어야 하면 그래야 하는 이유는 좀 알려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당신이 만든 인간들인데 왜 그래야 하는 지 알아서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알려 준다고 뭐 그리 크게 손해 나는 일이 있겠습니까 ?
안 그렇습니까 신이시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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