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동교동에는 2005년 8월에 개원하였는데 처음에 이름은 항상 켜있다는 의미, 따스하다는 의미, 전부라는 의미의 온자를 붙여 온산부인과 (ON OBGY Clinic)라고 하였다가 이후 2007년에 최안나 선생님과 동업하면서 아이온 산부인과(ION OBGY Clinic)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2012년 김종석 선생님이 동업으로 합류하면서 진오비 산부인과(GYNOB Clinic)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름이란 함부로 바꾸면 안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각오로 임한다는 의미도 있고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이라는 진오비의 철학을 잇는다는 의미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곳에 처음 올 때는 분만을 하지 않을 생각으로 7층 건물 중에서 2층 한층만 임대를 하여 외래 진료만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산부인과 의사회 활동을 하면서 만난 여러 산부인과 선생님들께서 부인과만 가지고는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조언을 해 주시면서 낙태 전문이나 부인과 성형 수술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분만을 하지 않으면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결국 인테리어 하기 직전에 3층 한층을 더 임대하여 분만실을 꾸몄습니다.
저는 낙태 수술을 하기는 했지만 그걸 전문으로 할만큼의 차가운 가슴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고 이쁜이 수술과 같은 부인과 성형 수술을 주 종목으로 할만큼 두꺼운 얼굴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원래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분만을 하기로 하면서 내 운명이 그러니 운명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자포자기의 심정 혹은 아주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붙들어 본다는 생각으로 분만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때 한층을 더 임대하지 않고 분만실을 갖추지 않은 채 외래 진료만 하였다면 제가 계속 산부인과를 운영할 수 있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만난 이곳의 여러 산전 산후맘 분들과는 만날 일이 없었겠지요.

동교동에 8월에 개업하자 마자 산부인과 의사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얼마전까지 함께 동업으로 근무하던 최안나 선생님이 주도하여 준비하던 여성의학 엑스포 행사도 돕고 하느라 개업 초부터 병원에 집중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당시 최안나 샘은 산부인과 의사회 홍보이사로,저는 학술이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가 원칙 존종이라는 철학이 맞아서 2007년에 함께 동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개업 초기 시절부터 그렇게 개업 의사들 중심의 산부인과 의사회와 교수들 중심의 산부인과 학회 활동 모두에 참여하면서 산모 식대문제, 태동검사 환수 문제, 고운맘카드 문제 등 여러 산부인과 현안에 대하여 의사회 사무국으로, 복지부로 쫓아다니면서 많은 열정을 쏫았습니다.
그때 의사회 활동을 하던 때를 돌이켜 보면 사람이 가진 열정은 무한정한 것이 아니고 한계가 있어서 이것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면 어쩔 수 없이 저것에는 그만큼 관심을 덜 쏫게 된다는 것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둘다 최선을 다해 잘 할 것이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기도 돌보면서 일도 잘하는 슈퍼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자신이 가진 역량과 시간을 비록 최대한으로 끌어내더라도 얼마큼씩 나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제 개인 병원 하나의 운영보다는 전체 산부인과  의료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제 나름대로는  산부인과 의사회에도 그렇고 산부인과 의료 환경에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하여 후회는 없습니다.
오늘 16주 정도 되신 산모가 병원을 옮겨 저희 병원으로 오시면서 가지고 온 산모수첩을 보니 제가 산부인과 의사회 활동할 때 주도적으로 만든 산모수첩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산부인과 학회 활동할 때는 보건복지부에서 만드는 산모수첩에도 제가 일정 부분 관여하였는데 가끔 보면 그 시절의 흔적이 곳곳에서 눈이 띄기도 합니다.
아래는 의사회 제작 산모수첩인데 시도 있고 이곳 홈피에 있는 것과 비슷한 내용도 있어 좀 익숙한 분도 있을 겁니다.
지금도 저는 그 산모수첩을 쓰고 싶지만 산부인과 의사회와 의견이 맞지 않아 학술이사를 그만두면서 의사회를 탈퇴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수첩을 배포 받을 수 없어 현재는 복지부에서 제작한 산모수첩을 쓰고 있습니다.
아래는 산부인과 의사회 활동때 제가 제작 주도한 산모수첩 모습인데 궁금해 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 올려 드립니다.








(이미지를 크게 보시려면 마우스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산부인과 의사회나 산부인과 학회 그리고  진오비 활동에 대하여는 아내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아내로부터는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무슨 일을 도모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는데 사실이 그렇기는 하지만 전 그 시절이 아무 의미도 없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것을 가슴 깊이 느끼기도 하여 일체의 대외 활동을 접고 우선 병원을 살리는 일에만 매진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제 페이스북 대문 이미지도 아래 이미지처럼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한문 전서체로 바꾼 것입니다.
우선 나 자신부터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의미로 말이지요.
물론 그렇게 병원에만 매진한다고 운영이 잘되고 기반이 단단해져서 경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에 관계없이 최소한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자부심은 가질 수 있겠지요.

동교동 개업시에는 다행히 봄산부인과 다니시던 산모분도 일부 와주시고 해서 그럭저럭 몇년간 분만을 하면서 지내다가 의사회 일로 병원도 소홀하게 되고 그 무렵 VIP 게시판에 올린 의료 분쟁 건도 겪고 하여 다시 분만을 접었습니다.
참 제가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아마 지금 진오비 산부인과 다니시는 분들도 이 글 보시면 제가 언제 또 확 분만 접는다 하지는 않을지 걱정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심경의 변화로든 아니면 건강이 나빠져서든 분만 의사로의 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더라도  이곳 진오비 산부인과에서는 김종석 원장님이든 그외 다른 분이든 같은 철학을 가진 누군가가 최선을 다해 산모분들의 분만을 도울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하튼 최안나 샘이 정성을 쏫은 덕분에 나름 불임 환자도 있고 또 부인과로도 어느 정도 운영이 가능할 듯 하여 아이온 산부인과로 있던 중간에 2년 정도 분만을 접었는데 결국 병원 운영이 쉽지 않아 분만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분만을 다시 시작하면서 예전에도 그랬지만 의사 혼자서 산모를 365일 24시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아 산부인과 의료 환경의 개선을 위하여 만들었던 진오비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만난 김종석 선생님과 함께 동업하여 지금까지 둘이 함께 산모의 진찰과 출산을 돕고 있습니다.
최안나 선생님은 부인과와 난임 환자들을 돕다가 올 1월에 퇴직하였고 지금은 이승은 원장님이 와서 진료를 보아 주고 있습니다.

진오비 산부인과라는 이름은 4년전쯤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산부인과 의료 제도의 왜곡을 바로 잡아 보람을 가지고 산부인과 의사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최안나 샘과 제가 만들었던 모임인 진오비로부터 가져온 것입니다.
진오비는 부인과를 뜻하는 영문 gynechology의 약자 gyn과 산과를 뜻하는 영어 obstetrics의 약자 ob를 합쳐서 만든 단어로 최안나 선생님의 아이디어입니다.
가입 산부인과 의사 회원 600여명의 진오비는 최안나 샘이 대변인 역할을 맡아 대외 언론 접촉 등을 하였고 저는 회장은 따로 없는 진오비의 리더로 활동하면서 여러 문제에 대한 방향 설정을 하고 회원들을 독려하여 이끌고 하였습니다.
김종석 선생님은 회계나 기타 여러 업무를 맡는 사무총장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산부인과 의료 환경의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였지만 대표적인 일은 2011년 시작한 낙태근절 운동이었습니다.
낙태근절 운동은 산부인과 의사 집단에 의한 최초의 생명 존중 운동으로 산부인과 의료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어느 산부인과 의사도 낙태를 하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한때 산부인과 의사회 활동할 때 산부인과 의사회 홈피에는 하루 낙태를 10건 했다 혹은 5건 했다 하는 것을 자랑삼아 쓰곤 하던 분위기일 정도로 무감각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낙태 수술을 하는 자신을 당당하다 생각하고 자랑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비록 다수 산부인과 혹은 국민의 인식을 완전 개선한 것은 아니지만 다소간이라도 생각의 전환을 이루고 낙태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된 것에 어느 정도는 일조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진오비는 따로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없으며 실질적으로는 이름만 남아 있으며 그 철학을 이어 받은 진오비 산부인과만이 남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 병원의 운영철학은 그런 진오비의 철학에서 가져온 것으로 원칙 존중과 생명 존중의 정신입니다.
앞으로도 진오비 산부인과는 누가 남아서 이어가던 간에 같은 운영 철학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진오비 산부인과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 1년 6개월 정도 운영하였으니 걸음마 단계로 험난한 산부인과 의료 환경에서 아직도 운영은 수월치 않지만 언젠가는 그런 원칙과 생명 존중의 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서 산부인과를 하고 있는 동료들이나 앞으로 하려는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진오비 산부인과는 현재 진행형이며 그 시도의 결과는 여러분들과 함께 확인하게 되겠지요.

사실 병원을 개업하여 운영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많은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 간다는 의미이며 다른 자영업도 그렇지만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아 원칙 존중이니 생명 존중이니 하는 정신과 관계없이 치열하게 활로를 찾아 나가도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직원 채용과 관리, 자금의 마련과 적자 운영에 대한 대비. 의료 분쟁에 대한 문제 등등 복잡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특히 산부인과는 야간 분만 등으로 하여 자신이 사는 집의 위치까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저는 그동안 살던 서대문구에서 지금은 강동구 둔촌동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출퇴근 시간도 길고 하여 진행이 빠른 경산모분들의 경우에는 제가 분만을 돕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틀에 한번 당직으로 병원에 있는 날이야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고 비번으로 집에 가있는 날은 경산모라도 올까봐 마음 조마조마하게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마음 놓고 목욕탕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항상 휴대폰을 지근거리에 두면서 마음을 졸여야 하는 직업입니다.
그런 점 때문에 집이라도 이 근처로 이사오자고 아내에게 종종 하소연 하지만 아내는 장인 어른께서 얻어주신 집(그래서 집의 명의도 아내 명의이며 병원도 김종석 원장님과 공동 명의이니 순전히 제 명의로만 된 재산은 13년째 타고 있는 낡은 차 뿐입니다. ㅋㅋ)을 전세 주고 이쪽으로 이사오기에는 자금이 모자라 불가능하고 막내 민혜의 교육 때문에라도 그렇게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오비 산부인과로 이름을 바꾸어 달고 분만을 하던 1년 반동안 결국 우려하던 대로 제가 산전 관리하던 분 중에 두분의 분만을 제가 직접 돕지 못한 사태가 생겼습니다.
비번이라 집에 있다가 입원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부리나케 차를 몰아 달려 왔지만 두분 다 병원 도착하여 30분 남짓한 시간 만에 출산하시는 바람에 미처 제가 돕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당직하던 김원장님이 분만을 돕기는 했고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간 제가 진료를 맡던 산모께는 죄송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작년에도 그렇고 개업하고 있는 동안 마음 편히 휴가를 가지 못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제 부모님도 살아계실 날이 얼마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얼마 없을 것 같아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에 써두었던 글이지만 아까 문학반에 올린 "양심과 미안함의 사이에서"라는 글도 그런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이상 직업사는 마치고 다음에 고백록을 이어가게 된다면 남은 것은 제가 자라온 성장기이거나 아니면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될 것이지만 쓰게 될지 어떨지는 약속을 못 드리겠군요.
이미 쓴 고백록만으로도 충분히 찌질한 모습을 보여 드렸으니까요. ㅎㅎ
아뭏든 이글이 고백록 쓰기의 마지막이든 아니든 간에 시간 순서로 보았을 때는 가장 현재의 기록이므로 고백록의 마지막 장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유치하고 재미없는 제 개인사를 졸필임에도 불구하고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TBC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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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n64 [2015-06-24 18:10]  박군마누라 [2015-06-23 17:50]  꽃마리 [2014-06-20 00:09]  기쁨맘 [2014-06-18 09:38]  ennead [2014-06-15 10:57]  김지선 [2014-06-14 20:23]  한개야 [2014-06-14 09:07]  오현경 [2014-06-14 02:01]  동네주민 [2014-06-13 23:37]  박혜진 [2014-06-13 23:12]  봄봄이 [2014-06-13 22:58]  kmsmom [2014-06-13 22:22]  땅콩산모 [2014-06-13 21:48]  
#2 땅콩산모 등록시간 2014-06-13 21:54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사실.. 아직 읽기 전인데 마지막 문장만 보고 좋아요 꾹 눌렀어요. 가장 큰 관심사인 '성장기' 나 '학창시절'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요 ㅎㅎ
사람은 어떤 양육과 주변인들, 그리고 환경에 의해 성격이 형성되고 인격이 완성되는가....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주실 것 같아서요^^
마치...소설가가 진짜 소설을 쓰기 전 뱉어내지 않고는  견디지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없게 한다는  자전적 고백록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댓글

글쎄 쓰게 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이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쓸만한 특별한 것도 없기도 하구요. 성격 형성 과정을 유추할만큼 기억이 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면 기록을 토대로 비교적 자세히 쓸 수 있겠지만 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여 두지 않은터라......  등록시간 2014-06-13 22:36
#3 동민 등록시간 2014-06-13 23:37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드디어 제가 알고있는 아이온 산부인과 시절이군요!
산모수첩 생각나서 꺼내봤습니다. 저 수첩이 심장님께서 만드신거였어요~ 어쩐지~~ 지금 쓰고 있는 보건 복지부 수첩보다 훨씬 알차고 설명도 자세하게 되어있고 주수에 맞게 시도 한편씩 올라와 있었는데! 이번에 받은 복지부 수첩은 예전에 비하면 좀 허술하더군요.



(ㅎㅎㅎ 예전 원장님 소개 보세요~~~ 제가 특별히 작은 사진으로 올려 드려서 잘 보이진 않을겁니다~~ ㅋㅋ)

참 저는 병원 도착해서 10분 남짓걸려 낳았으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되요. 그 정도 시간이면 병원에 상주해 계시지 않는 이상 뭐 어떻게 손쓸 수 없는건 당연한 거니까^^

저도 성장기, 학창시절 이야기 궁금하네요~ 예전에 미술반에선가 잠시 보여주셨던 그런 이야기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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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경 [2014-06-14 02:03]  심상덕 [2014-06-14 00:08]  
#4 심상덕 등록시간 2014-06-13 23:57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동네주민 2014-06-13 23:37
드디어 제가 알고있는 아이온 산부인과 시절이군요!
산모수첩 생각나서 꺼내봤습니다. 저 수첩이 심장님께...

아니  그 수첩을 아직도 가지고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
하기사 봄산부인과 때 만들어 쓰던 여성 검진 수첩(부인과 초음파 사진을 붙여두는 것으로, 위의 "여성을 위하여" 수첩의 전신)을  지금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간혹 있기는 합니다.
그럴 때면 오히려 제가 깜짝 놀라죠.
그 별것도 아니고 볼품 없는 수첩을 수년 혹은 십수년 씩이나 보관하고 있으면서 올 때마다 가져오는 정성은 보통이 아닐테니까요.

위의  "산모수첩"과 "여성을 위하여" 수첩을 제가 만들었는데 이것들은 원래 봄산부인과 때 만들어 쓰다가 조금씩 개선하여 아이온 산부인과 할 때는 산모수첩, 아기 수첩, 입체 초음파 수첩, 여성 검진 수첩 등으로 색깔을 달리하여  여러가지 종류를 만들어 썼었습니다.
이 둘 외에 나머지는 별로 많이 안 쓰이고 저 두 수첩이 살아 남아 의사회 수첩으로 개편된 것이죠.
이런 것에는 이전 고백록에서 밝힌 대로 삼성의료원에 있으면서 각종 안내문과 자료집을  전문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만들때 배운 노하우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개업의들 중심인 산부인과 의사회 사회에서 저와 최안나 샘을 모르면 간첩 소리 들을 겁니다. ㅋㅋ
최안나 샘은 홍보이사라서 여러 언론에 많이 노출되어서 그럴 것이구요.
여하튼 그런 학구적이고 긍정적 이미지가 낙태 근절 운동으로 하여 독불장군에 돈키호테 이미지로 바뀌기는 했지만. ㅠㅠ.
수첩 외에도 각종 안내문과 포스터 등이 있는데 지금도 검색하면 나오는 많은 산부인과 의사회 포스터들이 상당수가 제 손을 거쳤죠.
그래서 인쇄 디자인 골목인 충무로도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다.
오죽하면 분만을 접을 수 밖에 없었겠습니까?

현재의 복지부 수첩 만들때도  제가 크기도 그렇고 디자인도 마음에 안 들어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엄청 주장하고 화를 냈었습니다.
그러나 복지부 공무원들이 디자이너들이 알아서 한다고 우겨 가지고 결국 내용 부분에서만 제가 주장한 것들이 일부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복지부 수첩 내용에서 다른 것들이야 이미 기존의 수첩에도 많이 있지만 산전 진찰의 목적, 정기 진찰의 내용  같은 부분들은 제가 만들었던 산모수첩에만 유일하게 있던 것인데 사실 문구가 좀 유치하고 너무 간략해서 부끄럽지만....
볼 때마다 한때 열정을 쏫았던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유방 초음파를 2005년도에 여성 엑스포하면서 산부인과 영역에 가장 먼저 도입하여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지금 많은 산부인과에서 유방 초음파를 보게 된 초석을 만들기도 했죠. ^^
일년에 몇차례씩 유방 세미나 준비한다고 카톨릭 대학등 대학 세미나 룸 섭외하고 시체 해부 맞추고 하느라 세월을 다 보냈습니다.
저도 그 이후 유방 초음파를 보고 있고 그런 공부를 위해 중국 항저우로 며칠 연수를 가기도 해서  중국땅을 밟아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산부인과 유방연구회를 이끈 리더라서 제 돈 주고 가지는 않았지만...ㅋㅋ

여하튼 이거 제 자랑 같이 되었는데 나름 그렇게 산부인과 의사 사회에 기여를 하였다는 말입니다.
비록 병원 운영은 젬병이라 지금도 허덕이고 있지만....

성장기와 학창시절은 기억도 잘 나지 않아 쓸만한 게 없지만 제가 역시 쪽팔림을 무릅 쓸 정도로 정신이 없는 어느 날이 생긴다면 쓰게 되겠지요. ㅎㅎ.


댓글

원장님 댁이 정말 먼거리시네요..당직아니실때 산모호출 시 대비해 맘편히 못쉬시니 피로가 잘안풀리실만도하네요;;평상 시 보양식이나 몸에좋은거 잘챙겨드시길요..그래도 의료인이신데 비타민이나 영양제 같은거 더 잘아실테니까요ㅎㅎ  등록시간 2014-06-14 20:29
원장님 댁이 정말 먼거리시네요..당직아니실때 산모호출 시 대비해 맘편히 못쉬시니 피로가 잘안풀리실만도하네요;;평상 시 보양식이나 몸에좋은거 잘챙겨드시길요..그래도 의료인이신데 비타민이나 영양제 같은거 더 잘아실테니까요ㅎㅎ  등록시간 2014-06-14 20:28
동네주민// 게으르고 교과서라면 벌레라도 보는 듯이 끔찍해 하는 막내가 매일 밤 10시까지 하루 빼지 않고 미술학원 다니고 있습니다. 언니처럼 예고도 아니고 인문계 고등학교 다니는 처지에 재능도 없는 애가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등록시간 2014-06-14 01:04
땅콩산모// "여성을 위하여" 수첩은 부인과 진료로 암검사나 초음파 검사를 하시는 분들께 결과도 적고 사진도 붙여 드리던 수첩입니다. 물론 저희는 지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들기는 제가 만들었지만 의사회   등록시간 2014-06-14 01:01
그나마도 그때까진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럭저럭 호시절이었을 건데 ~ 지금 셋째 따님도 무덤 파려 준비중 아닙니까 ㅠ.ㅠ 예능은 말린다고 말려지는것도 아니요 ~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것도 아니요~  등록시간 2014-06-14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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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맘 [2015-08-19 11:45]  동네주민 [2014-06-14 00:29]  
5# 땅콩산모 등록시간 2014-06-14 00:12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심상덕 2014-06-13 23:57
예 "산모수첩"과 "여성을 위하여" 수첩을 제가 만들었는데 이것들은 원래 봄산부인과 때 만들어 쓰다가 조...


돈키호테.. 제가 심장님 가슴에 스크레치 깊게 냈나 봅니다 ^^;; ㅋㅋㅋ 수첩을 보니 생각난건데, 진오비 산모수첩을 몰스킨으로 제작하면 재미나겠어요 ^^

유방검진 말인데요..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유방 엑스레이와 초음파, 그리고 그..뭐죠? 악 소리나게 유방을 압착해서 찍는거요...??
그런 검사들을 똑같이 개인병원에서도 가능한건가요?
전 몇년 전 보험가입 절차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거 할 필요도 없는 작은 물혹을 제거하느라 서울대병원에 매년 가게 되었는데요, 특진 의사가 아닌이상 굳이 저 큰병원까지 가야하나... 귀찮은 맘에 불만을 좀 품고 있긴 하거든요 ㅋㅋ
대학병원이 단지 장비가 훌륭한거죠?^^



아, 그런데.....

파자마를 살짝 들쳐보니 이건 뭐...
아스팔트 껌딱지가 비천하게 뙇~~~ㅠㅠ
아무래도 창피해서라도 심장님께 유방검진 받긴 좀 글네요 ㅡㅡ;;;
6# 심상덕 등록시간 2014-06-14 00:28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땅콩산모 2014-06-14 00:12
돈키호테.. 제가 심장님 가슴에 스크레치 깊게 냈나 봅니다 ^^;; ㅋㅋㅋ 수첩을 보니 생각난건데, 진오비...

돈키호테 소리는 땅콩산모님이 처음 말씀하신 게 아니고 전에 낙태 근절 운동할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입니다. ㅠㅠ

유방 검진 중 맘모그라피 검사라는 것이 엑스레이 검사로 가슴을 꽉 눌러 찍기 때문에 좀 아픕니다.
일부 개인 병원에서도 그 두가지 검사를 하고 있고 저희는 그 두가지 검사는 물론 하고 유방 총조직 검사도 합니다.
얼마전 제 자칭 애인의 딸이 유방 결절이 있어서 저희 병원에서 총조직 검사를 하였는데 자기가 유방 결절 때문에 세브란스 병원에서 유방 총조직 검사를 할 때는  온갖 난리를 피우고 피 튀기고 아파서 죽을 뻔 했는데 딸네미 검사할 때 보니 아프지도 않고 빠른 시간에 너무 간단해서 제게 뿅 가기도 했죠.
원래도 의사로서의 제게 조금 뿅가 있기는 하지만 차마 부끄러워 제게 유방 검사는 못 받겠다더군요.ㅋㅋ
물론 그 아이 검사 결과는 다행히 악성이 아니고 양성 결절인 섬유선종으로 나왔습니다.
(이거 어째 오늘 제가 자꾸 자뻑 증상이 도지네요. ㅋㅋ)

그러나 유방 엑스레이 검사는  장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하는 게 더 낫기는 합니다.
물론 크게 차이는 없지만,  유방 결절 제거술까지 한 적이 있다면 세브란스 병원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장비가 차이가 나며 판독하는 의사도 아무래도 개인 병원보다는 낫겠지요. 물론 유방 엑스레이 판독은 제가 하는게 아니고 저희가 의뢰하는 곳의 개업 방사선과 전문의 샘이 합니다.

7# 땅콩산모 등록시간 2014-06-14 00:47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심상덕 2014-06-14 00:28
돈키호테 소리는 땅콩산모님이 처음 말씀하신 게 아니고 전에 낙태 근절 운동할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입...

자뻑은 남자들의 특징이죠 ㅎㅎㅎㅎㅎ
근자감과 더불어... ㅡㅡ;;;;
8# 박군마누라 등록시간 2015-06-23 17:51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아..심원장님..멋지세요..글 읽고 완전 감동했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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