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심의 고백록--직업사 10 (개업의 시절--홍제동)" 편에서 언급한 편지 중에  찾지 못하였다고 한 다른 하나의 편지가 있었는데 오늘 그 편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받았던 다른 한통의 편지와 함께 소개하여 봅니다.
아마 봄 산부인과 초창기에 출산하신 산모분의 편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기분 좋은 편지였고 하나는 괴로운 편지입니다.
통증이 심하여 견디기 어려워하는 진통 산모를 병실에 눕혀 놓고 지난 날을 추억하며 잠시 상념에 잠겨 봅니다.
시지푸스의 바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10여년 전에 비하여 나아진 것이 없군요. 그저 얼굴에 주름이 지고 몸과 마음만 더  지쳤을 뿐입니다.
산부인과 의사라는 것에 대하여 불현듯 착잡한 마음이  드는군요.

첫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제 메일이 혹시 스팸으로 들어가서 못읽지나 않으실지 모르겠네요.
저는 2000년 9월에 여자아기를 낳았던 산모 전O정입니다.
어제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편지를 받았습니다.
갑자기 출산의 아픈 기억이 떠올려지더군요 ^^;;
기억하실런지 모르지만 저는 그때 월화 2일동안 유도분만하다 수요일 하루쉬고 목요일날 아침에 자연분만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찌나 끔찍하던지...
제가 수술해 달라고 2번이나 말씀드렸는데 끝까지 저를 설득하시어 기어이 자연분만하게 만드셨지요.
그때는 자연분만율이 높다는 이유로 이 병원을 찾았으면서도 선생님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속으로 원망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하고 있어요.
수술자국없는 제몸도 감사하고 다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자연분만을 고집하셨던 선생님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태어난 후 열이 있던 아기를 바쁜중에도 산후조리원으로 올라오셔서 찬찬히 봐주시고 거의 1주일이나 입원해 있던 저를 출산한 후부터 입원비를 받으신다고 해서 또 얼마나 감동했었는지... (아마 사모님은 속을 많이 끓이셨을것 같아요^^;;)
지금은 건강하게 자란 6살짜리 우리 아기 예O이의 사진을 보내드립니다.
정말 예쁘고 건강하게 자랐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병원이 번창하길 기도합니다. 건강하세요~

ps. 제 직업이 디자이너입니다. 선생님 전단지를 보면서 감사의 표시로 그냥 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사실 그리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닌데 기획사를 통하면 비싼 경우가 많아서요...
병원이 저희집과도 가까워져서 혹시 더 필요한 디자인이 있으시면 불편하게 생각하시지 마시고 메일 주세요.
제가 성심껏 도와드리겠습니다. ^^  

전O정 드림

두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2001년 05월에 본원에서 출산한 산모입니다..
당시 아이가 많이 아팠고 경황도 없었기에 인사도 못했었는데 지금이나마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산모 이름은 박O희입니다..
아기 엉덩이에 주먹만한 혹이 있었고 원장님께서는 신경관 결손을 의심하셨는데 병명은 척수수막류 라는 병입니다.
지금 아이 상태는 하지쪽으로 가는 신경에 결손이 있어 대,소변 장애가 심하고 하지 변형이 올것으로 예상 됩니다..
또한 후유증으로 수두증이 왔고 머리수술만 두번, 음낭수종한번,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척추수술해서 4번의 수술을 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둘째를 갖었기 때문입니다..
미미하긴 하지만 둘째도 똑같은 병을 가질 확률이 있고 또, 아직까지 병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였지만 아마도 엽산의 부족으로 생각됩니다..(학계에서)
더우기, 제가 피임을 한다고 하였는데 임신을 하여 더욱 난감하고 입덧을 모르고 소화제만 많이 먹었습니다.
청심원도 한번 먹구요...
태아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싶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시는줄 압니다만 아픈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더이상 아픈 아이는 아이 자신에게 더 큰 아픔일 것입니다.
수술한 년도는 천만원가까이 들고 수술 안하면 5백만원이 치료비로 쓰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매일 대변을 손으로 빼주고 소변은 카데터로 시간맞춰 빼주기에 흔하디 흔한 유치원도 못보내고 있습니다..
소변을 위하여 연대 세브란스에서 석달에 한번,한번에 5일씩 전기집중치료를 받습니다..
비뇨기과,심경외과,외과,정형외과를 같이 보고 있습니다..
아직 보험도 되지않아 치료비가 많이 나가는 가운데 감히 둘째를 엄두도 못냈습니다만 지금 생긴이상 둘째도 낳고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먹은 약이 또 걱정이고 그것으로 인해 건강하지 못할수도 있다면 저는 정말이지 낳고싶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 드린다면 소화제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고 싶어서이고 또하나는 선생님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어서 입니다..
죄송한 말씀이기는 하나 제 짧은 생각으로는 내가 만약 원장님 입장이라면 나와같은 산모가 또 다시 찾아왔다면 그래서 둘째때에는 정말이지 자세하게 아기의 기형유무라든지, 생김새나 손은 잘 나왔는지,성기는 있는지 엉덩이도 정상인지 발가락 개수는 맞는지 그런것을 자세히도 알려주십사 부탁을 드린다면 싫을수도 있겠다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첫째애가 척추기형이고 그로 인한 장애가 있기에 또, 유전력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통 나의 이런 내력을 모르는 선생님보다는 잘 알고 계신 원장님께 부탁을 드리는게 더 낫겠다 생각이 들어서지만 원장님은 내심 부담이 되실 수도있고 나로 인해 기형아 출산의 병원이라는 오명을 갖을수도 있겠다 싶어 만약에 그렇다면 제가 속모르고 아이의 자세한 검진을 요구하는것도 무리겠다 싶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원장님...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원장님께서 태아 성감별을 워낙 꺼리시는 분이라 솔직이 아이의 성기쪽은 근처도 안갔다고 생각했거든요..
좀 더 자세히 밑의 쪽을 갔더라면 엉덩이도 한번만 봤더라면 아이의 엉덩이에 신경이 튀어나온것도 알수 있었을테고 ....워 그런저런 생각도 많이 들었었는데 나중엔 지금 태O이 낳은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둘째가 만약 또 아프다면 그래도 낳겠다는 말씀은 정말 아닙니다.
제가 한번 겪었기에 안된다는것입니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제맘 모르십니다.
거기다가 가정형편이 넉넉한것도 아니어서 감당할 치료비도 없습니다..
홍은3동 사셨으니 아실겁니다.
그랜드힐튼 옆에 정원여중위에 꼭대기마을에 삽니다..
아기낳고 돈이 많이 들어서 살던집에서 이곳으로 이사왔습니다..
눈이 오면 마을버스도 안다닙니다..
14년된 구형 엘란트라를 50만원주고 사서 그럭저럭 애 병원다닐때만 타고다닙니다..
오래된 낡은빌라 4층 꼭대기에 보금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행복합니다..
남편도 잘하고 아이도 재롱을 부립니다..
더하나 욕심을 내자면 건강한 딸아이 하나 갖고 싶네요..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4년전의 산모가...

댓글

위 편지에서 제가 직접 쓴 편지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홍은동 봄산부인과에서 홍제동의 단독 건물로 봄산부인과를 확장 이전하면서 그전에 다니셨던 분들께 이전 안내를 제가 편지로 써서 복사해서 우편으로 보낸 것을 말하는 겁니다.  등록시간 2014-07-01 12:42
#2 dyoon 등록시간 2014-07-01 03:27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저도 착잡하네요. 의학이나 생명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고 하고 또 유전자치료니 맞춤의학 등등의 용어들이 일반인들도 익숙해지고 있지만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인간이 할수 있는게 별로 없어요.

댓글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심장님이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예전에는 살릴 수 없었던 몇백그람 이하의 신생아도 이제는 키울수도 있고, 또 진료방법도 더 좋아진것을 생각해보면,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만 보면 착잡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샘 화이팅입니다^^  등록시간 2014-07-01 13:25
산부인과 의사하면 "축하드립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등 좋은 소리만 하고 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더군요. 세상에 쉬운 일은 없나 봅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보잘 것이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등록시간 2014-07-01 07:39
#3 땅콩산모 등록시간 2014-07-01 18:49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제목만 읽곤 심장님에게 두통을 안겨준 골치아픈 메일 이야기인 줄 알았네요 ;;;
두번째 메일 참 가슴아파요 ㅠㅠ 그 분 경제적으로 부유하기라도 하심 그나마 좀 덜 힘드실텐데 어째요...

댓글

글쎄 말입니다. 꼭 어려운 사람들한테 그런 일이 잘 생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뭐 부자집에 생긴다고 해서 괜찮은 일은 아니지만..없는 살림에 아이 병치레까지 한다니 제가 정말 미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 출산 전에 알았다 해도 그렇다고 해서 지우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세상 참 쉽지 않습니다.  등록시간 2014-07-0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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