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소개할 그림은 프란시스 고야가 그린 마야 부인 연작입니다.
1800년에 그린 "옷 벗은 마야"와 1803년에 그린 "옷 입은 마야"입니다.
이 두 그림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옷 입은 마야"는 95*190cm, "옷 벗은 마야"는 97*190cm 크기로 거의 비슷한데 제 진료실 책상의 크기가 80*160cm이니까 그것보다 조금 더 큰 크기입니다.
불과 책상 하나 정도 크기의 그림일 뿐인데 2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부러운 일입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그림으로도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 그림도 적지 않기는 하지만.
이 그림은 그림 자체도 뛰어난 그림이기는 하지만 그림보다 대상이 된 모델이 누구인가 하는 것 때문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 그림입니다.
지금도 프라도 미술관의 이 그림 앞에는 항상 관람객이 장사진을 쳐서 제대로 감상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만 해도 여신이 아닌 여성의 누드를 그린 그림이 없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그림이 실제로 서양 미술 최초의 누드화라고 알려져 있는데 다른 그림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런 경우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작곡한 베토벤의 경우도 그의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채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이 그림의 모델인 마야 부인이 누군지에 대하여는 학설이 분분한데 고야가 사랑한 알바 공작 부인이 모델이라고 하는 설도 있고 당시 스페인의 재상이던 마누엘 고도이의 애인이었던 페피타 투토라는 설도 있습니다.
알바 공작 부인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그녀가 고야의 연인이기도 하고 고야가 알바 공작 부인을 그린 다른 그림에서 그녀의 오른손의 검지가 가리키는 아래쪽에 ‘Goya(고야)’라고 서명하고 그 옆에 ‘Solo(오직 그대뿐)'를 써놓았다는 점 때문에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반면, 모델이 페피타 투토라고 추정하는 근거는 두 작품이 모두 고도이가 주문한 그림인데 고야가 사랑하는 이의 그림, 그것도 누드화를 다른 이의 주문으로 그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점 때문입니다.
물론 이 모델과 페피타 투토의 외모가 닮았다는 것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야 자신은 이 그림의 모델이 알바 공작 부인이 아니라고 부인한 것으로 봐서는 모델이 실존 인물이 아닌 고야의 마음속 이상형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하튼 모델이 누군지는 지금도 불확실하지만 알바 공작 부인이 고야의 연인이었던 것은 거의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고야와 알바 공작 부인이 처음 만난 것은 1795년, 고야의 나이 53세, 알바 공작 부인의 나이 35세때라고 합니다.
고야가 46살 때부터 귀머거리가 되어 오랜동안 절망에 빠져 지내고 있을 때 그녀가 나타나 고야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알바 공작 부인은 1802년 7월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그러고 보니까 바로 이 계절 무렵이 되겠네요.
저는 이런 그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그림도 주문자인 고도이가 죽을 때까지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아무나 볼 수 없었던 그림인데 아무런 댓가도 지불하지 않고 이렇게 편히 앉아서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물론 그림을 실제 볼 때만 얻을 수 있는 붓의 터치감이라든가 빛의 효과에 의한 미묘한 광채와 같은 섬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건 음악으로 치면 그저 LP와 CD의 차이 정도로 아주 전문가적 안목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다를 지 모르지만 저와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1826년에 프랑스인 조제프 니엡스가 금속판 위에 화상을 인화함으로써 최초의 사진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때가 이 그림이 그려지고 나서 26년 후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술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고야의 마야 부인은 오랜 동안 소유자 외에는 아무도 볼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비밀스럽게 보관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런 그림이 남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모델이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불확실하지만 만일 실존 인물이라면 자신의 알몸이 두고 두고 많은 이들에게 노출된다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노출증 환자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참고로 당시 알바 공작 부인에 대한 세간의 평은 아래와 같았다고 합니다.
"알바 공작 부인의 머리카락은 한 개 한 개가 모두 욕정을 불러일으킨다.
알바 공작 부인보다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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