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마지막 주인 오늘 감상해 볼 그림은 1894년, 뭉크가 31세 때 그린 "마돈나"라는 이름의 그림입니다.
반나체의 선정적인 여인의 모습에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그림입니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71×90cm 크기의 그림으로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뭉크를 최고의 표현주의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그림으로 절규와 함께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뭉크의 그림들이 그렇듯이 강렬한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허리 아래와 손 부분은 희미하게 처리하였고 유독 가슴과 복부, 얼굴을 강조하였는데 특히 유두와 배꼽에는 빨간색 점까지 찍었으며 빨간색 입술도 도드라져 보입니다.
검은색의 머리와 역시 빨간색의 모자, 그리고 배경에도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엉켜 있습니다.
입술과 가슴은 여성의 성적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는 부분인데 그 부분을 강조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검은색은 죽음을,  빨간색은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런 상징으로도 그림이 주는 의미를 알기 어렵지 않지만 뭉크가 이 그림과 관련하여 남긴 글을 보면 그가  이 그림을 통해 무얼 말하려 했는지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당신의 얼굴에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고통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죽음과 삶은 손을 잡고 수천의 죽음과 수천의 삶을 연결하는 고리가 지금도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뭉크의 대부분의 작품은 죽음과 생명, 실연과 사랑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이 처음 발표될 때는 정자와 태아가 그려진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림의 모델은  어린시절 친구였다가 나중에 연인이 된 다그니 유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그니는 뭉크가 그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하다가 나중에 연인으로 발전한 여인이지만 그 둘은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뭉크의 절친인 폴란드 출신 작가와 결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하여 그는 큰 배신감에 시달렸는데 그런 마음과 상실감에 쌓인 채  그린 그림이  "마돈나"입니다.

뭉크에게 있어서는 삶이나 그림이나 심지어 사랑하는 여인조차  생명과 죽음의 혼합 혹은 혼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안경 또는 기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원칙이라는 잣대와 안경이라면 뭉크가 쓰고 있었던 것은  죽음이라는 이름의 안경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모두  죽음과 절망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죽기는 하지만 사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일 것입니다.
뭉크에게 사랑하는 여인은 실연과 죽음과 배신의 색이 묻어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린 여인 마돈나는 그저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슬프고 아픈 느낌을 줍니다.
쓰면서도 달콤한 것. 달콤하면서도 쓴 것.
그것이 뭉크에게 있어 사랑의 모습이고 사랑한 여인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호흡하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며, 살아있는 인간을 그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  뭉크의 고통이 12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내게 전해집니다.

에드바르트 뭉크는 노르웨이에서 의사 크리스티안 뭉크의 아들로 태어나 오슬로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라울라가 결핵으로 그의 나이 5살에, 한 살 위 누나 소피에가 역시 결핵으로 그의 나이 14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또한 평생 병약한 몸으로 살면서 죽음의 공포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81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항간에 골골백년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의 긴 삶은 긴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뭉크가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하여 회고하면서 쓴 글이 보여주고 있다시피.....
"나의 요람을 지켜보고 있던 것은 질병과 광기와 죽음이라는 검은 옷의 천사였다. 그들은 그 후에도 계속 나의 생활에 달라붙어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2 동민 등록시간 2014-07-31 00:23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마돈나 하면 먼저 가수 마다나~ 언니가 떠오르지만...
중고등학교때 배웠던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라는 시도 생각이 나요.
아름답네요. 마돈나.
#3 심상덕 등록시간 2014-07-31 00:30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동네주민 2014-07-31 00:23
마돈나 하면 먼저 가수 마다나~ 언니가 떠오르지만...
중고등학교때 배웠던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라는 시도 생각이 나요.
아름답네요. 마돈나.

다른 분들이 궁금해 하실까봐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시 원문과 해설을 퍼와서 올려드립니다.
공교롭게도 시의 주제가 위 그림의 주제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이는군요.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寢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런지 -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 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느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
내 몸에 피란 피 -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 내 침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해설
(남상학의 시오솔길에서 발췌)
이 시는 1923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시인의 초기 시경향(퇴폐적이고 감상적인 낭만주의)에 잘 어울리는 대표작이다.  
사랑과 죽음, 곧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가 하나로 어울려 주제를 이룬 작품이다.  
죽음을 계기로 한 사랑의 재생을 노래하고 있어, 결국 사랑과 죽음과 재생의 세 관념이 엇갈려 이루는 높은 긴장도에서 이 작품의 극적 상황이 마련된다.
어둠, 피안에 까지 삶을 넓혀 체험하려는 곳에서 낭만파 초기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댓글

타나토스 ㅎ. 제가 산전맘일때 맞췄던 심장님 퀴즈 답이었죠 ㅋㅋㅋㅋ  등록시간 2014-08-0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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