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기는 아니지만 드디어 저도 이런 후기를 쓰는 날이 오는군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잊어버리기 전에 써두려고 생각나는 대로 써 봅니다.
다소 과장이나 오해가 있는 부분을 캐치하신 분이 계시더라도 까칠하게 바로 잡아 주지 마시고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ㅋㅋ

그러니까 오늘 오후 6시가 가까워졌을 무렵입니다.
제게도 결국 그분이 오시고야 말았습니다.
머리가 길기는 했지만 아직 자를 때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길어진 머리카락이 귀를 간지르면서 도저히 더 견디기 어려운 갑갑증이 오고 만 것입니다.
제 짐작에는 아직 한달 정도의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는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 당황스럽더군요.
더군다나 오늘은 제 당직날도 아니라서 쌩으로 시간 까먹으면서 헤어샵을 가야 하니 말입니다.
여튼 저는 외래 진료를 마치자마자 헤어샵으로 출발하기 위해 휴대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수첩과 함께 간단히 읽을 책 한권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방을 청소해 놓고 출발하는 기분으로 최종적으로 홈피의 글들을 훑어보고 답글을 달고 가야 하는 것은 없는지 체크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ㅠㅠ.
토막글에 연경님께서 심기가 불편하시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아뿔사. 어쩐다?
점장님의 심기가 불편하시면 먼저도 갔다가 당할 뻔한 마가지를 또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일단 답답증이라는 분이 오시면 이겨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알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일단 헤어샵으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차는 APM 건물 주차장에 세웠는데 이전에도 몇번 와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주차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긴장을 풀고 차에서 내려서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마음 속으로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동안에도 계속 머리털은 귀를 간지르면서 갑갑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때 마침 아이스크림 와플집이 보이더군요.
천우신조였습니다.
이걸로 위기를 모면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원수는 잘 모르지만 4개 정도면 점장님 심기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또 매번 빈손으로 가는게 미안해서 이번에는 무언가를 좀 챙겨가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했지만 너무 큰 선물은 혹여 부담이 갈지도 몰라서 주스 두깡통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적당할 듯 싶었습니다.
와플 포장마차에서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읽어 봤습니다.
모두 한글인데 해석하기가 어렵더군요. ㅠㅠ
와플 굽는 주인에게 물어 보려 고개를 들어 안을 보니 젊은 아가씨가 와플을 굽고 있었습니다.
검은 머리는 일하기 편하게 질끈 묶었고  피부색은 비교적 하얀 편이라 와플을 굽기에는 좀 아까운 외모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아가씨를 쳐다 보다가 짐짓 생각난 듯 물었습니다.
"와플 주문하면 얼마나 걸리나요?"
최대한 목소리를 저음으로 낮게 깔면서 물었습니다.
"한 10분 정도 걸려요.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어떤 것이 제일 잘 나가나요?"
이왕이면 맛있는 것으로 점장님의 환심을 사고 싶었습니다.
접수대에서  한사람은 마가지를 씌우려 하고 한 사람은 쓰지 않으려고 비용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다시 겪고 싶지도 않은 모습이니까요.
"글쎄요. 드시는 분들마다 취향이 달라요."
와플 아가씨는 딱히 추천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 이것저것 섞어서 주세요."
십여분의 시간이 흐른 후 와플 아가씨는 와플을 사각 종이에 싸서 건네주더군요.
"아니 포장인데요?"
제가 황급히 말했습니다.
이 나이에 와플을 양손에 들고 젊은 아가씨들로 북적거리는 이대 골목을 간다는 것은 얼굴이 후끈 거릴 것 같아서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이스크림 와플은 봉지에 담으면 눅눅해져서 맛이 없어서 이대로 들고 가셔야 해요."
와플 아가씨도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이 있어서인지 완강했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들고 가기는.....좀 눅눅해져도 괜찮으니까 봉지에 담아 주세요."
"저희는 질 관리를 위해 봉지가 없어요."
"아니 그러지 마시고 봉지 있으면 아무 거나 괜찮으니까 싸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아가씨는 잠시 망설이는 눈치이더니 안쪽 구석에서 갈색의 누런 봉지 두개를 꺼냈습니다.
결국 봉지가 있음에도 없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그리 밉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집을 피우시니 담아드리기는 하는데 눅눅해져도 제 책임은 아니예요!!"
맹랑한 아가씨다 싶어  아가씨의 검은 눈을 똑바로 쳐다봤습니다.
와플 아가씨는 민망해서인지 고개를 돌릴 법 했지만 고개를 숙이지 않아 잠시 눈빛이 교차했습니다.
정말 화가 난 목소리 같지도, 화가 난 눈빛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가 그 아가씨와 밀당하기에는 답답증 그 분이 보채서 더 머뭇거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예 알았습니다. 빨리 주세요."
와플을 받자 마자 거의 뛰다시피 헤어샵으로 향했습니다.
한 팔에는 양복 윗도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와플이 담긴 누런 봉지를 들고 뛰듯 걷는 중년 사내의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날은 더웠고 귀밑머리는 계속 귀를 간질렀으며 봉지에서는 와플의 뜨거운 김이 훅훅 올라 왔습니다.  
드디어 헤어샵이 있는 건물 1층에 도착했습니다.
엉망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옷매무새를 잠시 추스리고 헤어샵이 있는 2층으로 천천히 계단을 밟아 올라갔습니다.
잠시 후 닥칠 황당한 시튜에이션은 눈꼽만큼도 상상하지 못한 채 말이죠.

TBCOTE.

주석:
1. 마가지
바가지의 반대말로 서로 값을 많이 지불하겠다고 주장하는 아주 나쁜 행태. 2014년 4월 12일  동네주민님께서 토막글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

2. 천우신조 (天佑神助)
하늘이 돕고 신령이 도운다는 의미로 간단히는 다행이라고 표현하면 되지만 글을 폼나게 하기 위해 실력없는 작가들이 종종 사용하는 사자성어 류의 하나.

3.TBCOTE
To be continued or the end 의 앞글자를 딴 약자로 글이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이대로 끝이 날지 알 수 없다는 뜻으로 팔랑심 작가가 글 마무리 사인처럼 사용하는 무책임성 용어.

뱀발
이 글이 후기이니 출산 후기처럼 아기 자랑 게시판이나 산후맘 모임에 올릴까 하다가 윤진님께서 문학반 베너도 꾸미시면서 열정을 쏫으시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문학반에 올립니다.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주혜진 [2014-07-30 14:43]  dyoon [2014-07-29 08:47]  
#2 ennead 등록시간 2014-07-29 02:14 |이 글쓴이 글만 보기
귀밑머리가 간지럽고 갑갑한 대상인걸 첨 알았어요~ 은준군 곱슬거리는 귀밑머리가 상당히 길어 늘 귀 뒤로 쓸어넘겨줬는데 원장님 글 읽고 자는 은준군 왼쪽 귀밑머리 가위로 싹 잘라주었네요~ 곱슬머리 귀욤 아기에서 웬 상남자가ㅋㅋ

댓글

:dyoon // 다음번에는 제가 까먹지만 않는다면 곱슬머리의 장단점에 대하여 꼭 질문드리죠. ㅋㅋ. 사실 남편분들께 질문할 거 없냐 물어보면 거의 99%가 별 할말 없다고 합니다. 뭐 딱히 물어볼 말이 있겠습니까? 저 같아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니 너무 답답하게 생각마시길.....  등록시간 2014-07-29 09:19
원장님 반곱슬이시군요. 울 남편도 반곱슬입니다ㅋ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저희 둘째 초음파때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남푠과 함께 곱슬머리의 장단점을 질문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그러면 말좀 하겠죠?ㅋ).안피곤하시면요. ㅋㅋ촘파때 남푠은 매번 질문도 암하고 수줍수줍 가만히 있어서 답답했어요 ㅎㅎㅎ아우~~~  등록시간 2014-07-29 09:05
앗 은준군 귀밑머리 잘랐군요. 우겸이도 앞머리랑 옆머리가 꽤 길어서 주변에서 머리잘라줘야하지않냐고 하는데,저랑 남편은 더벅머리 좋다고 ㅋㅋ 머리길러서 묶일꺼라거 버티고 있어요 ㅎㅎ  등록시간 2014-07-29 08:59
은준군이 곱슬머리인가 보죠? 반갑네요.저는 완전 곱슬은 아니고 반 곱슬인데..ㅎㅎ. 귀밑머리만 자르지 마시고 앞머리 뒷머리도 잘라주어야 덜 답답합니다. ㅎㅎ  등록시간 2014-07-29 08:22
#3 이연경 등록시간 2014-07-29 08:20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저 어제 집에가면서 생각났어요.......... 주차권 안드렸구나!!!!!!!!!!!!! ㅠㅠ 어제 진정 바가지의 날이었군요;;;

댓글

ㅋㅋㅋ 이제 맘편히 더 자주 헤어샵에 가실것 같은데요? 불나방처럼....?  등록시간 2014-07-29 09:07
어제 APM 건물에서 물건 살게 있어 주차권은 이미 받아둔 것이 있어서 굳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바가지라니 무슨 말씀을...마가지 씌우지 않으신 것만도 감사합니다. ㅋㅋ  등록시간 2014-07-29 08:23
#4 로로맘 등록시간 2014-07-29 10:36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빨리 2편 올려주세요. 황당한 시츄에이션 궁금해요잉!!!!!!!!!!!!!!

댓글

1주간의 황금 같은 여유 만끽하시길....ㅎㅎ  등록시간 2014-07-29 13:41
:심상덕// 이번주에 내내~ 없지요. 저는 자유부인입니다. 신난다!!!!!!!!!!!!!  등록시간 2014-07-29 10:54
오늘 중에는 올려드리겠습니다. 근데 눈치 봐야 하는 팀장님은 오늘 외근 나가셨나요? ㅎㅎ  등록시간 2014-07-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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