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예정일 2014. 04. 25.
ㅇ 출산일 2014. 04. 27. (40w+2d)
ㅇ 이름(태명) 이진수(비단이)
ㅇ 몸무게 3.35kg
마치 숙제와도 같은 출산후기를 쓰게 되네요.
일에 찌들어 살던 제 삶에 선물같이 다가온 아이, 비단이.
그 아이가 지금 제 앞에 있는게 아직도 신기하고 믿기지 않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 제게 아이가 생긴 걸 알고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아직 아이를 낳고 기를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나 불안했습니다.
그 생각은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치 어릴 적부터 저를 괴롭힌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저를 옥죄는 듯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해 준 원동력은 아이 아빠의 힘이 컸습니다.
아이를 어디서 어떻게 낳을건지도, 아이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했고 생각을 나눴습니다.
평소 병원 가기를 꺼려하는 저를 위해 조산원도 함께 가보고, 가정분만도 생각해 보았지요.
물론 틈틈이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큰 병원이 괜찮다는 말을 듣고 제법 큰 규모의 병원을 찾았습니다.
산전검사부터 12주 초음파 검사까지 받은 그 병원은 제게 너무 많은 검사를 받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긴 대기시간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위의 추천으로 알게 된 진오비 산부인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나름의 철학과 원칙이 있다는 말에도 마음이 쏠렸고,
무엇보다도 일터에서 가깝다는 점 때문에 좋았습니다.
7개월에 접어들던 2014년 1월.. 첫 진료때 만난 심상덕원장님과의 만남은 다소 싱거웠습니다.(?)
제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도 있겠지만, 원장님이 무척 피곤해보이셨어요^^;
(아이를 낳고보니 왜 원장님이 피곤해보이셨는지 알겠더라고요.)
제게 많은 검사를 권하지 않고, 순산체조와 운동을 강조하시는 원장님의 말씀은
아이를 낳는 일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산모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병원에 비해 알찬 병원 홈페이지(좋은 정보가 정말 많았습니다)도 좋은 인상을 가지게 만들었고요.
첫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 '여기서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9개월까지 직장을 다니면서 병원에 간 횟수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도 고운맘 카드 잔액이 반 정도 남아있었어요;;)
일 때문에 바쁜 것도 있었고, 병원 가기를 제가 워낙 귀찮아 한 것도 있었습니다.
다른 병원이라면 한달에 한 번 가기도 귀찮아했을 제가, 그래도 한달에 한 번이라도 병원을 가게 해준 것은,
진오비만의 초음파 진료였습니다.
아이가 잘 있는지, 그리고 제 자궁 상태가 어떤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usb에 저장해주시는 게 좋았답니다ㅎㅎ
9개월에 접어들 무렵, 아이가 갑자기 커졌다는(1.7kg에서 3kg대로 급성장)
음식과 운동에 집중하라는 원장님 말씀을 듣고 저는 열심히 걸었습니다. 걷고 걷고 또걷고..
근데 순산체조는 사실 좀.. 소홀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힘을 잘 못 주었나 싶기도 하네요..ㅠ
그리고 하루하루 다가온 출산예정일..!
비단이를 얼른 보고 싶어하는 아이 아빠와 달리 저는 내심 천천히 나와 줬으면 했어요..
이유는.. 그냥 5월에 아이가 태어났음 했더든요..
근데 비단이는 아빠 말을 듣고 딱 출산예정일에 신호를 보냈네요^^:
예정일 당일 새벽, 이슬이 비쳤어요.
이슬은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았고 피가 살짝 비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진통 때 이슬은 덩어리가 나왔지요;;)
그날은 병원에서 태동검사만 받고 진통 시작되면 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10분 간격으로 가진통이 시작되었어요.
병원에 전화해보니 일단 병원으로 오라는 원장님의 답을 들었고,
마침 10분 간격으로 가진통도 오길래 마음이 급해진 저랑 비단이 아빠는 병원 갈 짐을 싸들고 택시를 탔답니다~
아침 6시의 홍대는 역시나 사람이 많더군요..ㅋㅋ
그렇게 여유롭게(?) 입원할 때는 제가 그렇게 심한 진통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환자복을 입고 나서도 아이 아빠와 병실을 구경하면서 'TV 좋네..'
하면서 딴청을..^^;;
토요일 오전 처음 받은 내진은 생각보다 아팠어요..ㅠ
비단이도 나올 준비를 하는건지 계속 신호를 보냈고요..
점점 강도가 세져 가는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요..ㅠ
평소 생리통이 없던 저는 진통이 생리통과 비슷하다기에 그런 줄 알았다가..
정말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맛보았습니다..ㅠㅠ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는 소리를 내며 끙끙 앓기 시작했어요.
밤이 깊어지면서 고통은 더 심해지고..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서 있으면 조금 나았고요.. 근데 그렇다고 오래 서 있지도 못하는 상황..ㅠ
새벽에 춘천에서 달려오신 친정엄마의 응원이 아니었음 정말 견디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고 아침이 되자, 밥 한숟갈 뜰 힘도 없었습니다.ㅠ
허리 아래로는 끊어질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고요.ㅠ
그런데 내진을 해도 자궁문이 안 열리는 거예요..ㅠ 원장님도 힘들어하는 저를 보며 안타까워 하시고..
결국 촉진제를 맞기로 했습니다. 관장은 제가 간호사분에게 해달라고 요청드렸고요..
그렇게 일요일 정오 쯤에 촉진제를 맞고 오후 1시 경 분만실에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비단이를 만나는 순간이 온 것이지요..
아..
정말 힘들었어요.
두 번 정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지..'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죽을 만큼 아프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거기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의 심장박동이 점점 줄어든다는.. 말을 들으면서는 더 초조해졌구요.
처음에는 회음부 절개는 되도록이면 안했으면 했는데..
막상 아이가 거의 다 나왔는데 제 회음부에 막혀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나중에 상처고 뭐고 일단 아이부터 낳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흡입기까지 쓴 비단이가 너무 힘들고, 저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결정적인 말..은 원장님의 '세 번 안에 낳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그 말에 저는 '한 번만 더!'하고 크게 힘을 주었습니다.
결국 2시 19분쯤 비단이가 태어났습니다.
비단이는 좀 힘들어 보였지만 제가 이름을 부르니 저를 쳐다보고, 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어요.
'엄마, 보고 싶었어요'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계속 울면서 비단이 이름을 불렀고, 아이 아빠는 탯줄을 잘랐지요.
그 때 왜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처음 보면서 든 생각은 '아,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저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는
무한한 책임감이었어요.
두 시간의 회복시간을 가지고 입원실로 올라가고 나서도 저는 계속 비단이와 함께 있었어요.
모자동실을 위해 진오비를 선택한 것도 있었으니까요.
퇴원하는 날까지 저와 비단이는 푹 잠만 잤던 것 같아요.ㅎㅎ
퇴원하는 날 아침 원장님이 저희 세 식구 사진을 찍어주실 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어요.
친정엄마표 커피콩을 드릴 때 부담스러워하시는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비단이를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거의 백일을 앞에 두고 있는 비단이는 무럭무럭 잘 크고 있습니다.
몸무게도 7KG나 나간답니다^^
아장아장 걸을 때쯤 되면, 병원에 인사드리러 가고도 싶네요^^
날이 많이 더운데, 고생하시는 원장님, 간호사분들, 그리고
아이와 아이 엄마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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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오현경 [2014-07-30 03:45] 배유진 [2014-07-29 12:25] dyoon [2014-07-29 08:20] 심상덕 [2014-07-2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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