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머리가 거추장스러워서 빡빡으로 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머리통이 못 생겨서 마음 뿐이고 그렇게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거기서도 말했지만 제가 의대를 지원하고 군대 가기 전에 전문의를 따고 가려고 산부인과 전공의에 지원한 이유 중에 하나도 일반 대학 나와서 사병으로 가서 머리 빡빡 밀고 상급자들한테 시달리는 것이 싫어서 군의관으로 가거나 군의관 대체 복무를 하고자 해서였던 것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인데 머리를 밀다니요. 도대체 말이 됩니까?
아마 그 샴푸직원은 쿰원장님이나 연경점장님한테 그렇게 지시를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히 일면식도 없는 처지에 말단 직원이 제게 농담으로 알아서 그렇게 말했을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날은 제가 머리를 맡겨야 하는 을의 처지라서 세세하게 따지지 못했지만 이건 미정조사를 해서 누가 그렇게 지시한 것인지 나중에라도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고객의 요구나 목소리는 일체 반영하지 않고 원장이나 점장이 마음대로 머리 스타일을 결정하고 밀어 부치려 하는 독단과 불통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불통과 무원칙이 세월호 같은 참사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차마 화를 내지는 못하고 분을 안으로 삮이면서 "저 머리 민다고 안 했는데요." 하고 묵직하지만 확실한 목소리로 점장님과 쿰원장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두분은 멋적게 씨익 웃기만 하시더군요.
그렇게 대충 넘어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여하튼 저의 강력한 항의 덕분에 제 머리가 빡빡으로 밀리는 불상사는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제 머리는 소중하니까요.)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머리 자르는 내내 점장님이 제 옆에 붙어서 묻지도 않은 두분의 궁합 이야기부터 사주에 합이 하나가 있네 뭐네, 예전에 좋아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어떻다 그런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 놓더군요.
아마 제 기분을 풀어 놓음으로써 인터넷에 "이대 이철헤어커커"에 대하여 악성 평가글이 올라오는 것을 미리 막고 싶어 한 거 같습니다.
제 별명인 팔랑심이 손이 잽싸다는 의미의 팔랑손에서 왔다는 것을 아마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는 머리를 자르는 길지 않은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는 데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땡용씨에 대한 것도 이미  쿰원장님은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하며 언젠가 점장님이 쿰원장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다른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한순간도 눈을 안 떼고 뚫어져라 쳐다 봤다는 이야기 등등.
천생연분은 합이 3개인데 쿰원장님과 점장님은 합이 하나 있어서 절대 이혼할 일은 없다는 이야기도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들으면서 요즘 세상에도 점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나 보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속으로만 생각한 것은 아니고 직접 대놓고 물어 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남 눈치 안 보고 말하는 스타일이라요. ㅋㅋ
다행히 제 말에 별로 상처를 받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어느덧 머리 자르는 것이 거의 끝나고 다시 샴푸를 했습니다.
처음에 머리를 감겨 주었던 샴푸직원은 제가 머리 밀기로 했다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서 저를 볼 면목이 없어서인지 이번에는 직접 쿰 원장님이 감겨 주시더군요.
그리고 머리를 말리고 나서 미진한 부분을 살짝 다시 손보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유산기가 있는 초기 산모가 병원으로 온다는 전화였습니다.
"벌써 들어가 보셔야 해요?" 하는 점장님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많이 묻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저 손님도 많지 않은 저녁 시간에 만만한 이야기 상대가 없어진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ㅎㅎ
접수대에서 맡겨 놓았던 옷도 찾고 현금으로 비용을 지불하려 지갑을 꺼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이번에도 마가지를 씌우려 하시더군요.
원장 직접 커트 비용이 할인이 되었다나요 뭐라든가요? 여튼 예의 그 멍멍이 수작이  막 나오려는 참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밀리면 여기서 또 30분 이상 허비하게 될 것이 뻔했지만 저는 빨리 병원으로 들어가 봐야 할 처지.
저번처럼 카드를 꺼내면 또 한참 실갱이를 할 것 같아서 이번에는 용의주도하게 현금으로 미리 준비를 했다가 접수대에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점장님이 제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 것을 단호하게 뿌리치면서 저는 쿨하게 문쪽을 향했습니다.
떠날 때는 미련을 두지 말고 깨끗하게 떠나 주는 것이 남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덜 주는 길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괜한 희망고문은 오히려 문제만 키울 뿐입니다.
뒷통수에 진하게 느껴지는 서운함과 그리움은 애써 모르는 척 하였습니다.
창 밖으로는 저녁 햇살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이상 커트 후기였습니다.
혹시 제게도 몰스킨 노트 보내 주시나요?
끝으로 머리 자른 인증샷 올립니다.


주석:
1. 미정조사 (美政調査)--국정조사(國政調査)와 비슷한 것

2. 군의관 대체 복무--전문의 따고 지방 의료원에 공중보건전문의로 가면 12주간의 장교  훈련후 바로 대위로 예편하여 의료원등에 근무함.
의과대학 졸업후 혹은 인턴 수료 후 지방에 공중보건의로 가면 12주간의 장교 훈련후 중위로 예편하여 지방 근무함.
요즘은 군의관이 넘쳐나서 의과대학 졸업 후에 사병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함

3. 용의주도 (用意周到)-- 마음의 준비가 두루 미쳐 빈틈이 없다. 어떤 일을 하려할 때 미리 모든 것을 감안하고 예측하여 준비해두는 것이라는 뜻으로 먼저와 마찬가지로 초작들이 글을 있어 보이게 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사자성어 중의 하나

4., 초작--초디(초보 디자이너)와 같은 식의 표현법으로 초보작가(初步作家)의 약어이며  팔랑심이 처음 쓴 용어

5. 희망고문--어떠한 상황에서 안되는걸 알면서도 희망을 주는 행위. 주로 남녀관계에서 많이 쓰임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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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oon [2014-07-30 14:27]  
#2 동민 등록시간 2014-07-29 20:41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오우 뒷통수에서 느껴지는 진한 서운함과 그리움을 연경님의 다큐에선 어떤식으로 표현하실지 사뭇 궁금해 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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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연경님의 JS 후기 -3이 많이 기다려지네요ㅋㅋㅋㅋ ~~ 아마도...내일 저녁 예준이 재운 다음에 볼 수 있겠죠 ?? ㅎㅎ  등록시간 2014-07-30 00:16
그 문장이 있으니 JS의 추억 글을 이어서 쓰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자존심 때문에 제가 쓴 문장 그대로 인정하긴 싫으실테니까요. ㅋㅋ  등록시간 2014-07-29 20:43
#3 이연경 등록시간 2014-07-29 21:16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아, 읽고보니 후기는 클레임이었군요..... 저희는 직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적이없는데 아마 너무길어버린 머리카락때문에 그리고 매장의 큰 음악소리와 드라이기등의 소음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들으신건 아닌지 진상을 밝히려면 그 직원과의 담화가 있는 이후에 정확히 이야기를 드릴 수 있을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저희 매장에서 이런 오해와 불쾌함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다음번부턴 저또한 바가지를 씌워 사기꾼소릴 듣지않도록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이100이었는지 실력이100이었는지 판정하기 힘든 사진으로 아마 전자쪽의 결과물(머리도별로고 기분도상했음)이 나온것같아서 "우리도 이제 말로 먹고살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주신 심장님께 감사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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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민다는 말을 하신 적이 없다고라? 어찌된 일인지?? 미스테리이군요. 머리는 잘 잘라졌습니다. 다만 제 외모가 그리 당당하게 드러낼만하지 못하여 옆모습만 살짝 찍은 겁니다. ㅎㅎ. 글고 마가지 안 씌워서 감사합니다.  등록시간 2014-07-30 00:32
#4 dyoon 등록시간 2014-07-30 14:30 |이 글쓴이 글만 보기
후기보고 근육맨 남자 직원에게 급 샴푸잉을 받고싶어졌습니다 ㅎㅎㅎㅎ 커트는 내추럴하면서도 깔끔해보이는군요. 소중한 팔랑귀도 보여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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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주 팔랑귀적인 성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귀는 다른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손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ㅎㅎ  등록시간 2014-07-30 16:44
팔랑 심 아니십니까? 그러니 모두다 팔랑의 것. 즉 팔랑의 귀의 줄임말로 팔랑귀 되겠습니다..싫으신가요?  등록시간 2014-07-30 16:10
그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이죠. 남자는 여자에게 끌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끌리고...ㅎㅎ. 근데 저는 팔랑귀는 아니고 팔랑손인데요?  등록시간 2014-07-30 15:41
5# dyoon 등록시간 2014-07-30 16:34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저희 기관에도 공보의가 있는데...심원장님 글을 읽고 다시보니 그분은 대위군요. ㅎㅎ 전문의 따고 군대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아는것 만큼 보이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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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덕// 가물에 콩나듯이 계시는듯요..어떤분은 자기 전공이 소아 내과(?소아청소년과?)라 그랬는데 환자본지 오래되어서 병원으로 복귀하면 사고칠까봐 두렵다는 멘트를...ㅎㅎ 뭐 겸손의 말씀이셨겠지만 ㅋ  등록시간 2014-07-30 17:58
전문의라면 해부학이나 미생물학 같은 기초 학문이 아니고 내과 외과 등 임상 과목일텐데 연구 기관에도 임상 전문의를 따신 분이 가기도 하는 모양이군요. 몰랐습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군요. ㅋㅋ  등록시간 2014-07-3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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