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일 : 2014.11.17(41주+5)
예정일 : 2014.11.5
성   별 : 남아
몸무게 : 3.09kg
초산, 자연분만O, 촉진제O, 회음부절개O, 무통X, 제모X, 관장X

우리 비주(태명)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일주일이 됐네요.
진통과 분만의 아찔했던 기억이 어느새 가물가물해지고, 지금은 조리원에서 매일 수유전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ㅋ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인 만큼 더 늦기 전에 출산 후기를 작성해보려 해요.
꽤 긴 글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다 기록해놓고 싶은 욕심에 구체적으로 기억을 꺼내어 봅니다.

제 예정일은 11월 5일이었어요. 38주까지 직장을 나가고 예정일 2주 전부터 휴가에 돌입, 아가용품 준비 및 빨래 등 뒤늦게 출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울 아가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나름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며 아가 맞을 준비를 마쳤어요.
주수 대비 약간 큰 사이즈(!) 때문에 38주부터는 나와도 좋겠다는 심원장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울 비주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는 엄마 뱃속이 어찌나 좋았는지 41주가 넘어서도 전혀 조짐이 보이지 않았어요.
가진통 이슬 이런 게 다 뭔지... 출산 전날에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41주 정기검진 후 내진혈을 봤지만 이슬이 아니었기에 조바심이 났는데, 16일 오전 처음 비친 이슬은 ‘출혈이 너무 심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 종일 질금질금 나왔습니다.
아가 낳고 나면 카페에서 차 한잔 할 여유도 없을거란 생각에, 친정엄마 + 남편이랑 저녁식사를 마친 뒤 집 근처 카페에서 노닥거리다 집에 돌아왔어요. 밤부터 허리와 배가 싸한 느낌이 조금씩 왔지만 규칙적이지 않아서 그러려니 하고 잠을 청했는데 새벽에 생리통 같은 진통에 눈이 떠졌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40분. 진통어플을 처음으로 켜봤지만 간격은 6~10분을 왔다갔다 했네요. 그러다 오전 5시쯤이 되니 5분 간격으로 진통이 느껴졌어요. 다 지나고 보니 매우 소소한 진통 파도타기였지만 뭔가 규칙적인 통증인 만큼 병원에 가봐야겠다 싶어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월욜 출근시간이라 길이 좀 막혀 오전 7시쯤 병원에 도착했네요. 진통 측정 결과 진진통이 맞다고... 하지만 자궁문은 고작 1cm 밖에 열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ㅠㅠ 나름 빡시게 순산체조를 했음에도 40주, 41주 검진 때와 달라진 게 없는 참담한 결과였네요 흑. 집으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지만 심원장님 진료 결과, 자궁 입구가 어느 정도 부드러워졌고 진통이 시작됐으며 예정일도 11일이나 지나 42주를 향하고 있으니 입원 후 촉진제를 써서 유도를 해보기로 결정했어요.
그리하여 오전 9시 30분 촉진제가 투입됩니다. 제일 약한 강도(40)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어 강도를 점점 높여 봅니다. 60, 80, 그래도 자궁입구는 변화가 없었죠. 정오까지 120으로 높였는데도 고작 3cm 열리는 데 그칩니다 -0-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 경우 시간 대비 많이 열린 건가요? 저에겐 너무 긴 시간이었는데 문득 2박3일 유도분만 사례 등을 떠올려보니 그리 느린 진행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촉진제 강도가 세지며 진통이 강해지니 슬슬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진통이 잠시 쉬어갈 때는 남편과 농담도 하고 짐볼 운동 하다가 얼굴을 찡그리는 정도였는데, 오후 들어서부터는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눈도 못 뜬 채 진통이 오면 온몸을 오그리며 끙끙거렸습니다. 친정엄마가 점심때부터 같이 계셨는데, 제가 소리를 너무 크게 지르면 마음 아파하실 것 같아 그와중에도 비명은 지르지 않겠단 굳은 결의(?)로 심하게 아플 때면 “아파 아파”라는 말만 연발했어요. 하지만 큰 소리만 안 질렀을 뿐, 손 잡아주는 엄마 손을 스르륵 놓으며 온몸으로 -_- 진통을 표현했죠 ㅋ
진통은 계속 간격을 좁혀가며 정점을 찍는데, 촉진제를 썼음에도 자궁이 넘 안 열리는 제 몸이 너무 야속하더라고요. 뭔가 서러운 마음과 더럽게(ㅋㅋ) 아픈 통증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코가 막히진 않아서 호흡엔 지장이 없었어요)
오후 3시 쯤이려나, 억 소리 나는 폭풍 내진 결과 5cm 열렸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제 자궁은 원장님 손으로 열린 것 같아요;;) 이후 질정제가 투입됐고 배 통증과 함께 점점 허리 통증이 강렬하게 왔어요. 눈을 질끈 감은 채 몇 시간 동안 뜨지 못 했는데, 진통이 오는 게 어찌나 무섭던지 ㅠ 저승사자를 몇 번이나 만났네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 아팠던 것 외에 아무 기억도 없던 시간을 지나 오후 5시가 좀 넘었으려나... 올 것이 왔습니다. 똥 쌀 거 같은 바로 그 느낌적 느낌! 남편한테 볼일 볼 것 같다고 이야기하니 금세 원장샘이 올라오셨어요. 분만 전 마지막 내진 후 10cm가 급 다 열렸네요. 여기에 양수까지 터져서 진통은 절정을 찍습니다. 분만실까지 질질 끌려가듯 부축을 받아 이동하고 드디어 오후 5시 20분 쯤부터 힘주기 연습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너무 어렵더군요 -0- 자꾸 얼굴에만 힘 주고 엉덩이엔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간다고 막 혼나고 ㅋ 막달에 볼 일 볼 때마다 연습을 한다고 했는데, 평소 변비가 워낙 없었던 터라 연습이 제대로 안 됐나봐요 하핫... 길게 힘 줄만 하면 호흡도 끊기고 해서 고생을 깨나 했고 마치 졸음이 오는 듯 정신이 아득하고 혼미해졌지만 심원장님과 간호사샘들이 계속 격려해주신 덕분에 끄억거리며 힘주기 열심히 했어요.
사실 진통 할 것 다 하고 힘 주다 결국 제왕절개 했다는 주변 사례가 꽤 많았거든요. 절대 그렇게만은 되지 말자는 생각으로 이를 악 물었죠.(실제로는 이 망가진다고 물진 않았지만요 ㅋ) 그러다 어느 순간 힘을 빼라는 말씀-에 읭 하고 힘을 뺐어요. 오호라 왔구나~ 머리가 나오는 건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미끄덩 하고 몸통이 나올 때 비로소 우리 비주가 나오는구나! 싶었네요.
정말 신기하게도 아가가 나온 뒤엔 그 극심하던 진통이 전혀 안 느껴졌어요. 뭔가 마라톤 결승점을 통과한 후 숨을 고르느라 헉헉 거리는 정도의 힘듦이랄까... 극한의 끝을 본 뒤라 별로 아프단 생각이 안 들었고 비로소 몇 시간 만에 제대로 눈을 떴네요. 눈을 떠보니 제 배 위에 아가가 떡 하니 올려져 있었죠- 2014년 11월 17일 오후 6시 25분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하지만 죽음의 후처치가 이어집니다. 피가 안 멈춰서 후처치가 엄청 고됐어요. 확실히 진통보다는 덜한 고통이었지만 만만치 않았네요. 수혈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 속 다행히 지혈이 됐지만 이후에도 오랫동안 분만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제 발로 걸어 나가고 싶었지만 결국 휠체어 신세를 지고 말았다는... 마지막까지 고생하신 원장님이 직접 밀어주셔서 송구했습니다. 제대로 환자 코스프레 -_-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자고 일어나니 멀쩡해져 잘 먹고 잘 걷고 잘 자며 2박3일간의 병원 생활을 마무리 하고 지금은 조리원에 자발적으로 감금돼 있네요 ㅋ

제 출산 과정이 순산인지 난산인지 혹은 보통의 수준인지 모르겠지만, 두 번 다시 못 하겠다던 출산 당일의 다짐이 어느새 사라진 걸 보면, 그래도 나름 선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출산과 모성의 숭고함 등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는 걸 조금씩 실감하고 있습니다. 젖 물리는 과정이 쉽지 않아 벌써 한 차례 멘붕이 왔지만 하루하루 달라져 있는 아가를 볼 때면 근원 모를 애정이 샘솟네요. 참 신기하죠.

아무런 정보 없이, 그저 친정 근처라 택한 진오비였는데 첫 정기 검진부터 출산까지의 30여 주를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돼 기뻐요. 병원에 계신 모든 분들이 감사하지만 특히 심원장님께는 어떤 말씀으로도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에요.
심원장님이 무뚝뚝대마왕으로 통하신다는 것도 지난 3월 첫 진료 때 처음 알게 됐고, 뒤늦게 안 거지만 저희가 처음 찾아갔던 그 시기에 원장님이 홈피에 글도 자주 올리시고 여러모로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아 ‘에구구’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구요.
하지만 몇 차례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어떤 병원, 어떤 의사 선생님께도 받지 못했던 진정으로 환자(산모)를 대하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카리스마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노련함과 특급 잔정(저는 알고 있어요 샘의 마음을 ㅋ)에 그저 감동할 따름입니다.
유도분만이 잘 안 될 경우 제왕절개로 갈 수도 있음을 강조하시면서 저에게 오기(?)를 불어넣어 주신 부분도 감사했고요, 전날 밤 당직 및 분만으로 엄청 피곤하셨음에도 몇 번이나 체크하러 올라와서 봐주시고 끝까지 신경써주신 점 등등등... 다 열거하기 힘드네요.
또 “의사도 초법적 존재가 아니다”라고 하시며 성별 절대 안 알려주시다가 32주차 초음파 볼 때 여쭤보자 시크하게 “여기 보이는 게 불알이에요”라고 말씀하셔서 속으로 빵 터졌던 재미난 기억 그리고 기다림의 설렘을 느끼게 해주신 것도 감사해요.

그리고 진통부터 분만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해 준 남편 덕분에 호흡도 크게 흐트러지지 않고 비명 안 지르고 버틸 수 있었던 저로선, 가족분만 완전 초강추 합니다. 남편에게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을 과정이지만 소위 ‘트라우마’가 아닌 긍정적인 짜릿함이기에 더 단단한 부부 그리고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모든 과정을 함께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진오비 산부인과 식구들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참고로 태명인 비주는 남편 애칭의 첫 글자 ‘비’ 에 주니어의 ‘주’를 더한 이름입니다. ‘보석’ ‘볼뽀뽀’ 등 예쁜 뜻도 다 갖다 붙였더니 엄마 눈엔 너무 이쁜 아가가 나왔네요. 이대로만 잘 자라다오 ㅎㅎ 아직 진짜 이름은 없지만 저에겐 평생 비주겠죠?

댓글

땡큐 땡큐~~ 하루하루 다르다 그치? 생일 같은 아가에 병원 동기 + 조리원 동기가 된 축복맘 우리 함께 파이팅 하자구 ㅎㅎ 수유전쟁서 꼭 승리합시다 ㅋ  등록시간 2014-11-26 13:22
정말정말 축하합니다^^ 같은날 같은병원에서출산하고 같은날같은조리원까지~~ㅎㅎ 비주랑축복이는 특별한인연이 된듯해요 사진으로보니 비주가아빠를닮은듯^^ 함께육아정보공유하며 우리화이팅하자세연언뉘~!♥  등록시간 2014-11-24 07:27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now4me [2014-11-25 01:05]  심상덕 [2014-11-24 03:03]  

본 글은 아래 보관함에서 추천하였습니다.

#2 심상덕 등록시간 2014-11-24 20:47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안녕하세요.
지금은 좀더 회복이 되셨겠지요?
출산 후 출혈이 다소 많아서 걱정했었는데 잘 회복하고 계신 듯하여 다행입니다.
출산 과정은 비교적 순산이라고 할 수 있으며  출산후 출혈이야 사람에 따라서 조금 덜하거나 조금 더 많거나 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출혈양을 감안할 때 빈혈약은 서너달 정도 드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후기를 보니 특별히 해 드린 것도 별로 없는데 너무 좋게만 써 주시어 다른 분들이 보시면 오해할 듯 싶습니다.
그리 살갑지도 정이 많지도 않고 그저 제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할 뿐인데....
성별을 알려주는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서운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오늘도 보니 그런 점을 포함하여 제게 대하여 대단히 실망했다는 댓글이 어느 카페엔가 있더군요.
성별을 안 알려주는 것은 제가 정한 법도 아니고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이 논의를 통해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의사의 권한을 제한한 것입니다.
따라서 수많은  원망에도 불구하고 제가 태아 성별을 32주 전에 알려 드리지 않는 것은 의사인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그런 것으로 희생될 수 있는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서 그렇게 정해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신다면 좀 덜 서운하게 느껴질텐데 안타깝기만 하죠.
여튼 그런 모든 저희의 철학을 이해하여 주시고 성원하여 주시어 감사합니다.

어제도 새벽에 출산하시는 분 때문에 병원에 나와서 두시간 밖에 못 잤고 오늘도 진통하는 두 분이 언제 출산될지 알 수 없어 몇시간이나 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후기를 보고 기운을 내 봅니다.
물론 육아로 시달리시는 산모께서야 저처럼 어쩌다 하루 이틀 밤잠을 설치는 것이 아니라서 매일 매일이 그런 날의 연속일테니 훨씬 더 괴로우시겠지만...

조리원에서 모유 수유도 잘 배워 두셨다가 퇴원 후에도 완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병원 공식의 돌도장은 아기 이름이 정해지는대로 주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기 이름이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개인적으로 제가 진료하던 분께 드리는 몰스킨 노트는 이삼일 내로 도착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댓글

감사합니다 원장님~ 출산은 임신 기간의 끝이지만 또 다른 시작이네요!! 아직 헬게이트가 열렸다고 볼 순 없지만 단단히 각오하고 지금은 조리 잘 하고 있어요 ㅋ 여러모로 감사합니당 원장님도 건강하세요!!  등록시간 2014-11-2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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