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inside 지식 e"
지은이: EBS 미디어 기획
밤과 별과 고요를 사람한 남자
그러나 비행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좌절을 겪었다. 1917년 해군사관학교 입시를 준비하지만 2년후 구술 시험에 떨어졌다. 미술학교에 청강생으로 건축과 수업을 듣지만 공부를 계속하지는 않았다.
1921년 전투기 조종사가 되려고 해군에 입대하지만 지상에서 정비사로 일해야 했다. 빚을 내 민간 항공기 조종사 수업을 받았으나 초반부터 크고 작은 사고를 연이어 당했고, 1923년 학창시절부터 만난 루이즈 드 빌모랭과도 파혼했다. 이후로도 불행은 끊이지 않아서 1935년 파리-사이공 비행기록을 세우려고 이집트로 출발했다가 리바아 사막에 불시착해 극적으로 구조되었고, 1938년에는 과테말라에 추락해 두개골과 좌측쇄골이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계속되는 실패에 생택쥐페리는 세상에서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그가 꿈꾸던 '모든 것이 무화되는 곳으로의 비상'은 죽음과 절망의 다른 표현이었다. 생택쥐페리는 유쾌한 카드 마술사, 재담꾼, 여자가 끊이지 않은 카사노바였으나, 고질적으로 우울했고 망명자의 심정을 공유했다. 일생동안 그를 잠식한 '현실적 삶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삶 밖에 없다'라는 비관주의는 사망 1년 전에 쓴 어린왕자로 결정되었다.
한평생 불운했던 사내
장애를 무릅쓰고 5년을 더 복무한 세르반테스는 1576년 퇴역을 결심하고 고향으로 향한다. 그러나 출항 엿새만에 해적선의 습격을 받고 형 로드리고와 함께 '기독교도 노예 매매의 중심지' 알제리로 끌려갔다. 그때마다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알제리의 동포들이 몸값을 대신 지불하면서 세르반테스는 1580년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군인시절 인맥을 이용해 공직을 얻으려던 모든 시도는 좌절되었다.어렵사리 말단 관리가 되어 무적 함대의 식량 조달관, 세금 징수원으로 일했는데도 가난을 떨치기는 커녕 오히려 비리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다. 1582년 생계를 위해 소싯적 취미를 되살려 쓴 소설 '라 갈라테아'는 냉대만 받았다. '누만시아' '알제리에서의 대우' 등의 희곡도 실패했다. 자신의 페르소나를 주인공으로 삼은 '돈키호테'가 인기를 끌었을 때에도 생활고로 출판사에 판권을 넘긴 까닭에 아무 이득도 얻지 못했다.
세르반테스는 1616년 4월 23일 피로한 삶을 마감했다. 임종을 지키는 사람도, 유언장도, 장례식도 없는 쓸쓸한 죽음은, 같은 날 사망한 세익스피어의 성대한 장례식과 나란히 놓이면서 '무적함대' 패퇴이후 몰락한 에스파냐와 신흥제국으로 떠오른 영국의 알레고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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