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병원에서 하는 의료 서비스의 특징들은 아래 몇가지를 꼽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1. 주치의 분만
2. 과도한 의학적 개입이 없는  원칙적 진료
3. 방어적 진료 자제

위 세가지 모두 말하기는 쉽지만 하나 하나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가능하면 산전 진료를 담당하던 원장이 출산까지 책임지다보니 당직 근무와 관계없이 수시로 낮밤 가리지 않고 불려 나와야 하는 일이 많이 생깁니다.
대신 산모 입장에서는 평소 진료하던 의사가 출산 현장에 함께 있으니 훨씬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믿음이 가겠지요.
현재 주치의 분만은 강남권의 소수 병원들에서만 하는 것으로 이런 특징으로 하여 대형 병원으로 발돋움한 병원들이 많은데 저희는 아직 그런 장점이 그리 알려지지도 않고 규모도 작아서인지 들어가는 수고에 비하여 그리 성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과도한 개입이 없는 원칙적 진료는 얼마전부터 자연주의 출산법이라는 이름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저로서는 이십여년전 산부인과 의사를 하면서 처음부터 추구했던 바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역시 힘이 많이 듭니다.
일례로 의학적 필요를 벗어나서 촉진제를 쓴다든가 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야간에 분만이 되는 경우가 많게 되어 의사로서 생활의 질이 많이 떨어집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른 병원의 경우 낮에 촉진제를 써서 낳거나 아니면 수술을 하기 때문에 밤에는 거의 분만이 없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한밤에 3시나 4시쯤 출산을 돕기 위해 병원에 나오면서 차나 사람도 없는 한산한 거리를 보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회의도 종종 듭니다.

방어적 진료로 하여 우리나라 제왕절개 수술율이 세계 1위가 된지가 오래인 것은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악결과로 하여 분쟁에 시달려 본 의사라면 그 괴로운 심정과 회한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작정 방어적 진료를 탓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도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지만 불과 1, 2년 전에도 그런 악결과로 하여 산모와 보호자의 격렬한 항의와 원망도 듣고 그 전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악결과로 하여 분쟁에 휘말려 고통을 받을 때마다 그냥 일찍 수술을 해서 출산을 하도록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안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현실과 비원칙에 타협하는 날은 의사 그만두는 날이라는 신조로 의업에 뛰어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악결과에 대한 분쟁의 우려로 방어적으로 안해도 될 수술을 하거나 처치나 검사를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난산의 경우에는 수술을 먼저 택하기 보다는 흡입 분만기를 마다하지 않고 사용하는 겁없는 의사 중의 하나입니다. ㅎㅎ
산부인과 의사에게 흡입기는 흡사 분쟁 유발제와도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정도로야 위에 것들과 견줄 수 없지만 때로 힘에 부치기도 합니다.
각종 안내문을 만들어 산모수첩에 꽂아 드리는 일이나 초음파나 검사 결과의 홈피 제공도 보는 분들은 별 것이 아니고 안 보시는 분도 많겠지만 그것을 만들고 다듬어서, 드리거나 올리기 위해 하루 한 시간 이상을 컴퓨터 앞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보신 분도 있겠지만 제 진료실에는 검사 결과지를 스캔하는 스캐너와 종이를 자르는 재단기가 있는데 인쇄한 내지를 수첩의 사이즈에 맞게 자르기 위해 재단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종이를 자르고 있는 제 모습에 가끔 실소가 머금어 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직원들도 일손이 부족한 터라 직원들에게 시킬 수도 없는 일입니다.
지금도 종종 저희 병원의 직원들이 불친절하다, 무성의하다, 주변 관리가 더럽다는 등의 항의글을 인터넷에서 보거나 메일로 받거나 개인적으로 듣고는 하는데 솔직히 저도 답답하고 난감합니다.
산부인과라는 것이 의사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기피하는 과목이다보니 항상 인원 부족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며 개선하기 위해 싫은 소리를 엄청 자주 하고 있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오늘은 가기 싫다는 분만실 현경씨를 닥달하여 주변 간호조무사 학원에 보내서 사람 좀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ㅠㅠ
그래서 직원들에게 친절을 바라기는 고사하고 붙어만 있어줘도 감사하다고 해야 할 판입니다.
그렇게 모셔야 할 고마운 직원들임에도 수시로 잘못을 지적하고 혼내면서 "오늘 일하고 내일 관두어도 괜찮다. 다만 오늘 하루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일해라. 썩어 없어질 몸뚱아리 아끼지 말고" 라고 하는 말이 제가 직원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하는 말입니다.
정신 나간 원장이죠? ㅎㅎ
여튼 그런 상황이니 진료 보조 업무가 아닌 제가 개인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더 얹어서 직원들에게 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 모두 제가 직접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병원 공식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인 출산 교실, 초음파 영상을 담는 USB의 제공 등도 다 나름의 애환이 있습니다.
자연주의를 추구한다는 강남의 일부 병원은 출산 교실 강좌를 듣는 것이 의무일 뿐 아니라 비용도 수십만원이라고 하여 병원을 옮겨 오신 산모분도 있더군요.
저희는 물론 출산 교실 참여 비용이 없지만 그렇다고 강사님께 강의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참여율은 높지 않고 때로는 신청했다가 아무 연락없이 오시지 않는 분들도 계시죠.
그럴 때마다 이걸 계속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은 고민보다 의지가 더 앞서기는 합니다.

초음파 영상 USB도 얼마든지 저렴한 것이 많지만 휴대폰에서 보여주기 위해 OTC가 지원되는 제품, 가지고 다니기 더 편하고 모양도 이쁜 것으로 하다보니 그런 종류 중에는 비교적 비용이 나가는 제품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USB를 드리는 처음에만 한 번 오고 말거나 하는 분도 가끔 있기는 하더군요.
꼭 그것을 받으려고 한번 오시고 마는 분들이 다수는 아니겠지만....
그래서 몇번 이상 다니신 분들께만 드릴까도 고민했고 유산될 가능성이 높은 분들께는 아예 드리지 말까 고민도 했지만 6, 7천원 짜리 가지고 그렇게 구차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한달에 50개 내지 60여개가 나가니 모이면 적지 않은 비용이기는 합니다.
산모분들이 보시기에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그냥 저렴하게  CD에 담아 드려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는데 그냥 제 고집이 그런 것을 용납 하지 않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점에서 말고 USB에 담기 위해 초음파 실장님이나 직원들도 훨씬 손이 더 가고 신경도 쓰고 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직원들은 이래저래 원장 잘 못 만나서 고생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분만시나 수술시는 소위 총알랩이라고 하는 잔소리를 수시로 듣는 것도 직원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 중의 하나입니다. ㅎㅎ
그래서 때때로 제가 직원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모든 직장에는 다 상사가 있게 마련인데 여러 상사 중 한명쯤  잔소리가 심하고 잘못에 엄격하고 무서운 사람이 있는 것은 의례 있는 일 아니겠느냐? 원장 3명 중 그런 원장 하나 있는 것은 봐 줄만하다고 생각해라."고 말이죠. ㅎㅎ   

여튼 산부인과 의사로 일한다는 것은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같이 질과 내용보다는 규모나 입에 발린 친절 같은 겉모습에 더 의미를 주는 의료 환경에서는 저희처럼 규모는 적은 채로 겉모습보다 내실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는 병원들이 자리 잡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보람도 크지 않고 경제적 대우도 시원치 않은 근무 직원들이나 엄청난 통증과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출산 당사자인 산모들의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긴 하겠으나.......

며칠간 비번인 날조차 집에서 저녁만 먹고 한밤에 불려 나오면서 야간 분만으로 몸이 지치다 보니 마음도 지쳐서 하소연 삼아 푸념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가 해야할 일이 있고 저를 기다리는 산모들이 계시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의사로서의 삶으로 허락된 기간을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버텨 나갑니다.
아마도 나이와 체력을 감안했을 때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의업의 시간이 길어야 십년이 안되겠지만.

아래는 히포크라테스가 했다는 말을 담은 소위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의 원문과 히포크라테스 동상입니다.
얼마전 EBS에서 방송한 "의학, 동과 서" 중 의사라는 주제의 방송 화면 중 일부를 캡쳐한 것입니다. (선서문중 일부는 방송사에서 번역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thepetal [2015-03-12 16:45]  saltstarjin [2015-03-11 20:45]  podragon [2015-03-11 16:49]  시온맘 [2015-03-11 12:58]  동네주민 [2015-03-11 11:06]  apple1831 [2015-03-11 08:52]  ennead [2015-03-11 07:38]  보늬맘 [2015-03-11 03:07]  로로맘 [2015-03-11 01:19]  bella [2015-03-11 01:01]  김지선 [2015-03-11 01:00]  기쁨맘 [2015-03-11 01:00]  봄봄이 [2015-03-11 00:44]  최현희 [2015-03-11 00:43]  이연경 [2015-03-11 00:35]  양선영 [2015-03-11 00:30]  한개 [2015-03-11 00:29]  
#2 보늬맘 등록시간 2015-03-11 03:19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조심스레 덧글을 한번 남겨봅니다..

우선 진오비와 심원장님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늘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한편으론 걱정되는 점들도 있었는데
이런 고충들을 말씀해주시니 마음 한켠이 먹먹해집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저희 순34분들은 간호조무사 자격증이라도 따서 진오비에 취직을 할까 내지는 진오비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드릴까 하는 고민도 하곤 하죠 ㅎㅎ)

USB만 가지고 가시는 분들 정말 어이없고 양심없네요;; USB 비용도 진료비에 포함시키면 안 되나요? ㅠㅜ
원장님께서 너무 고생하시는거 같아서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ㅠㅠ

교육 참여율 저조에 대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하나 제안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작년에 관두게 된 직장에서도 서울시 예산으로 교육을 무료로 운영하다보니 신청해놓고 안 오는 분들이 꽤 있어 대기자들도 이용을 못 하고 수료율도 떨어지는 문제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래서 도입한 제도가 예치금제도였는데요.
참가비를 일부 받은 후에 출석 100%를 달성하면 돌려주는 그런 제도입니다~^^
나중에 모인 참가비로는 다음 교육 운영에 사용하곤 했답니다
이렇게 예치금을 조금이라도 받아서 교육을 진행하시는건 어떠실런지요?

어찌보면 오지랖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에 덧글 남겨봅니다

아무쪼록 심원장님! 힘내세요!!
저희 순34가 뒤에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홧팅이요!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thepetal [2015-03-12 16:45]  양선영 [2015-03-11 13:28]  동네주민 [2015-03-11 13:15]  김지선 [2015-03-11 13:07]  최현희 [2015-03-11 13:01]  시온맘 [2015-03-11 12:58]  봄봄이 [2015-03-11 12:44]  
#3 동민 등록시간 2015-03-11 13:15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이거 한마디가 아니잖아요 ㅎㅎㅎ
푸념이라면 뭔가 해결책이 생겨야 그나마 힘이 나겠죠? ^^

강의료를 병원에서 지불해가면서 산모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출산교실도
보늬맘님 말씀대로 예치금을 받고 출석을 완료할 경우 돌려주는 방법이 괜찮을듯 합니다.
usb의 경우도 몇천원짜리 정도야 하고 생각할께 아니죠.
연경님인가?? 어느분이 말씀하셨듯 동영상은 원래대로 CD에 담아주시고 (다른 병원들은 매번 영상 녹화해줄 때 마다 돈받는다던데) 옵션으로 usb를 원하시는 경우엔 추가 비용을 받으시고요.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격언이 괜히 있나요?
여긴 대부분 주부님들이라 알거예요. 마트에서 장볼때 몇백원 몇천원짜리 별거 아니다고 소소하게 담다보면
나중에 계산대에 서서 눈 휘둥그래할 금액이 찍히게 된다는 사실을.
작디작은 장바구니 경제도 이런데 나눔도 좋고 소신있는 원칙도 좋지만 병원도 자금이 있어야 운영이 되는 사업체인 만큼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댓가는 지불할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산모수첩, 동영상 녹화 저장, 산모교실 운영 이런 서비스들은 모두 적지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제공되는 것들입니다.
이용하시는 분들도 비용을 받지 않는다고 하여 예약 약속을 어기거나, 얼마안하는 usb정도야 먹고 튀어도(!) 된다거나 하는 생각은 접어두셨으면 하네요.
다들 내돈 몇푼이 아까워서 이리깎고 저리깎고 재고 따지고 절약하면 다른 사람 돈도 시간도 귀하고 아깝다는걸 아셔야죠. 내 이익만 챙기고  그에 따른 제 3자의 손해는 나몰라라 하는 태도가 하나둘 모여서 지금 같은 살기 팍팍한 사회를 만든거 아닙니까.

앞으로 십년. 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처럼 밤에 잠도 못자고 집에도 못들어가는 불규칙한 생활을 십년동안이나 하실수 있으실지. 연세도 있으셔서 이제 잠 푹자고 좋은것 먹으며 건강관리해야 하셔야할 시기잖아요.  ㅠ.ㅠ
아무튼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성원하고 있습니다.
힘내시길.



댓글

예압ㅋ 저맞슙니다ㅋ 다른데는 동영상 자체를 판매한다는곳 이야기도 들었는데 너무퍼주기입니다!  등록시간 2015-03-11 18:17
와우~!! 하트 뿅뿅! 동민님 너무 멋져용!! ♥0♥  등록시간 2015-03-11 15:21
옳소!!!  등록시간 2015-03-11 14:36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thepetal [2015-03-12 16:46]  김지선 [2015-03-11 18:19]  보늬맘 [2015-03-11 15:20]  최현희 [2015-03-11 14:35]  양선영 [2015-03-11 13:28]  
#4 이연경 등록시간 2015-03-11 18:16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원장님....
긴답글 적다가 다지웠습니다......
토욜날오세요ㅡㅡ

댓글

글타믄 쫌 부드럽게ㅎㅎ 원장님 토욜날 뵈옵겠사옵니당♥  등록시간 2015-03-14 00:45
이거슨...... 여고생을 상담실로 부르는 학주의 포쓰! ㅋㅋㅋ  등록시간 2015-03-13 18:46
5# dyoon 등록시간 2015-03-12 23:21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보늬맘 2015-03-11 03:19
조심스레 덧글을 한번 남겨봅니다..

우선 진오비와 심원장님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 글읽는데 스티브 잡스가 생각나네요. 창의 혁신의 대명사~!!

댓글

오옷 그렇게까지 비유를 해주시다니~~ㅎㅎ  등록시간 2015-03-13 13:12

스마트폰 모드|진오비 산부인과

© 2005-2024 gynob clinic

빠른 답글 맨위로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