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시어머니께서 제게 진료를 받았었는데 며느리께서 임신을 하게 되면서 저희 병원을 권해서 제게 진찰을 받으러 다니시게 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기 임신 시에는 저희 병원이 아직 분만을 하지 않고 있던 때였는데 다행히 예정일이 2월 초라 그때쯤이면 분만을 시작하고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될 때라 특별한 것이 없으면 계속 다니시겠구나 생각하고 있던 분이었습니다.
제게 산전 진찰을 받는 분들은 약간의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별로 살갑고 자상하게 설명을 하는 편이 아닌데다가(무뚝뚝 대마왕 ㅠㅠ) 인상도 험해서 저와 코드가 잘 맞지 않는 분들은 처음 한번만 진찰을 받고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번 이상 제게 계속 진찰을 받으시는 분들은 그런 무뚝뚝함에 다소 단련(^^)이 되어 있기도 하고 또 그런 무뚝뚝함을 상쇄할만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저 혼자 착각일지도..ㅎㅎ) 중간에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시는 분이 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11월말쯤 임신 30주 무렵에 다른 병원으로 가서 출산을 하고 싶다고 진료 의뢰서를 떼어 달라고 하시더군요.
원래 진료 의뢰서란 본인이 원한다고 떼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판단해서 3차 병원에서의 진료가 필요한 고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을 때 의뢰하기 위한 제도라서 예전에는 진료 의뢰서를 떼러 오시는 분들께는 그런 취지를 한참 설명 드리고 떼어 주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다소 기분이 상하게 되시는 분도 있고 어차피 옮겨 가실 분인데 뭐 굳이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 고위험 요인이 없더라도 출산을 본인이 하고 싶은데서 하겠다는데 막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요즘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원하시는 대로 그냥 떼어 드리고 있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라서 어느 병원으로 가서 출산할 것인지만 간단히 여쭙고 진료 의뢰서를 발부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인가 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마침 진료 중도 아니고 해서 이십여분 정도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알고 보니 자연주의 출산할 병원으로 가려고 해서 였다고 하시더군요.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본원의 입장을 여차저차 설명을 드리게 되었고 다시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다만 내심 혹시 까다로운 산모가 아닐까 은근히 걱정도 들고 신경이 쓰이기는 했는데 알고보니 저를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의사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처럼 필요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회음부 절개 부위도 잘 안 아물어 몇번이나 재 봉합하는 동안 단 한번도 불평을 하지 않으셨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뭐 사실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것이 그동안 제가 가진 철학과 별로 다른 점도 없고  또 출산을 본인이 원하는 환경에 맞추어서 하겠다는 것을 까다롭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구요.

그 뒤 별 문제없이 정기적인 진료를 잘 받으셨는데 출산 예정일을 며칠인가 앞두고 이슬이 비쳤다고 하시더군요.
보통 이슬이 비치면 하루나 이틀 정도 뒤에는 진통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삼사일이 지날 때까지도 병원에 오지 않으셔서 한밤중엔가 전화를 드렸더니 아직도 진통이 불규칙적이라고 해서 약간 걱정이 되었습니다.
가진통도 오래하면 자궁이 기운이 빠져서 출산 때 힘 주기가 아무래도 더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연주의 출산으로 낳고자 하시는 분인데 자연주의 출산이란 자연 분만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고 제왕절개를 하게 되거나 흡입 분만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되면 임신 내내 꼭 하고자 원했던 자연주의 출산은 물건너 가는 것입니다.
저야 자연주의 출산으로 낳던 그냥 자연분만으로 낳던 혹은 제왕절개로 낳던 산모와 아기가 건강할 수 있다면 다 좋은 분만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아기를 낳는 산모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그렇다면 본인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하여 원하는 대로 출산이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며칠 지나지 않아 진통이 왔고 몇시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새벽 무렵에 병원에 오셨던 것 같습니다.
참아 보려 했는데 너무 아파서 도저히 더 못참겠어서 오셨다고 하면서 많이 미안해 하시더군요.
한밤중이나 새벽에 진통이 오는게 산모의 잘못도 아니니 당연히 미안해 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말이죠.
이미 가진통을 오래 하면서 잠도 잘 못자서인지 산모의 모습이 상당히 기운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지만 산모가 의지가 강하고 또 체조 교실도 다녔다고 하시니 너무 걱정은 안 하기로 했습니다.
더군다나 산전 초음파 검사상 아기 크기도 큰 편이 아니었고 산모 체구도 작은 체구는 아니었으니 산모가 배운 데로 잘 하면 오늘 중에는 낳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내진을 해 보니 자궁은 완전히 부드러워져서 앏아져 있고 자궁문이 벌어진 정도는 3cm 정도라서 진통의 주기와 강도를 두고 보아야겠지만 대략 낮 12시 쯤에서 1시 정도 쯤이면 출산이 될 것 같다고 분만 진통 기록 그래프를 보여드리면서 설명드렸습니다.
산모는 지금도 죽을 것처럼 아픈데 앞으로도 근 10시간 가까이나 더 진통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전적으로 제 짐작이지만.....
산모들이 산전 진찰을 받을 때는 이것저것 바라는 것이 많은데 막상 진통이 오고 나서는 어떻게 해서든 빨리만 낳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진통이 정말 힘들기는 힘든가 봅니다.

잘 진행이 되기를 기대했지만 역시 진통이 약하고 불규칙해서 오전 내내 별로 진행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가진통을 오래해서 자궁 수축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자연주의 출산을 원하는 분께 촉진제를 쓰자고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더 지켜 보기로 했습니다.
촉진제를 쓰면 수축이야 더 강해지겠지만 산모가 더 통증이 심해질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출산을 했다는 자긍심에 손상을 입게 될테니까요.
저희 병원에서는 자궁이 많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병실에서 진통을 하고 자궁이 상당히 벌어지고 진행이 본격적 과정에 들어가서 출산이 멀지 않으면 가족 분만실로 옮기는 데 아직 자궁이 많이 벌어지지 않아 병실에서 진통을 하는 산모에게 아침에 회진을 갔더니 산모는 침대에 엎드린 채 있고 남편은 허리를 주무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좀 견딜만하시다더군요.
진통 중의 산모가 진통을 견디어 내는 모습은 참 사람마다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산모는 소리도 안 지르고 표정도 별 변화없이 진통을 꾹꾹 참지만 통증이 심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고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 아프다 아프다" 소리만 내는 산모도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벌거벗고 복도를 뛰어 다니던 산모도 보았구요.

여하튼 순산해야 하는데 산모가 통증이 심하고 탈진이 되서 자연분만이 될지 어떨지 잘 모르겠더군요.
다행히 오후 12시 넘어서면서 자궁문이 본격적으로 벌어져서 2시 좀 넘어서는 낳지 않을까 추측을 했습니다.
산모도 희망을 가지고 오히려 초기보다는 진통을 잘 견디는 듯이 보이더군요.
자궁이 거의 다 열린 2시 무렵부터는 힘주기를 시작했고 힘주기를 시작하면 체력이 급격히 고갈되기 때문에 보통 한시간 이내에는 출산을 해야 하고 그 시간이 넘어가면 흡입기의 도움을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3시가 넘어가도 아기는 골반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걸린 상태로 있어서 이때 산모에게 "온 힘을 쏫아 힘을 주어야 하고 제대로 안되면 흡입 분만이나 제왕절개 수술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고 조금 겁을 주었는데 그것이 통했는지 마침내 3시 32분에 촉진제나 흡입기의 도움없이 자연 분만으로 건강한 아기를 출산 했습니다.
나중에 산모의 출산 후기를 읽어 보니 제 협박(^^) 때문이 아니라 분만실 직원의 도움이 컸던 모양입니다.

앉아서 진통하고 낳아 보시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누워서 진통을 하고 낳았으니 처음에 원하시던 자연 주의 출산에 흡족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산모와 아기가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분만 가운을 벗고 가족 분만실을 나왔습니다.
출산의 순간, 산모께서야 정말 힘들었겠지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가슴 벅찬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그런 현장에 함께 했던 저와 직원들에게도 가슴 뿌듯한 보람을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시간이었습니다.
아기가 이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산모와 남편분, 아기 함께 내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사족 하나:
규연이가 엄마를 닮으면 아마 상당한 미인이 될 것 같은데 혹시 아빠를 닮으면 글쎄.....뭐라 말하기 좀 그렇군요. 
아 물론 아빠를 닮으면 미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성격은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 
제 딸내미들도 엄마를 닮았으면 좀 나았을텐데  저를 닮아서 코도 납작하고 입도 튀어 나오고 해서 불만이 보통이 아닙니다. {:soso__3110130392203091378_3:}
#2 한경수 등록시간 2013-03-09 16:59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와~~~ 원장님이 쓰신 출산기가 저보다 더 긴것 같은데요 ㅎㅎ
참 원장님의 겁주기는 사실 효과 있었어요 ㅋㅋ 3시 이전에 낳아야 되는데.. 그 생각밖에 안 들었거든요. 물론 힘이 빠져 지쳐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수술은 하기 싫었거든요.
그리고 절 예쁘게 봐주셔서 참 감사해요:D 근데.. 저희 남편도 상당한 미남인데 ;P
(이 글을 남편도 읽었어요... 둘째는 다른 병원으로 가자네요 ...ㅋㅋㅋ)

댓글

맞아요 규연이 아버님(?)도 상당한 미남이셔요~ 원장님 말씀 후에 시간을 자주 물어보셨었죠.ㅎㅎ  등록시간 2013-03-11 16:58
남편 분께서 많이 서운하셨나 봅니다. ㅎㅎ. 그러나 다른 누구로부터보다 아내로부터 미남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게 제일 좋지 않을까 싶네요. ^^  등록시간 2013-03-10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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