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산부인과 분야에서 초음파 검사의 가치는 매우 큽니다.
건강의 이상을 발견하기 위해 여러가지 검사법이 사용이 되고 있지만 초음파 검사는 그 중에서도 우리  몸의 내부 장기의 실제 모습을 거의 사실에 가깝게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유용한 검사법입니다.
물론 원래의 색과 구조를 3차원 이미지로 그대로 보여 주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완벽히 그런 기능을 가진 검사법은 없습니다.
MRI 검사나 CT 검사도 초음파보다는 정밀하지만 초음파 검사와 마찬가지로 흑백의 이차원적인 이미지로 밖에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른 검사법에 비하여 초음파 검사가 가진 장점은 방사선에 의한 악영향이 없다는 점입니다.
아직까지는 초음파가 태어난 사람이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인 태아에게든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방사선의 영향을 피해야 하는 태아의 관찰에 초음파보다 좋은 검사법은 없습니다.
가격도 일반 X 선 촬영보다는 비싸지만 약간 나은 정밀도를 보여주는 MRI 검사 등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합니다.
내과 의사에게 청진기가 손때 묻은 의료 장비라면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초음파 기계가 그런 것일 겁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초음파 기계를 처음 접한 것은 30년전입니다.
물론 30년 동안 초음파 장비는 계속 발전해서 몇년 주기로 옆에 두고 쓰는 장비가 바뀌었기 때문에 동일한 기계들을 옆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의사는 초음파 장비의 모니터를 통하여 영상을 확인하여 진단에 참고를 하게 됩니다.
대학병원은 보통 촬영자와 판독자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영상을 아날로그 필름이나 디지털 이미지로 저장하여 전달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개인병원에서는 서비스 차원이나 보관의 차원에서 얇고 매끄러운 종이 (감열지)에 영상을 출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비닐 필름 저장 방식에 비하여 종이 출력 장비의 가격이나 출력 종이의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이 종이는 하나의 롤이 18m 정도의 길이이며 흔히 뽑는 초음파 이미지 사이즈인 9~10cm 길이로는 180장 정도 출력이 가능합니다.
대략 한장당 100~200원 사이 정도 듭니다.
보통 산전 진찰의 경우 한번 검사시 10장 이하를 뽑아 드리고 있으니 1000원~2000원 사이면  비싼 가격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산부인과 초음파 검사 비용이 개인의원의 경우 2만원에서 6만원 사이, 대학병원이라해도 7만원에서 20만원 사이인 점을 감안하면 수가의  1/10에서 1/100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종이는 저렴한 대신 감열식 프린터로 출력한 것이라 몇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감열식이란 뜨거운 열을 일시적으로 쏘아서 종이가 변색되게 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이 방식으로는 흰색과 검은색의 농도 변화만 있으며 컬러로 출력되지는 않습니다.
열에 약하여 장기간 보관도 어려우며 오래되면 색이 검게 변합니다.
또한 화학 물질에 노출되면 색이 변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실험해 보지는 않았지만이 수산화나트륨 (양잿물)에 노출되면 색이 하얗게 된다고 합니다.
아래는 제가 오래전부터 찍어서 보관해 왔던 초음파 사진들입니다.



사진을 찍은 날짜를 보니 일부 비교적 최근의 것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제가 전공의 과정을 밟던 시기의 것들과 개업 초기에 찍은 것입니다.
클리어 파일에는 대표적 이미지를 종이에 붙이고 옆에는 간단한 설명을 적어 놓은 것들로 수십장을 저장해 놓았습니다.
날짜를 보니 88년 7월 무렵이 시작이군요.
제가 산부인과 전공의 2년차일때입니다.
벌써 30년전 가까운 시기입니다.
당시 제가 이렇게 자료를 모아서 적당한 시기에 산부인과 초음파 사례집이라도 내는데 기초 자료로 삼으려고 했던 것인데 게으르고 능력이 모자란 탓에 책으로 내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은 당시의 초음파 영상 이미지의 질이 너무 낮아서 활용 가치가 없어졌고 뒤죽박죽 섞여 있어 정리조차도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초음파 이미지의 해상도가 몇만 픽셀 (360*240)정도에 불과하였지만 지금은 100만 픽셀 (1280*800) 이상의 해상도로 출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첫번째 사진이 과거에 찍은 사진이고 그 중간의 사진이 오늘 감열식 프린터로 뽑은 종이 사진인데 난소의 모습입니다.
맨 아래 사진은 산모들의 경우 USB에 저장해 드리는 이미지이기도 하며 디지털로 저장한 이미지입니다.
디지털 이미지는 종이와는 달리 이미지의 질이 시간에 따라 떨어질 염려가 없고 보관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래 첫번째 사진은 임신 중 전치태반을 찍은 것이며 그 옆에 있는 그림은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에 제가 그려 넣은 것입니다.
그림을 보니 제 그림 실력은 과거 20여년 전에 비하여 전혀 달라진 것이 없네요. ㅠㅠ
이런 경우의 "달라진 것 없음"은 비극이겠지요? ㅎㅎ
사진을 보고 있자면 기술의 발달이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첫번째 사진을 보고는 저조차도 전치 태반인지 알아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처럼 괄목할만한 기술의 발전 덕분에 많은 사람의 건강과 생명도 그만큼 더 향상되고 보전되었습니다.







오늘 우연히 이 파일북을 보니 한참 바쁘면서도 무언가를  희망과 기대가 있었던 시절의 감상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초음파 사진들처럼 지난 세월 속의 기억들도 머리속 어딘가에 저장이 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이미 빛이 바래서 무엇을 찍은 것인지 알기 어려운 사진처럼 많은 것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을까요?
오래된 기억의 단편이  사라졌다면  그자리에는 무엇이 대신 남았을까요?
양잿물로 사라진 초음파 이미지처럼 그저 하앟게 변색된 무의미한 기억들의 흔적만 남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느날 문득 꺼낸 파일북의 사진들처럼 어떤 기억의 단초에 따라 갑자기 쏫아져 나오게 되는 것일까요?
세상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고 제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몸에 기운이 없고 쉬이 피곤해지는 것처럼 체력만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정신도 나이가 들면서 무기력하게 되나 봅니다.
어쩌면 몸보다 정신이 먼저 늙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몸이야 아무리 움직이기 싫어도 먹고 살기 위해 매일 어느 만큼은 반드시 꿈틀거려야 해서  중병에 걸리지 않는 다음에는 한순간에 급격히 체력이 떨어질 일이 없지만 정신은 그런 것조차 없으니 한방에 훅 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범이 무력감일 것 같습니다.
그런 무력감은 우울증으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반사회적 행동이나 냉소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읽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의 주인공이 느꼈을 무력감도 아마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30년전 초음파 사진에서  소설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까지.
이야기가 너무 심하게 비약해 버렸네요.
여하튼 제 이야기들은 모두 기승전한탄으로 마무리 되는 듯 한데 이것도 병이겠지요? ㅎㅎ

댓글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등록시간 2016-04-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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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aeh [2016-04-14 18:46]  시온맘 [2016-04-12 23:57]  podragon [2016-04-12 23:11]  
#2 sharal 등록시간 2016-04-12 23:12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원장님 글을 참 재밌게 쓰시는것 같아요. 귀에 착착 감기는 음악처럼, 전문적인 얘기든 일상적인 얘기든 술술 편하게 읽히게끔 쓰시는 재주가 있으신듯 해요. 얘기의 흐름을 종잡을수 없는것도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ㅎㅎ
초음파 사진은 "전문가 해설" 없이는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추상화처럼, 봐도 뭐가 뭔지 형태 구분도 잘 안되는데 의사 선생님들은 어떻게 그리 보시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나저나 애기집만 확인하고도 신기해서 그 초음파사진을 보고 또보고 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니 감개무량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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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ragon [2016-04-13 11:59]  시온맘 [2016-04-1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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