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최상의 하인이고 최악의 주인"이라는 말이 있다.  
돈의 노예가 되어 그것에 구속되어 살지 말고 돈을 하인처럼 적절하게 부리고 좋은 도구로서 잘 할용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문제는 누구나 그렇게 도구로 잘 활용하고 싶고 끌려 다니길 원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대 사회에서 돈의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다만 그런 구속에 의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영향을 받고 좌우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집단일수록 그러한데 의료 분야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의료 행위의 기준이 교과서적인 원칙이 아니라  돈이 되는 세상은 그리 아름다운 세상은 아닐 것이다. 배고픈 의사에게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맡겨야 하는 환자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

에피소드 1:
아기가 자연적으로 산도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골반에 걸려 있어서 안 나오는 난산의 경우에 할 수 있는 의료 처치는 제왕절개 수술, 흡입 분만, 겸자 분만 등이다.
이 가운데 흡입 분만이나 제왕절개 수술은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는 처치법이지만 겸자 분만은 아기 두개 골절이나 피부 손상의 위험이 많아서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취술과 항생제가 발달하여  제왕절개 수술이 비교적 안전한 출산법의 하나로 자리 매김하는 19세기 후반까지, 그리고 흡입기가 개발되어 일선 분만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기 전까지는 겸자 분만법이 거의 유일한 난산의 해결 방법이었다.
겸자 분만법이 처음 사용된 나라는 중세의 프랑스라고 한다.  출산을 돕는 조산을 업으로 하는 가문의 의사가  출산 보조 도구로 겸자를 발명한 것이 1630년이다. 그 겸자 덕분에 난산인 많은 산모들이 자연분만을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산모와 아기의 건강도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몰려 드는 산모로 하여 그 가문이 엄청난 부를 축척하였다.  그 가문의 의사들은 다른 의사들이 알게 될까봐 겸자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사용했다. 산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분만할 때는 산모의 눈을 가리고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고 하며  겸자가 부딪히는 금속성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가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동양의학에서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비방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에피소드 2:
내가  대체 군복무와 대형병원에서의 1년간의 봉직을 마치고 일선 개원의로 처음 은평구에 개원하던 때 다. 병원 내부 인테리어를 할 때 인테리어를 책임진 반장이라는 분이 점심 식사후 한가한 틈에 내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 주었다.
그 분의 아내가 아기를 낳을때 산부인과 원장이 자연분만이 힘들 것 같아 수술해서 출산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는 지금처럼 의료보험이 될 때가 아니라서 제왕절개 수술에 따는 비용이 엄청나게 비쌌다. 제왕절개 수술비를 마련하려면 월세로 있던 방의 보증금을 빼야 하는 처지였다. 고민 끝에 그 분의 아내는 다른 병원을 찾아 진찰을 받아 보았고 결국 다른 병원에서 자연분만하여 아이를 순산하였다. 자연분만에 따르는 비용은 제왕절개보다는 훨씬 적었기 때문에 그분들은 방을 빼야 하는 일도, 거리에 나앉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그들은 의사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두번째 병원에서 순산하기는 했지만 그분들에게는 그 일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 일이고 의사들은 원칙보다는 돈에 따라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는 못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자신의 그런 경험을 말해 주면서 반장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원칙에 따라 양심적으로 진료하는 좋은 원장님이 되어 주기를 내게 부탁 하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의사가 필요하겠지만 내가 그분의 부탁대로 좋은 원장님이 되었는지는 어떤지는 모르겠다. 좋은 원장의 기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기는 했다.

의사에게 돈은 어떤 의미인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경제 논리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면 불법이지 않은 어떤 방법이든 동원해서 돈을 벌면 된다. 그러나 의료란 경제 논리에 의해서보다는 다른 논리 즉 환자의 건강 확보에 따라 최선인 것을 택하는 쪽으로 해야 하는 분야라고들 말한다.
전자에 따르는 것을 영리 의료라고 부르고 후자에 따르는 것을 공공 의료라고 부른다. 주로 유럽쪽 국가들이 공공 의료의 비중이 높고 미국쪽이 영리 의료의 비중이 높다. 각각은 장단점이 있다. 공공 의료인 사회 보험 제도의 영국에서는 의사는 많은 일을 할 동인이 없다. 산부인과의 경우 의사 얼굴을 4개월 가까이 되어서야 처음 본다고 한다. 하루에 진료하는 인원도 10명 이내이다. 정해진 월급을 받는 의사 입장에서 환자를 많이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환자 입장에서 비용은 거의 안들거나 저렴하지만 진료의 질이 떨어진다. 반면 미국은 자신이 노력한만큼 수입이 늘어난다. 과도한 검사나 치료가 행해지고 검사나 치료 비용도 상당히 높다.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비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사회 보험 제도인 전국민 의료 보험이 시행되었으니 외견상 영국식 방식을 띄고 있다. 그러나 의료 보험 제도의 범위를 벗어난 많은 비급여 진료가 있기 때문에 일부 영역에서는 미국식 영리 의료의 측면이 있다. 따라서 감기 치료나 간단한 검사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검사와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중증 질환으로 치료를 받거나 미용 목적에 가까운 것들, 필수적이지만 정부 재정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병실료 같은 경우는 많은 비용 부담이 환자에게 떠 넘겨져 있다.

의료의 수준이 매우 높아 전세계적 의료 관광으로 유명한 병원으로 싱가포르에 레플즈 병원이 있다. 그 병원이 뛰어난 병원으로 자리 매김한 가장 큰 이유는 그 병원은 정부가 간섭하는 분야는 바로 포기한다는 점이라고 들었다. 그 병원은 정부의 간섭이 없이 전적으로 의료의 질과 의료진의 능력에 의해 평가 받고 수가를 책정할 수 있는 분야에만 매진하였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의료 보험 수가의 통제 하에 있는 행위들이 대부분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내외산소==메이저 과목)는 지금 지원하는 의사가 거의 없다. 수고의 대가에 비하여 얻는 수입이 작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로서는 보람이 적으며 그로 인해 지원자가 줄고 의료의 질적 수준도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반대로 의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많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피안성)는 인기가 천정 부지이며 많은 의사들이 그 분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런 분야에 관하여는 기술 수준도 발달하여 중국 등지의 의사들이 국내의 기술을 배우러 몰려 오기도 한다.
의료 인력이 부족해지고 인력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의료 보험이 적용되어  비용의 부담이 적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비급여 분야가 많아 비용의 부담은 크지만 의료의 질이 높고 보람을 가진 의사에게 대우 받으면서 진료를 받는 것이 나은지 잘 모르겠다.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의료 환경이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무언가? 없다. 모든 것에는 빛과 그늘이 있다는 정도?
그리고 의사에게 돈의 의미는?
모든 의사들이 돈이 전부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면 경영학과 같은 분야를 택하는 편이 나았을테니까.
그러므로 의사에게 돈의 의미란 원칙에 따르는 양질의 진료를 하면서도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지 않았으면 좋을 정도 쯤은 사회와 국가가 대우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댓가이다. 다른 의사들도 돈을 그런  정도 의미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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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52 [2017-10-22 17:27]  무지개 [2017-02-03 07:02]  podragon [2017-02-02 21:23]  zoomooni [2017-02-01 23:17]  
#2 zoomooni 등록시간 2017-02-01 23:23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원칙을 지키며 진료하는게 쉽지 않은 거 알고 있는데... 점점 세상이 나아지길 바라며... 언젠가 장인, 원칙을 지키는 분들이 더 인정받고 대접받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저도 친오빠가 한의사인데 ㅋㅋ 다이어트 한약 지으면 돈 많이 벌거라고 설득해도 몸에 안좋다고 절대 안지어 주고 팔지도 않네염;; 그래서 원장님 뵈면 가끔 오빠가 생각나긴 하는데 ㅎㅎ 책으로라도 나중에 꼭 대박나시길 바랄게요ㅋㅋ
(책은 꼭 구입할라구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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