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는 이야기도 앞글 "포로리, 그리고 삶의 한계"와 같은 주제의 이야기다.위 사진은 오늘 아내와 함께 먹은 감자탕 한차림의 모습이다. 아내는 등산을 좋아해서 휴일에도 혼자 산행을 하곤 한다. 오늘은 북한산 밤골 쪽으로 올라 갔다가 내려 오는 길이라고 했다.  사진에서 우측 옆에 있는 소주는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아내의 것이다. 의사는 근무 중에 술을 먹으면 안되는데 나는 365일 24시간 일을 해야 하므로 술을 먹지 않는다. ㅎㅎ. 사실 원래 술이 몸에 맞지 않아서 먹지 않기는 하지만. 빨강 뚜껑은 아니고 초록 뚜껑이다. 얼마전 여동생이 말해 주어서 빨강 뚜껑과 초록 뚜껑의 차이를 알았다.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난 이름난 중국집에서 맛있는 탕수육이라도 먹으려고 했었지만 감자탕을 저녁 메뉴로 결정했다. 난 감자탕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메뉴는 전적으로 아내의 의견을 반영한 결정이다. 아내는 원래는 북한산 근처에 있는 만수면옥에서 서울식 불고기를 먹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내의 마중을 위해 간 북한산은 병원에서 차로 정확히 45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런 먼 거리에서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정도의 심장을 가지지 못했다. 언제 경산모가 온다는 연락이 병원에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 편히 먹기 위해 병원에서 멀지 않고 전에 산 적이 있어서 추억이 깃든 홍제동 근처로 와서 먹기로 한 것이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포기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결정하다보니 감자탕이 되었다. 저녁 메뉴를 결정한 과정을 너무 장황하게 적은 것 아닌가 생각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잠에 들기 전 뒤척이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에만 30페이지를 할애한 탓에 어느 편집자로부터 출판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물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40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라 30페이지는 그야말로 책의 1%도 차지하지 않는 아주 일부 분량이기는 하지만. ㅋㅋ

살면서 가지는 한계는 경제적 한계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시간적 한계에 의해서도 생긴다. 먼 외국으로의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하면서 하루나 이틀만 시간을 내는 사람은 없다.  부산까지 10분만에 갈 수 없는 것도 시간의 한계 중 하나다. 그런 한계는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니 억울할 것은 없다.  제주도처럼 누구는 비행기를 타고 한시간만에 가는데 나는 걷거나 배를 타고 수십일에 걸쳐서 가는 수 밖에 없다면 조금은 억울할 것도 같다. 시간적 한계와 더불어 사실 가장 많이 삶의 모습을 규정 짓는 것은 마음의 한계다.  어릴 때부터 굵은 밧줄에 묶여 있던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혼자 힘으로 밧줄을 끊을 수 있을만큼 자라서도 밧줄을 끊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릴 때 생긴 선입견 때문이라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한다. 내가 말하는 기준에 따르자면 그것이 마음의 한계다. 오늘 먹은 감자탕도 이를테면 내 마음의 한계에서 초래된 메뉴였다.

우리 아이들은 생선을 잘 먹지 못한다. 내가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다보니 집에서 아내가 생선 요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자주 먹지 않다보니 아이들도 생선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부모가 가진 한계가 자녀에게도 대물림되는 모양이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흙수저 이야기도 같은 결국은 같은 이야기이다. 식성의 경우에는 남자는 군대 갔다 옴으로써 변하기도 하는데 생선을 못 먹던 아들놈은 군대 갔다 온 후에는 생선은 물론 회도 먹게 바뀌었다.  여자의 경우는 군대는 가지 않는 대신 임신 출산 기간을 거치면서 입맛이 바뀌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평소 신 것을 먹지 못하던 사람이 임신 초기에 신 음식을 찾는 것도 드문 사례가 아니다. 아이들 입맛에 맞추다보니 엄마의 입맛이 변했다는 사례는 아주 흔하게 듣는다.  

한계는 한번 설정되면 넘어서기가 아주 어렵다. 군대나 임신은 일생에 한번 혹은 두번 정도 밖에 겪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 넘어설 수 있는 한계도 겨우 입맛이거나 생활 습관 정도이다. 마음의 한계는 정신과에서는 강박증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에서 잭 니컬슨처럼 어떤 사람은 도로에 그어진 금을 밟으면 마음이 굉장히 불안해진다고 한다. 물론 그 영화도 나는 보지 못했다. 또는 물건이 비뚤어져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 져서 반드시 가지런히 각을 맞추어서 놓아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도 있다. 나도 약간 그런 경향이 있지만 병적인 정도는 아니다. ^^
여하튼 한계란 넘어 서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형성되고 난 후에 넘어서려고 노력하기 보다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경제적 궁핍 등 타고난 한계야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한계는 스스로 만든 것들이다. 특히 마음의 한계가 그렇다. 인도 같은 나라를 빼고는 타고날 때부터 신분 차이가 지금은 없어진 것은 참 다행이다. 지금이 조선시대고 난 노비의 아들이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ㅎㅎ
오늘 먹은 감자탕은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노비의 풀죽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왕의 만찬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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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징이맘 [2017-11-01 09:16]  zoomooni [2017-10-31 00:37]  daphne [2017-10-30 20:03]  podragon [2017-10-30 16:40]  
#2 zoomooni 등록시간 2017-10-31 00:47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저는 돼지고기를 안먹는 엄마 덕(?)에 ㅋㅋ 20살에 감자탕을 처음 먹었고...두부김치도 처음 먹었답니다.   아시겠지만 ㅋㅋ 뼈해장국은 망원시장쪽에 일등식당에서 포장해서 종종 먹는데;; ㅋ 지금은 없어서 못먹는다는^^

살면서 입맛도 변하고 습관도 변하고 상황도 변하는 거 같아요^^ 24시간 대기조를 서시느라 책임감에 호랑맘님이 드시고 싶어하는 저녁도 못 드시고~ 소주일병을 까셨군요 ㅋㅋㅋㅋㅋㅋㅋ

훗날 오늘의 감자탕을 웃으며 추억하는 날이 오시길~^^

댓글

삼겹살은 직장다니며 회식때 거의 첨 먹었는데 ㅋㅋㅋㅋㅋㅋ 약간 냄새나서 즐겨먹진 않네요 ㅋ 술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수유로 인해 ㅜ.ㅜ 벌써 몇년째 금주중입지용 ㅋㅋㅋ  등록시간 2017-10-31 23:55
돼지 고기를 안드신다면 고소한 삼겹살의 맛도 모르고 지내셨겠네요. 삼겹살에 소주 한병이면 그만이죠. 전 소주를 못 먹어서 아쉽지만. ^^  등록시간 2017-10-3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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