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열매 안에 있는 번식을 위한 작고 단단한 것. 또는 일반적으로 생물의 번식의 바탕이 되는 것."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씨에 대한 설명이다.
위 사진은 얼마전 아내가 베트남 여행을 다녀와서 내게 선물해 준 씨다. 호두나 땅콩처럼 흔히 보는 종류가 아니라서 겉만 봐서는 무엇인지 처음 봤을 때는 알지 못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많이 먹는 견과류 중의 하나이지만 대부분 다른 것들도 그렇듯이 씨껍질을 벗긴 알맹이만 보아온 탓에 알기가 어렵다. 씨는 마카다미야였다. 알맹이는 땅콩보다 조금 크고 고소한 견과류로 어린애들이 가지고 노는 공기돌과 흡사하다. 시장에서는 껍질을 깐 알맹이를 팔기 때문에 씨껍질 채로 본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껍질은 단단하다고 알려진 호두보다도 더 두껍고 단단했다. 망치나 돌로 내려치기 전에는 안의 보드라운 알맹이를 먹을 수가 없다. 도구를 자유 자재로 쓰는 사람이 아니면 먹기 힘들 듯하다. 그렇게 단단한 껍질을 가진 이유는 아마도 외부의 포식자 (그렇게 말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딱히 적당한 표현이 없어서. ㅠ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껍질을 깨서 쉽게 알맹이를 먹을 수 있었다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수 있는 행운을 만나는 마카다미아는 극소수였을 것이다. 물론 땅콩이나 대부분의 과일들처럼 비교적 까기 쉬운 껍질을 가진 것들도 있다. 그런 것들은 다수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말하자면 바닷가를 새까맣게 덮는 새끼 거북이처럼 인해전술 식으로 개체의 존속을 유지해 나간다.
사람의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뇌는 단단한 머리뼈 안에 안전하게 들어있다. 뇌는 두부와 상당히 비슷한 색이기도 하지만 그 무른 정도도 두부와 거의 비슷하다. 조금만 압력이 가해져도 쉽게 파괴되는 섬세한 조직이라 의료 분야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대상에 속한다. 그런 탓에 뇌를 다루는 신경외과 의사는 산부인과 의사와 더불어 의료 분쟁에 가장 많이 시달린다. 단단한 머리뼈가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아마 어떤 사람도 수년 이상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어릴 때 놀다 친구와 혹은 놀이 기구와 부딪힌 기억 한두번 이상은 누구나 있을텐데 머리뼈가 없다면 그런 상황은 곧바로 사망으로 연결된다. 사망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는 머리뼈를 대신할 커다란 헬멧을 모든 사람이 필수적으로 하고 다녀야할 것이다. 겨울이야 그렇다쳐도 더운 여름에 헬멧을 쓰고 다녀야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상상만이 아니라 실제로 acalvaria라고 해서 머리 뼈가 형성이 안되는 기형이 있다. 머리뼈와 함께 아예 대뇌가 형성이 안되는 anencephaly (무뇌아)라는 것도 있는데 그것보다 더 드문 기형으로 10만명 중에 한명도 안될 정도로 발생율은 매우 적다. 머리 뼈가 없이 태어나는 아기의 경우 임신 중과 출산시 뇌가 손상을 입기 쉽고 동반 기형도 많아서 출산후 생존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런 기형들은 생리 주기로 계산했을 때 6주 내지 7주 무렵 뇌와 머리뼈, 척추뼈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위험 약물이나 방사선 등에 노출이 되면 생길 수 있으나 원인 불명인 경우가 더 많다. 뇌만큼이나 중요한 척추신경 역시 척추뼈 안에 보호되어 있어 교통사고나 낙상, 추락 등 강한 외력에 의하지 않고는 손상되지 않는다. 심장이나 간도 중요하기 때문에 갈비뼈 안에 보호되어 있다. 다만 갈비뼈는 머리뼈나 척추보다는 약한 뼈로 납작한데다 얇아서 외부의 충격으로 손상을 입기가 쉬운 편에 속한다. 인공 호흡시 심장 압박으로 부러지기도 하고 골프를 치다가 부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심지어는 심하게 기침을 하다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부러져 벌어지기보다 금만 간 상태로 있어서 통증 외에는 다른 증상이 없어 모르고 넘어가는 수도 있다. 나중에 가슴 엑스선 검사에서 우연히 과거 골절이 발견되는 사례가 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뼈에 의해 보호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여성의 난소와 자궁, 그리고 방광이다. 난소와 자궁은 골반뼈에 의해 보호되어 있다. 강한 충격으로 골반이 크게 골절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궁이나 난소가 손상을 받을 일은 없다. 아마도 2세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데 있어서 중요 장기이기 때문에 골반뼈로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반면 남자의 정소 (고환)는 외부로 노출되어 있어서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 운동하다 고환이 맞아서 터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물론 터졌다고 해서 다 불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환이 체내에 있으면 높은 체온에 의해 정자의 생성이 지장을 받아서 임신이 어려운 수가 많다. 잠복 고환이라고 해서 태아 때의 고환이 복강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복강내에 머무는 경우가 그런 경우다. 정자의 형성도 어려울 뿐 아니라 종양의 발생 사례도 많기 때문에 잠복 고환은 제거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마카다미아 열매 이야기하다 고환까지 왔는데 그러고 보니 그 둘은 거의 크기가 비슷하고 생김도 비슷하다. 다만 마카다미아 열매는 고동색인 반면에 고환은 백막이라고 해서 비교적 질긴 백색의 껍질로 싸여 있어 색깔이 다르기는 하다. 난소도 크기가 2cm 내지 3cm 정도이고 색깔은 베이지 색으로 작은 메추리알 비슷하게 생겼으니 셋다 크기나 모양에서 도낀개낀이라고 할 수 있고 마카다미아 열매나 고환 또는 난소는 모두 씨랑 관련된 것이니 어찌보면 사실 다를 것은 없다.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는 점도 동일하다. 마카다미아에게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씨를 빼먹는 인간은 자신의 존속을 위해 해로운 존재일 것이다. 단단한 껍질 덕분에 다람쥐로부터 피했고 망치를 들고 깨먹을 정도의 정성이 없는 나와 같은 게으른 사람으로부터도 피했으니 껍질에게 축복을 내릴 일이다. 여하튼 씨를 소중하게 지키지 못하면 마카다미아에게도 인간에게도 미래는 없다.
사족:
제 둘째 처남은 종묘 회사에 다닌다. 처남한테 들으니 국내 종묘 회사들이 거의 전부 외국 사람의 소유로 넘어갔다고 한다. 하여 이젠 농촌에서는 외국 종묘 회사에서 비싼 돈을 주고 씨를 사서 농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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