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 사이에는 토끼같이 귀엽지는 않고 나를 닮아 고슴도치 같이 까칠한 딸이 둘 있고 아내를 닮아 수더분한 성격의 아들이 하나 있다. 딸 둘은 미술 대학을 다녔거나 다니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림에 대한 재능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나는 두 딸 모두에 대해 미대 지원을 반대했다.  내 여동생도 딸을 둘을 두었는데 두 아이 모두 미술을 전공했다. 큰 조카는  대기업의 유저 인터페이스 파트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출산으로 몸조리 중이고 작은 조카는 개인 사업으로 웹페이지 디자인 등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내 남동생에게도 역시 두 딸이 있는데 두딸 모두 미대에 가고 싶어 했는데 재능이 그리 뛰어 나지 않았는지 어땠는지 큰 조카는 공대에 들어갔고 둘째는 아직 중학생이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 슬하의 3남매가 낳은 자식들이 전부해서 7명인데 내 아들만 미술 관련이 아닌 대학을 다녔고 막내 조카는 아직 미래가 결정되지 않았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미술 대학을 나왔거나 꿈꿨었다.

나도 학창 시절에는 미대를 잠시 꿈꿨던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야 어릴 때 내가 집에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것을 보아 왔으니 미술 쪽에 자연히 관심이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내 여동생과 남동생은 미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이 살았다. 그런 점을 보면 가계에 미술 쪽으로 유전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조상님 중에 화가 혹은 화공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고 조선조 화가인 심사정은 직계 조상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 분 말고는 딱히 기억나는 분이 없다. 조상 중에 화가 혹은 화공이 없는 것은 유전자가 있더라도 환경적인 뒷받침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 화가 이중섭이야 먹을 것이 없어도 맨 바닥에 나뭇 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담배 은박지를 꼬챙이로 긁어 그림을 그렸다지만 그 정도의 열정과 재능 정도이 없는 사람은 먹고 사는 것에 치여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내 보지 못하고 생활에 파 묻히게 마련이다.

나는 화가는 되지 못했고 의사가 되었는데 화가로서의 재능이 모자라고 그만한 열정이 없어서라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미술 대학을 갈 정도의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런 생각이 있지만 부모님은 특히 한 세상 잘 먹고 살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하여 공대에 지원하기를 원하셨지만 공간 감각도 빵점이고 설계도가 그려진 청사진 같은 것을 보는 것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라서 공대는 아예 마음에 없었다.  기술자로서는 먹고 사는데 손색이 없는 의사가 되었지만  기술자도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먹고 살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좋게 말해서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장사 수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런 건 타고 나지도 못했고 살면서 갖추지도 못했다.

어차피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고 힘들었다면 미술 대학을 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적이 간혹 있다.  지금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더 힘들었을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 알 수는 없지만 모르긴 몰라도 미대를 나왔다면 지금처럼 몇 억원의 빚이 있지는 않을 것 같다. ㅠㅠ.  먹고 사는 것의 고단함과 치열함은 세상 누구든 적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가젤도 살기 위해 사자로부터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야 하고 사자도 죽을 힘을 다해 가젤 영양을 쫓아야 한다. 못 잡으면 어미 사자나 새끼 사자들 모두 굶어 죽는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고단한 일이지만 화가로 산다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서 여러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안도 주고 감동도 줄 수 있다. 물론 내 큰 딸처럼 이상한 그림을 그려서 보는 사람에게 위안은 커녕 공포감을 주는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얼마전 서점에서 어떤 미술책을 선 자리에서 한참을 보았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명한 어느 작품에 대한 그림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화가로서의 삶도 한번쯤 살아 볼만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표현하면서 그것으로 업을 삼아 먹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아래 그림들은 서점의 책에서 한참을 보았던 모리조 그림을 포함하여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3 작품이다.
첫번째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의 “제비꽃을 꽂은 베르트 모리조”라는 작품이다. 모델인 모리조는 당대 최고의 지성과 미모를 가졌다고 하는 여인으로 그녀 자신이 인상파 화가이기도 하다. 마네와 연인 관계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두번째 그림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인데 모델은 화가가 연정을 품었던 여인이라는 설과  베르메르의 상상속 인물이라는 설이 있는데 어느 것도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세번째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이다. 모델은  상인인 프란체스코 디 바르토로메오 델 조콘도와 결혼한 리사 마리아 게라르디니라는 설도 있고 다빈치 자신을 여성화시킨 자화상이라는 주장, 다빈치의 어머니라는 주장 등 의견이 분분하다.
모델이 실제의 인물이던 아니던 모두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음악도 그렇지만 좋은 그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세상사의 시름을 잠시 잊고 몽롱한 꿈 속을 거니는 듯한 기쁨에 빠지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심하면 스탕달 증후군을 겪을 수도 있는데 아름다운 그림 같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감상하다가 심장이 빨리 뛰고, 의식 혼란이나 환각을 경험하는 것을 "스탕달 증후군"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여인 이야기는 이쯤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아름다운 남자도 한 꼭지 넣어 본다.
아래는 허핑턴포스트 2018.04.26일자 기사의 일부이다.
<뉴욕에 사는 로이바 마리아는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탔다. 그녀는 ”너무나 잘 생긴” 남성이 건너편에 앉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깜짝 놀랐다. 로이바는 허프포스트에 그 멋진 남성의 사진을 몰래 찍은 건 사실이지만, 생각날 때 혼자서만 보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당시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많이 본 얼굴이라는 느낌만 들었다”라며 그래서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에 사진을 여러 장 찍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바는 카메라에 담은 남성을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만나게 됐다고 버즈피드에 말했다. 남성에 대한 기사가 며칠 뒤 뉴스피드로 뜬 것이다. 그녀가 지하철에서 만난 남성은 나일 디마코였다. 청각장애인인 디마코는 모델이자 운동가이다. 2015년에는 ‘도전 슈퍼모델 24(America’s Next Top Model)’에서 우승했고 2016년에는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다.>



아름다움은 사람의 외모든 그림이나 꽃, 풍경 등  어떤 것이든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아기를 가진 엄마에게는 자신의 아기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포근히 잠자는 아기를 볼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말고 속의 아름다움 즉 마음의 아름다움도 외부로 드러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인지 아닌지 밖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마음이 아름답게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신이 실수 한 몇가지가 있는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다른 사람이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신이 인간에게 한 실수 중 제일 큰 것은 기도를 식도의 앞에 두어 질식이 되기 쉽게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난 조물주의 존재를 믿지는 않고 진화론을 믿는 의사지만 신이 호모 사피엔스 버전 2를 만든다면 그 점은 꼭 염두에 두고 반영해 주시길 바란다. 사람마다 누구나 머리 위에 동그란 링이 하나 달려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이쁜 무지개색으로, 마음이 못생긴 사람은 칙칙한 회색이나 검은색으로 보이게 말이다. 링은 감출 수 없고 요즘의 뛰어난 분장술사들의 장난이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세상이 정말 있다면 난 고민이다. 검은색을 좋아하니 검은 링을 머리에 달기 위해  마음을 더 못되게 먹어야 할지 아니면 마음에 들지는 않는 색이기는 해도 마음을 착하게 먹기 위해 노력해야 할지......

댓글

저도 의학과 미술은 이어져 있는 것 같아요! 의술은 마치 완벽한 퍼포먼스 아트같아요. 관객과 작가가 호흡하며 만드는 예술이요. 이상 일러스트레이터의 답글이었습니다. ㅎㅎㅎ  등록시간 2018-05-1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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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m1502 [2018-05-12 10:50]  hanalakoo [2018-05-11 07:39]  rutopia [2018-05-10 21:43]  oscar52 [2018-05-10 12:11]  sinzi11 [2018-05-10 09:48]  podragon [2018-05-09 17:02]  daphne [2018-05-09 06:30]  satieeun [2018-05-09 04:01]  
#2 hanalakoo 등록시간 2018-05-11 07:56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어머 따님들께서 미술을 전공하셨군요. 의사도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는 시대를 읽는 통찰력, 가려진 것을 볼 줄 아는 정직한 눈과 그것을 돕는 손! 이 있어야 하는데 심원장님께선 이미 다 가지셨잖아요~ 이상 화가 남편을 둔 아내의 답글이었습니다. ㅎㅎㅎ

댓글

남편분이 화가셨군요. 의학은 과학보다 예술 쪽에 가깝다고는 합니다. 제가 예술가적으로 소양은 없지만, 일부 소수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다는 까칠과 예민함은 남부럽지 않게 가지고 있습니다. ㅎㅎ  등록시간 2018-05-1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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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m1502 [2018-05-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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