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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게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2013-01-23 18:04| 글쓴이: 심상덕| 댓글: 0


의사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게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 

흡족한 결과에 대한 높은 경제적인 수입이라고 하는 당근 ? 
아니면 잘못된 치료에 대한 엄격한 징벌이라고 하는 채찍 ? 

의학이 현재처럼 발달 되기 전의 중세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한의학이 그랬던 것처럼 서양의 의료도 그 치료 효과는 매우 낮은 반면 의료가 안고 있는 위험 부담은 상당히 컸다고 한다. 
동양의 사상 의학처럼 서양에도 4 체질론이라고 하여 아주 비과학적인 바탕에 의료가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보니까 치료율이 낮을 수 밖에 없었다. 
동양에서는 주로 내과적인 약물 치료나 침습 행위라고 해 보아야 침술 정도였기 때문에 치료로 인한 후유증이나 결과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서양에서는 절단이나 절개 등의 외과 수술도 종종 시행이 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치료로 인한 결과가 명확한 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적극적인 치료 방법에 비하여는 마취 기술이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항생제가 미처 발달하기 전이라서 치료의 후유증으로 장애가 남거나 사망하는 사례도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이런 댓가를 치루면서 해부학, 혈액학, 세균학 등의 기초 의학이 든든해 지고 결국 서양에서 현재의 현대 의학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 의학도 여전히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데 그것은 과거처럼은 아닐지라도 역시 오진에 의해서거나 또는 치료의 한계로 인하여 환자가 후유증을 안게 되거나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치료가 실패하여 장애가 남게 되었을 경우 치료를 담당한 의사의 손을 자른다거나 비슷한 정도의 상해를 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눈의 치료를 제대로 못하였을 경우 의사의 눈을 뺀다든지 하는 식의 일도 다반사로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의사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런 담보 장치를 마련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는 의사라는 직업이 얻는 기대치에 비하여 지불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너무 높아 지금과 같이 선망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저 이발사나 장화 수선공처럼 귀족의 생활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보조적으로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장인 중의 하나에 속할 뿐이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이러한 담보는 다른 방식으로 마련이 되었다. 
즉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나쁜 결과에는 경제적인 댓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의사의 과오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는 법적인 소송을 통하여 그에 상당하는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의사로서는 그런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를 택하지 않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는 최선의 노력을 담보할 수가 없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이 방법은 몇가지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는 데 첫째는 의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 지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 하는 주체의 문제 내지는 객관성의 문제가 있고 두번째는 후유 장애를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댓가로 산정하는 게 적절하냐 하는 적절성의 문제가 있다. 
지금도 이러한 문제는 의사와 또는 의사를 대신한 보험 단체와 환자간에 쟁점이 되고 있는 데 어떤 것이 최선의 해결 방법이라고 이야기 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문제가 간단치 않은 이유는 이런 경우에 있어서는 치료를 하는 사람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현재 건강한 사람이라도 잠재적으로는 치료가 필요할 수 있는 환자 그룹이라고 보아야 함)이라고 하는 두 그룹 밖에는 없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든 객관성을 갖춘 중재자 그것도 똑같은 전문 지식을 가진 중재자를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의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각보다 경제적인 면에서든 또는 명예적인 측면에서든 너무 많은 댓가를 치루었다고 생각하게 되면 향후의 치료에서 그를 피해 가기 위해 방어적인 성향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최선을 다하는 자세라고 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점에서든 무어든 의사 개인이 댓가를 치루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의료인이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 
그렇지도 않다는 것은 영국이나 일부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의료 체제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나라의 국민들은 현재 가장 열악한 의료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치료를 제대로 못했다고 생각하는 의사의 손을 자르는 방법이나 또는 그냥 내버려 두는 방법 모두 좋지 않은 방법이라면 어떤 방법이 좋은 방법인 것일까 ? 
의사가 방어적이 되지 않으면서도 결과에 따르는 비난에 관계없이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 
모든 경우에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한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자신의 치료는 자기 자신이 담당하는 방법이다. 
즉 환자가 곧 의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이므로 당연히 최선을 다할 것이며 결과가 나쁘다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벌을 받을 염려도 없다. 
벌을 받을 염려가 없다기 보다 이미 잘못된 치료 행위로 인한 결과가 자신이 받는 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모든 병을 자신이 맡아서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친가족이 치료를 담당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이것도 역시 한계라는 것은 앞의 경우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이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에게 치료를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사를 치료자로 선택할 것이며 그리고 과연 그 의사는 믿을 만한 의사인가 하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즉 환자는 자신의 치료를 맡아 줄 가장 적절하고 믿을 만한 의사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것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의 비극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러한 믿음 즉 신뢰라는 것은 상호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의료에서는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알려져 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을 믿어 주는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은 믿지 않는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기술적인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점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 믿을 만한 의사를 알거나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그다지 운신의 폭이 넓지 않지만 최소한 자신의 치료를 맡는 의사를 믿을 것이냐 말거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환자 개인의 자유 의사에 달려 있다. 
이것이 환자의 비극에 반하여 환자가 가진 권리이다.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 의사를 믿었을 경우 치료 결과가 좋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솔직히 나는 환자가 의사를 믿거나 또는 믿지 않거나 하는 데 따라 치료 결과가 객관적으로 다른지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자신의 치료를 담당한 의사를 믿을 만한 의사라고 생각하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치료 결과에 관계없이 당신은 믿을 만한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를 받아 들이는 것도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 입장에서도 이렇게 자신을 믿어 주는 환자를 만나서 치료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면 무엇이 행복이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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