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오비 산부인과

제목: #18. 초라해도 더블이 좋다 [프린트]

글쓴이: 심상덕    시간: 2020-04-16 00:22
제목: #18. 초라해도 더블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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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금 도착
작가: 월터 랭글리
소장: 개인

외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황새가 물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출산을 배달이라는 의미로 Delivery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왜 그런 말이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기가 태어나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는 말을 흔하게 쓴다. 그 말 때문에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 중에는  자기는 엄마가 낳은 것이 아니라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부모에게 혼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런 생각이 부쩍 더 들었다. 나중에 그 다리가 굴다리 같은 다리가 아니라  엄마의 다리라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면  소년은 어른이 된다.

월터 랭글리가 그린 이 작품의 제목은  New Arrival이다. 옷이나 신발 가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방금 도착했다는 것이니 신상품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말은  신생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림에는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있고 아이의 형인지 오빠인지 소년이 아기가 궁금한지 들여다보고 있다. 랭글리의 그림은 어촌에 사는 서민들의 수수한 모습을 담은 것들이 많다.  이 그림은 그런 어느 가정의 여인이 아기를 보고 있는 모습이다. 방금 부엌일을 하다 온 것인지 앞치마는 풀지 못하고   아기를 어르고 있다. 아기의 아빠는 아마 고기잡이를 가서 없는 듯하고 아이의 할머니는 잔을 들고 마침 차를 마시던 참이다. 월터 랭글리는 11남매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영국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아마도 상당히 곤궁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런 삶의 경험 때문에 그는 영국의 뉴린이라는 어촌 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다룬 작품을 많이 남겼다.

내가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까 혹은 하고 싶은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여러 가지가 떠올랐지만 그중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어촌에 살면서 어부로 사는 삶이었다. 바다를 좋아해서다. 그래서 전공의 2년 차 때 제주도 한라 의료원에 파견 나가 산부인과에 근무하던 때는 무척 즐겁게 지냈다. 매일 저녁이면 차의 트렁크에 전기밥솥 째 담아 나가 함덕 해수욕장이며 협재 해수욕장으로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지냈다. 지금은 국립공원에서도 그렇고 해수욕장에서 그렇고 음식을 해서 먹지는 못하겠지만 그때는 오래전이라 그런 제한이 없었다. 파견 나가 있었던 때가 여름이라 진통 산모가 없는 날이면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저녁은  나가서 해 먹었다. 물론 고기를 굽고 후식으로 밥을 볶는 것은 내 담당이었다. 전에 병원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난 뒤 볶음밥을 볶아서 직원들과 나누어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다들 맛있다고 한 것은 오래전에 쌓아 놓은 실력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 예비 고사에서 전날 밤 몸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서 첫 시간의 국사 시험을 한 칸씩 밀려 쓰는 바람에 점수가 형편없이 나왔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본고사 지원으로 추천해준 학교는 연세대 식품 영양학과와 서울대 수의학과였다. 동물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 수의학과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시면 동생들과 함께 밥도 하고 수제비도 만들어 먹고 해서 요리에 대하여는 거부감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식품 영양학과를 갔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아서 아예 시험을 치지 않고 결국 재수를 해서 의대를 갔다.

제주도에 석 달간 파견 나가 있을 때 제주도 여성들을 진료하면서 서울에 있을 때와 다르다고 느꼈다.  제주도 여성들은 생활력이 매우 강해 보였다. 심지어 제주도에서는 남자들은 거의 다 그늘 막에 누워서 노는 것이 일이었다. 추측하건대 랭글리가 살았던 영국의 어촌 뉴린처럼 어부로 나가 뱃일을 하다 죽은 사람이 많아 남자가 적어서 그랬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랭글리의 그림에도 남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등장한다고 해도 노인이거나 소년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해녀 분들이 있었는데 주로 연세 많으신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복부의 근육이 엄청나게 발달해서 복부를 만져서 자궁의 크기를 측정해 보는 내진은 거의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내 꿈은 빚을 다 갚고 조금 여유 있게 외래 진료만 해도 되는 상황이 오면 제주도에 개원해서 사는 것이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희망이나 꿈이란 어차피 희박한 가능성일 때 인간이 가져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겠는가.  

세균, 아메바, 짚신벌레는 하나의 세포가 분열로 둘로 나누어져서 각각 새로운 개체가 된다. 반면 몸에서  돌기가 자라나서  떨어져 나오는 방식으로 새로운 개체가 탄생하는 방법도 있는데 효모류가 여기에 해당한다. 버섯이나 곰팡이는 몸에서  포자가  떨어져 나와 새로운 개체가 되는 생식 방법을 택한다. 식물의 뿌리나 줄기의 세포가 분열하여 새로운 개체로 자라는 생식 방법도 있다. 양파의 경우가 그렇다. 앞의 경우부터 이분법, 출아법, 포자법, 영양 생식법에 대한 설명으로 모두 무성 생식의 방법이다.   자손을 낳는 방법으로는 남녀 두 성이 함께 해야 가능한 유성 생식이 있고 위의 경우처럼 남녀 두 성이 필요 없는 무성 생식이 있다. 무성 생식을 하는 생물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얻기 어려워 주로 하등 생물에서 보는 번식 방법이다. 인간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고등 생물은 무성 생식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유성 생식은 무성 생식에 비하여 장점이 많아서 진화 과정에서 주류의 생식 방법이 되었다. 유전자의 다양성을 통하여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해진다는 것이 진화 생물학자들의 주장이다.  단지 그런 이유 외에도 부모 둘이 함께 키우는 것이 혼자서 낳고 키우는 것보다 생존의 가능성이 더 높은 이유도 있을 듯싶다.

같이 임신한다는 것은 같이 키우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불가피한 사정으로 같이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이라고 하는 변명으로 세 아이의 육아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였다. 당연히 변명이며 불가피한 사유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내가 아이들의 양육이나 교육에 대하여 무언가 조언을 하거나 주장을 한다는 것은 자격 없는 사람의 오지랖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반면교사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양 부모가 함께 육아를 못하는 경우 특히 아기의 엄마보다 아기의 아빠가 양육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 경우 그 자리는 국가가 대신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종종 들리는 장소 중 하나는 마포 중앙 도서관이다. 도서관 화장실 벽에는 마음에 새겨둘 만한 좋은 글들이 많다. 그중에 하나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글이다. 인디언 속담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출처는 모르겠다. 예전에는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한 아이가 태어나면 온 마을이 함께 기뻐하고 함께 키우고 돌보는 문화가 있었다. 산모의 젖이 모자라면 이웃의 산모가 대신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마을이 사라지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가까이 없다. 아빠도 먹고 사느라 바빠서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흔히 독박 육아라고 부른다.  독박의 정확한 유래는 모르겠는데 추측하기로는 혼자라는 의미의 한자어 독자와 바가지라는 우리말의 약자로 박을 붙여서 만든 말이지 싶다. 독박이란 화투판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로 다른 패자의 돈까지 혼자서 내는 경우에 처한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돕는 사람 없이 혼자서 육아를 해야 하는 경우를  독박 육아라고 하고 친정어머니가 간혹 와서 육아를 도와주는 경우 친정 찬스라고 한다. 산모 혼자서 육아를 하다 보면 정서적 교감은 고사하고 아기의 수유와 온갖 빨랫감에 치어서 탈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즐겁고 행복해야 할 육아 기간이 터무니없는 손해를 봤다는 의미의 바가지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랭글리의 이 그림 신생아에는 아이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고기를 잡으러 가서 없는 것인지 아니면 고기잡이를 갔다가 풍랑을 만나 그만 유명을 달리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랭글리의 다른 작품 "저녁이 가면 아침이 오지만"이라는 그림에는 바다로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 슬픔에 빠진 젊은 여인과 그녀를 위로하는 노파의 모습이 모습이 담겨있다. 아마도 노파의 남편도 바다에 나갔다 못 돌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치료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슬픔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도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의 따스한 위로일 것이다. 인간이 지구 상의 모든 생물 중 가장 번성하게 된 이유를 꼽으라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뇌가 커지면서 똑똑해진 지능, 장거리 달리기도 견딜 수 있는 열 관리 방법,  직립 보행으로 인해  자유로워진 손을 이용하여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 여러 동굴에 벽화를 남긴 것에서 보듯 풍부한 상상력, 언어를 통한 경험과 지식의 전수 등 숱하게 많다. 그중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여럿이 함께 살게 된 것을 꼽고 싶다. 함께 살게 되면서 슬픔은 서로  위로하고,  힘든 일은 서로 나누어서 하고, 기쁨은 함께 즐기면서 누리게 된 것이 현재의 인간을 만든 힘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육아를 아기를 낳은 엄마 혼자서 혹은 아빠가 혼자서 하게 되었다면  지금 인간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연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동물행동학자 해리 할로우는 새끼 원숭이에게 우유통이 달린 철사 어미와 따뜻하고 포근한 감촉을 주는 헝겊 어미를 주는 "가짜 엄마" 실험을 했다. 한쪽에는 철사로 만든 딱딱하고 차가운 원숭이 모형에 우유병을 달아 두고 다른 쪽에는 젖병은 없이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어미 원숭이 모형을 달아 두었다. 새끼 원숭이들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우유 어미에게 잠시 가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헝겊 어미하고 보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엄마에게 매달리는 것은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친밀감과 안정감을 느끼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존 보울비는 애착 이론을 최초로 정립한 영국의 정신과 의사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애착과 상실"에서  애착이 왜 중요하고 그것을 상실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를 썼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애착이란  특별한 사람에게 느끼는  지속적이면서도 강력한 정서적 결속이다. 애착 관계의 사람과 있을 때는  즐거움을 느끼고, 고통이나 괴로움도 덜 느낀다고 한다. 아이와 부모 간의 애착은 아기가 태어난 초기 몇 달 동안에 가장 크게 형성되며 길게는 3년 정도의 기간까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젖을 보채는 행동, 매달리는 행동, 따라다니기, 울기, 미소 짓기는 모두 아기가 보내는 애착 반응들이라고 하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런 유아기의 애착 형성은 매우 중요한데  그로 인해 생긴 신뢰감이나 안정감은 성인이 되었을 때의 대인 관계 형성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살다 보면  혼자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일은 많다. 성인이 되어서 일정 정도의 고독은 인격의 수양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도 있고 수많은 예술 작품의 탄생에 밑거름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유아기를 포함하여 인생의 중요한 고비 때 혼자서 버텨야 한다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나 혼자 영화를 보는 것, 혼자 술을 먹는 것 모두 그리 나쁠 것은 없다. 사실 나도 혼밥으로 보내는 날이 많다.  그러나 혼자 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많다. 혼자 죽는 고독사는 상아탑을 쌓는 코끼리라면 모르지만 어떤 사람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 외에도 혼자 병마와 싸워야 한다든가, 혼자 슬픔을 견뎌야 한다든가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함께의 가치는 즐겁고 기쁠 때가 아니라 아니라 슬프고 괴로울 때 빛이 난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는 책도 있던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초라해도 둘이 함께 하는 것이 화려하게 혼자 있는 것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3 남매 중 장남이다. 어릴 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배부르게 먹지 못했다. 밑으로 두 동생이 없었다면 아마 좀 더 많은 양의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배부르게 먹지 못했다고 해서 슬프고 아쉬웠던 기억은 별로 없다. 지금은 동생들도 있고 아내도 있고 자식들도 있어서 혹시라도 내가 많이 아플 때 곁에서 눈물이라도 흘려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더블이나 싱글은 침대의 규격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 넓지 않은 집에서 좁고 초라한 더블 침대를 쓰는 것보다는 혼자서 넓게 싱글 침대를  쓰면서 방해받지 않는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아파서 병실에 누워 있는 경우라면 혼자 넓게 독차지할 수 있는 싱글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좁고 초라해도 더블 침대였으면 좋겠다. 문제는 이때는 이런 침대를, 저때는 저런 침대를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침대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초라한 더블 침대다. 능력 없는 가장이나 가난한 의사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아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수풀 속으로 굽어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의 발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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