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힐러리는 산에 오르는 이유를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대답을 한 사람으로 헤르미트 쿼터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는 화가는 아닙니다.
언젠가 그가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하여 "내 앞에 캔버스가 있기 때문이며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강렬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그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살고 사랑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을 했다는데 세상에 태어날 때 누구도 태어나서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표현 그대로 빌리자면 우리 인간은 '단순히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득 담은 채 그저 이 세상에 던져졌고 그렇게 던져 졌기 때문에 그런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 나가면 되는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나 그림을 그리는 예술 행위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강렬한 욕망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그의 이런 말을 들어 보면 그의 그림이 가진 철학적인 호소 또는 상징 때문에 그의 그림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했다면 정확히 본 것입니다.
그의 그림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기 어렵고 매우 난해하여 지금까지 누구도 그의 그림을 온전히 제대로 이해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흰 바탕에 역시 같은 흰색으로 칠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않으면 그림이 있기는 있는 것인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어디까지가 대상이고 어디까지가 배경인지 조차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내키는 데로 찍은 점 같은 것이 있기도 하고 길쭉한 선이 나 있기도 하고 혹은 불룩 튀어 나온 면이기도 하지만 미세한 요철에 의해서 생긴 음영이 있어야만 무언가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그림 단독으로는 절대 존재할 수도 의미를 가질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다양한 각도의 빛이 있어야 하며 이것이 그의 그림에서 감동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단순히 보는 것조차도 어렵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그가 붙인 제목으로야 "햇살 쏟아지는 정오", "겨울 눈의 풍경", "눈과 나무", "흰 얼굴의 소녀", "하얀 정물", "백색 외로움", 등 그럴싸한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의 그림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제목에서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것들을 그의 그림에서는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 회화로 넘어 오면서 그림이 일반 대중으로부터 너무 높이 올라가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비난에 대하여 그도 할말이 없는 화가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이 평단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 색만으로도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이 다 그림의 대상일 수 있다는 사실로 하여 그림이라고 하는 영역의 확장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림이란 반드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일반적인 선입견도 그로 인하여 깨졌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그의 그림은 이러저러한 틀에 갖힌 그림이라고 하는 것의 구속을 파괴했습니다.
강의 물이 넘쳐 평야를 풍요롭게 하듯 비록 경계를 넘는 파격과 거부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서 그림이라고 하는 평야가 그만큼 풍요로와 졌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전까지의 많은 화가들은 재료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그는 무엇인가 대상을 보일 수 있도록 그린다고 하는 그림의 표현 방식에서부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그림 세계를 펼쳐 보였습니다. 비록 이해하기가 수월한 것은 아니지만......
인도에서 0 이라는 것이 발견됨으로써 기존의 1부터9 까지의 한계를 가진 숫자 체계가 10, 100 이런 식으로 대폭 확장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그림도 그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그는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의 그림을 정확히 음미하려면 인공광이 아닌 자연광에서 수시로 변화하는 그림을 감상해야 합니다.
인상파 화가들이 자연에서 빛의 변화에 따른 대상의 변화를 뒤쫓는 방식으로 자연을 화면에 담았다면 그는 아예 그림 자체를 그런 자연물의 대상과 동일한 수준으로 올려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의 전시는 보통 자연 채광이 되는 장소에서 하거나 아니면 조명이 움직이게끔 만들어진 채로 비추게 되어 있는 전시실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를 일러 눈을 사랑한 화가 혹은 백색 은둔자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작품에서 눈이라는 제목을 달았으며 작품 활동 내내 익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행적이나 성품 등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두세차례의 전시회를 통하여 그의 그림이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그의 본명도 나이도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그의 그림이 일반인들로부터 평가를 제대로 받아 판매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물려 받은 재산으로 매우 부유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고호처럼 매우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 살아 나가는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입니다.
또한 화가로 활동한 기간이 불과 10 년도 채 안되는 것도 그런 베일을 더 두껍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할 것입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단 22 점 뿐이라고 하며 그중 습작 시절에 그린 몇개의 작품 만이 흰색으로 그리지 않고 노랑이나 파랑 등의 유채색 그림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단 세차례의 전시를 끝으로 더 이상 그의 작품이 발표되고 있지 않은데 아마도 그의 유작일 것이라고 알려진 미완성의 "파란 자화상"이 발견 된 곳은 스위스령 알프스 산맥의 어느 산가였다고 합니다.
물론 그 뒤 많은 수색대가 동원되어 그라고 생각되는 인물의 시신을 찾았지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흰눈이 덮힌 알프스에서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자실인지 실종인지 모르는 채로 사라진 것은 어쩌면 너무도 그 다운 방식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왔는 지 모르는 듯이 그렇게 언제 가는지 모르게 가는 것은 흰색 바탕에 흰색으로만 칠해진 그의 그림의 철학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그가 오래도록 살아 있었더라도 오직 백색만으로 계속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것이 화가들의 세계에서 종종 이야기거리가 되곤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에서는 한번도 흰색 이외의 제목의 색깔을 단 작품은 없었는데 비록 하얀색 일색이었지만 마지막 작품의 제목은 그가 그 무렵의 날짜에 쓴 일기에 남긴 내용을 보면 분명히 '파란 자화상' 그리다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왜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는지 하는 것도 종종 가십에 오르내리기는 하는 데 아마도 나는 그가 백색의 늪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 파란 자화상을 그리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어떤 한계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해 봅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그가 지금도 백색 은둔자라는 이름으로 미술사의 조그만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결국 그는 그가 사랑한 백색의 늪에 갖혀 살다가 백색의 세계로 떠났습니다.
아래 그림은 미완성이지만 그가 남긴 유일한 자화상인 "파란 자화상"입니다
(원래 이 글은 화가의 자화상 시리즈로 40개 정도의 글을 쓰고 맨 마지막에 쓰려 했던 글입니다.
물론 화가의 자화상 시리즈 글도 열몇명 밖에 쓰지는 못했고 그나마 이곳에는 두개 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이 화가는 제가 생각해 낸 가공의 인물이며 제 모습을 가미해서 만든 화가입니다.
이런 화가도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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