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을 보시고 혹시 "2015년을 보내며" 라고 써야 할 것을 잘못 쓴 것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래된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2006년을 보내며" 라는 제목의 글이 있어서 읽어 보고 올린 것입니다.
올해가 2016년이니 거의 10년전 쯤 쓴 글이군요.
당시는 산부인과 의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때라 의료 정책의 문제에 관심도 많았고 힘을 보태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당장 병원 경영도 만만치 않아서 의사회 활동은 접었습니다만.
되돌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아니 의료 환경이나 병원 경영을 포함해 많은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열악해졌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국내 최소의 제왕절개율을 기록하는 등 노력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의료 제도의 문제에 더하여 규모가 작은 개인 병원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2016년에는 경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젊은 사람들은 점점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미루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나라나 국민이나 산부인과 경영 환경이나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환경으로 내몰리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답답하고 씁쓸한 소회에 잠기며 그때의 글을 그대로 아래에 옮겨 봅니다.
(참고로 아래 이미지는 이번에 새로 추가한 것으로 flickr에 있는 moyan brenn이라는 작가의 사진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한해를 마감할 때는 항상 기뻤던 일보다 힘들고 슬펐던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2006년 의료계도 여러 일들로 때로는 시끄럽기도 하고 때로는 암중 모색의 조용함 속에서 지내오기도 했다.
연초에는 건강 보험에서 일반 식대를 지원해 주는 문제로 시끄러웠다가 이내 아무일도 없는 듯 잠잠해지고 이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시 연말 정산 간소화로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각을 세우고 있다.
이번 일도 진행의 경과야  두고 보아야 겠지만 의료 정책은 소수의 정부 당국자의 뜬금없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서 전문가의 의견 반영없이 무책임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의료에 관한한 하나하나의 정책은 모두 국민들의 건강과 직결된 것인만큼 신중해야 함에도 실적 위주의 탁상행정의 희생양이 되곤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져 버렸다.
수십년 전의 전국민 의료 보험에서부터 시작된 이런 좋지 못한 관행은 올해도 어김없이 똑같은 전철을 밟아 왔다.

의료인은 누구나 할 것없이 개개인에 대한 진료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의료 정책에 있어서도 전문가로써의 의견을 내어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지도록 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의료인이라는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면 이익 집단의 항변으로 치부되거나 아니면 잘해야 무관심한 영역으로 내던져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올 한해를 마감하면서 내년에는 의료인의 주장들이 의사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보아주는 시각이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의료 정책을 다루는 정책자들이 그리고  일반 국민들이 자신들도 언제가는 치료를 받게 될 지도 모르는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잃지 말았으면 한다.
신뢰하지 못하는 상대방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두렵고 답답하겠는가.
그런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또한 신뢰란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식 노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신뢰에 대하여 쇼펜하우어가 한 다음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대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나중에 수확하게 될 씨앗과 같다. 지금 하는 행동은 곧 대가를 받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아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대를, 그대는 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모습을 보게될 것이다."

여하튼 나는 지금까지 매년 같은 실망을 겪고 말았지만 그래도 다시금 기대를 가져 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가 의사를 천직으로 선택했고 아직 이 나라에서 의사로 살아가야 하는 날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가 되었든 간에 그런 나를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그런 튼튼한 상호 신뢰 속에 치료를 받고 치료를 하는 관계가 점점 더 늘어나고 견고해 지는 것이다.
2006년도를 마감하는 시점에 내가 의사로서 바라는 소박한 기대가 그저 기대만이 아니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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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in [2016-01-08 16:44]  xingxing [2016-01-08 15:31]  시온맘 [2016-01-08 15:11]  정인♥ [2016-01-08 12:33]  podragon [2016-01-07 21:46]  
#2 podragon 등록시간 2016-01-07 22:11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씁쓸하다 하셨지만...10년이 지나서도 원칙을 지키시고 환자에게 신뢰받는 의사로 남아주신 원장님을 존경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으셨다는 증거 글이네요...10년 전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지표인 것 같습니다.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아보니, 하마터면 이 기쁨과 소중함을 모르고 지날 뻔 했다는 생각에 아찔하면서, 저출산 사회가 더욱 슬프게 느껴집니다. 마음 편하게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늙어갈 수 있는 사회...를 꿈조차 꿀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 원칙을 지키고 신뢰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진료하는 훌륭한 의사가 경영난에 늘 고뇌하신다는 것이 무척 안타깝고.. 한편으론 안일하게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며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저도 10년 후에는 좀 덜 부끄러운 마음으로 오늘을 돌아볼 수 있기를, 그리고 좀 더 많은 아기들이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댓글

초라한 경영 성적표를 받아들고 보니 난감하고 답답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이해하고 성원하여 주시는 분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올 한해는 목적하시는 일 다 이루시는 한해 되길 바랍니다.  등록시간 2016-01-07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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