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산모수첩
작가: 심상덕
소장: 진오비 산부인과
"이 분이 네가 세상에서 제일 처음 만난 분이란다."
1년 전에 우리 병원에서 출산하신 후 외래 진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신 어떤 분께서 태어난 지 이제 돌 밖에 안된 아기에게 나를 가리키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직 1년도 채 안된 아기가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겠지만 아마도 감사의 표현을 그렇게 하신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병원에서 출산을 하면 아기를 가장 먼저 보고 만지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라 산부인과 의사다. 세상을 살면서 숱한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세상에 처음 올 때 함께 있는 사람과 세상을 떠날 때 함께 있는 사람은 대개 특별한 사람이다. 대부분은 가족이지만 가족 외 함께 있는 사람은 출산 때는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일 것이고 임종 때는 내과 의사나 혹은 종교인일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한국 1인 가구의 수는 약 520만 명이라고 한다. 전체 가구의 약 27.2%다. 그래서 요즘 혼자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혼밥, 혼자 술을 먹는다는 뜻으로 혼술이라는 말이 유행을 지나 보편적 추세가 되었다. 다른 사람과 꼭 함께 하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위에 적은 것 외에도 아주 많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원하든 원하지 않는 어떤 누구도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출생이다. 오래전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 세상 누구도 혼자서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부모가 둘 다 함께 있거나 최소한 어머니가 있어야 태어날 수 있다. 요즘은 대부분 병원에서 출산하니까 출산을 돕는 의사에 간호사까지 3명 아니면 4명이 옆에 있다. 태어나는 순간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이때 혼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이 걸린 문제다. 만일 인간이 자궁 안에서 태어나는 태생이 아니라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이라면 그래서 상황에 따라 어머니가 옆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경우였다면 그래도 지금처럼 인류가 번성했을지는 의문이다. 바다 거북이처럼 수백 개의 알을 낳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한 개 어쩌다 두 개쯤의 알을 낳고 그 알이 밖에서 알의 상태로 10달간을 지내게 된다면 어땠을까?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포식자가 나타나거나 추운 빙하기가 닥치면 알이나 알에서 방금 태어난 새끼는 잡아 먹히거나 얼어서 죽고 말 것이다. 반면 모체의 따뜻한 체내에 있다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미의 보살핌을 받는 태생 동물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공룡은 멸종하고 포유류가 살아남은 이유를 진화생물학자들은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 인간이 알의 상태로 있다가 혼자 껍질을 깨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줄 어머니가 있는 곳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아기에게는 무한한 축복이다. 방어력이 아무것도 없는 아기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지켜줄 부모와 함께 있는 것보다 안전한 것은 없다. 부모와 함께 있다는 것은 생존 확률이 가장 높은 방식일 뿐 아니라 원만한 정서를 지닌 인간으로 자라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인간적 유대 관계의 형성이라는 점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과학이 발달하면 인공 자궁에서 로봇의 도움으로 아기가 태어 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 그것은 가까운 미래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태어나는 과정은 우리의 생각만큼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시험관 임신이라는 말은 요즘 흔한 말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단어다. 수십 년 전에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 과정은 오직 어머니의 난관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어머니의 난관이 아닌 신체 외부 즉 시험관에서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정란이 자궁 내막에 착상되어 성장하는 과정은 아직까지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17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는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난 양을 산소 공급기가 연결된 바이오 백(biobag) 안에 이식하여 키우는 실험이 진행된 적이 있다. 이외에도 인공 자궁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동물 실험이 시행되었지만 아직 의미를 부여할만한 성공 사례는 없다. 인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지금 없다고 해도 향후 미래의 어느 날엔가 어머니의 자궁이 아니라 인체 외부에서 태아가 자라고 태어나는 때가 올런 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이 가능한 세상이 온다면 아마도 도입 초기에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아를 키울 것인지 아니면 인공 자궁에서 태아를 키울 것인지 중에서 선택을 하도록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두 환경은 의학적으로는 혹은 물질적으로는 거의 비슷한 환경이겠지만 한 가지 완전히 다른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최초로 만나는 존재가 살아 있는 인간 어머니 또는 의사인가 아니면 기계나 플라스틱인가 하는 차이다. 나는 인공 자궁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시대가 도래하게 되더라도 인간 어머니의 자궁을 통한 출산을 권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처음 만나는 존재와 마지막으로 만나는 존재만큼은 같은 피가 도는 사람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다. 나는 오늘도 한 생명을 만났고 방금 태어난 어떤 아기는 처음 부모를 만났다. 인간 아기로서 인간 부모와 인간 의사를 만났다. 이 세상이 어머니의 뱃속처럼 편안하고 어릴 때 읽었던 동화처럼 재미있기만 한 세상은 아니겠지만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곳에 왔다고 마음속으로 축하해 준다. 산다는 것은 결국 만나는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있다시피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많은 사람과 만났다가 헤어진다. 모든 일의 시작도 만남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무언가를 얻기도 하고 반대로 무언가를 잃기도 한다. 만남을 통해 좀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더 나빠진 삶을 살게 되는 사람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방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맨살과 맨살의 가장 많은 부분이 만나는 성적인 접촉도 만남이지만 휴대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기계를 매개로 한 소통도 만남의 한 가지 방식이다. 글을 통해 독자와 만나는 것도 만남의 좋은 방식이다. 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만남은 피부를 직접 접촉하는 만남처럼 온기를 바로 느낄 수는 없지만 대신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내가 독자를 만나서 바뀌는 것이 있고 독자가 이 글 속의 나를 만나서 변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화면의 저 너머에 있는 독자를 직접 대면하여 보지는 못하며 누군지도 알지 못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살면서 잊고 있었던 보람찼던 순간과 열정을 저 깊은 우물과도 같은 기억의 뒤편에서 다시금 길어 올리는 기회가 되었다. 독자들이 이 글을 통한 만남에서 아무런 변화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면 결국 시간만 잃은 셈이다. 잃은 시간에 합당한 만큼의 감동이든 재미든 정보든 얻었으면 좋겠다. 물론 가장 바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어떤 비밀 하나를 흘낏 스쳐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 우리 인생은 나와 남의 관계를 통하여 완성된다는 사실 말이다. 지금 임신 중인 혹은 앞으로 임신할 여성분들께는 임신과 출산이 두려움과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의 시간이라는 사실도 알려주고 싶다. 글에는 40주에 맞추어 40개의 그림이나 조각등 예술작품을 살짝 곁들여 출산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느낀 소소한 생각을 함께 담을 예정이다.
모든 임신부들이 순산 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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