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실 오현경 샘이 준 빵입니다.
삼송 빵집이라는 곳에서 만든 빵이라는데 마약빵이라고 하네요.
마약김밥은 들어 봤는데 마약빵은 처음이군요.
맛을 보니 옥수수를 주재료로 만들었나 봅니다.
뱃살이 자꾸 나와서 저녁 7시 이후에는 물 말고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작정했는데 오늘 저녁 무렵 출산한 아기가 청색증이 조금 있어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에 가서 전원시키고 오느라 기운을 빼서 허기져서 먹고 말았습니다. ㅠㅠ
큰 문제가 있는 아기는 아니니 곧 좋아지기는 하겠지만.
어제도 역시 세브란스 산부인과로 전원한 산모가 있어 밤에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 갔다가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가 없어 병원까지 걸어서 오느라 한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어제 밤은 봄 치고는 유독 쌀쌀한 날이라 옷깃으로 냉기가 많이 들어 오더군요.
산모를 전원하고 신촌 로터리를 지나 창천동 언덕을 넘어 걸으면서 왜 내가 이런 피곤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게으르게 산 것도 아니고, 특별히 못된 짓 하면서 산 것도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산부인과를 택한 것 말고는 다른 이유는 못 찾겠습니다.
산부인과를 택한 덕분에 여러 귀여운 아기의 첫탄생도 보고 성원해 주시는 산모분들의 격려 말씀도 듣고 오늘 저녁처럼 직원이 사다 준 맛있는 빵도 먹게 되기는 했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니 여러가지로 신경 쓰이는 피곤한 직업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산부인과는 특히 그런 것이 심해서 하려는 의사가 점점 줄어드는 듯 싶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시는 분들 중에, 어쩌다 저라는 의사를 만나게 되어 진찰을 받게 되는 인연이 닿은 산모들의 순산을 돕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봅니다만 체력과 능력의 한계는 점점 심해지는 듯 싶습니다.
더불어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와 같이 까칠한 의사와 인연을 맺게 되신 분들도 참 대단하신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도 한편 들기는 합니다.
솔직히 저 같아도 저처럼 까칠한 의사에게 계속 진찰을 받는 인연을 맺을지 어떨지는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ㅎㅎ
그런 험난한 문턱(?)을 넘어 제게 진료를 받게 되신 분들께는 감사의 마음으로 제 나름으로는 원칙과 양심이라는 이름의 작은 댓가로 돌려 드리려 애쓰고는 있습니다.
여하튼 오늘 먹은 마약빵은 맛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빵만으로 저녁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고 보람만으로 생계가 유지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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