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구청 뒤의 안산은 이곳에서는 교통 편이 좋지 않아 자주 가지는 못한다.  지하철은 없고 버스로 가기도 애매한 거리다. 걸어 가기는 좀 멀다.  며칠 전에 알아낸 방법이 그나마 제일 무난한 방법인데  따릉이를 이용해서 가는 방법이다. 안산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왕산처럼 예쁜 산도 아니고 북한산처럼 우람한 산도 아니다. 그저 동네의 야트막한 뒷산일 뿐이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정상까지 가는 시간이 대략 한시간에서 두시간 정도 쯤이었다.

그런 낮은 산일지라도  봉화대가 있는 꼭대기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지금은 체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진 만큼 비례하여 정상까지 소요 시간은 과거보다 더 걸릴 수 밖에 없다. 내가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나들이의 한계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안산의 정상은 가기 부담스러운 곳이다.  안산은 홍제천 쪽 서대문 구청 근처의 물레방아 다리를 건너서 간다. 여러 색깔의 꽃들로 조성한 공원을 지나 이름 모르는 연못이 있는 뒷길이 주 산책 코스이다. 산책을 하면서 심오한 사상을 떠올린 철학자도 있고  역사를 뒤바꿀 아이디어를 생각한 과학자도 있겠지만 안산 산책길에서 내가 얻는 것은 커피 나부랭이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 잠시의 여유다. 출퇴근을 하지 않아 이전 보다 많은 여유 시간이 있지만 삶의 여유란 시간의 여유에만 달려 있는 건 아니다. 경제적인 여유도 있어야 하고 여유를 즐길만한 도구랄까 혹은 취미랄까 그런 것도 있어야 한다. 함께할 친구가 있다면 금상첨화이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 산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함으로써 없는 마음의 여유라도 혹시 생길까 하는 은근한 기대를 품는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즐거워진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주장이다.

안산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화려한 꽃들을 꾸며 놓은 꽃밭도 아니고 작은 도랑이 흐르는 계곡도 아니다. 연못 조금 못 미쳐 있는 팔각정이다. 이곳은 인적이 드물어 저녁 시간에 오면 무서울 정도로 적막하고 공기도 시원해서 앉아서 혹은 누워서 쉬기에 그만이다.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지나는 내부 순환 도로의 차 소리 때문에 조용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의 말소리가 아니니 단순한 백색소음 정도로 느껴지는 정도다. 팔각정에 누워 지붕을 보면 대들보며 서까래가 일정한 패턴으로 배치되어 마음의 안정을 준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눈을 간지럽히기도 한다. 먼 남쪽 나라 공기 좋은 산속이나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면서 보내는 삶은 내 팔자에 없는 일이니 이 정도에 만족을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듯 싶다. 말하자면 내게 일종의 퀘렌시아라고 할 수 있겠다.  장소는 준비되었으니 이어폰으로 역시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 듣는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No2다.

음악에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만 아마 이곡도 단조의 곡일 것이라 추측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좋다고 한 곡들이 모두 단조라고 어느 분께서 알려 주셨으니 이 곡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곡은 장소를 잘 못 고르면 우울에 빠지기 쉬워서 조심해야 하는데 지금은 안산이 아니고 진료실이니 정신줄 놓고 감정에 파묻힐 염려는 없다. 늦은 밤 배가 고파 칭얼대는 아기의 울음 소리도 입원실 쪽에서 들리고 진료 및 수술 기구들의 정리를 위해 직원이 딸그락 거리면서 정리하는 소리가 충분한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음악은 외면하기 어렵다. 신선한 공기와 멋진 경치가 그런 것처럼.

second_waltz.mp3

3.39 MB, 다운수: 157

댓글

산책 과 여유... 취미생활에 대한 글에 동감합니다 음악 좋아요!! 밤에 봐서 음악은 지금 듣습니다.  등록시간 2019-08-04 12:19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happybud19 [2019-08-02 02:19]  

스마트폰 모드|진오비 산부인과

© 2005-2024 gynob clinic

빠른 답글 맨위로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