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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작가: 미상
소장: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 박물관

첫째. 탄력 있고 팽팽할 것.
둘째. 너무 커서도 안되며 모양은 반구형일 것.
셋째. 유방의 융기된 부위의 위치를 본다면 3번 갈비뼈와 6번 갈비뼈 사이에 위치할 것.
넷째. 유두의 위치는 5번 갈비뼈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할 것.
다섯째. 유방하부에는 주름이 없어야 하고 유두의 간격이 앞에서 보아 20㎝ 이하로 좁아져 있지 않을 것.
여섯 번째. 좌우 유두는 마치 사이가 나쁜 자매들처럼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크기는 자신의 두 손으로 완전히 유방을 감출 수 있는 크기일 것.

위 목록은 시트라츠라는 사람이 내세운 아름다운 유방의 조건이다.  과연 이런 기준을 만족할 수 있는 여성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이런 조건에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는 밀로의 비너스의 유방이 있다. 비록 조각상이지만 현대의 많은 여성들이 꿈꾸는 유방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구석기시대에는 밀로의 비너스와 같은 유방이 아름다운 유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의 유방은 위의 기준 중 단 하나도 만족하는 것이 없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밀로의 비너스가 그리스 밀로스 섬에서 발견되어 밀로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것처럼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이 비너스 상은  가슴과 엉덩이만 지나치게 크다. 허리라고 부를만한 부분은 아예 찾기도 어렵다. 요즘 기준으로는 고도 비만의 체형이다. 그럼에도 고고학자들이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조각상이 발견된 구석기시대에는 지금과는 다른 미적 기준이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 시대에는 지금처럼 먹을거리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른 체형보다 잘 먹어 비만한 여성이 아름다운 여성으로 여겨졌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구석기인의 마음을 현대인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전적으로 추측일 뿐이다.

내 여동생의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은 가슴이 너무 작아서 콤플렉스가 심했다. 아예 없다시피 해서 체육 시간에 달리기를 하고 나면 브래지어가 목에 걸려 있어 창피해했다고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여동생의 친구 브래지어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는지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내가 의과 대학 다닐 때 들었던 이야기이니 특별히 유방에 대하여 관심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때 동생의 친구는 결혼은 했는지, 아이를 낳았는지, 낳았다면 모유 수유는 잘했는지 궁금하다. 출산하고 나면 커졌던 유방은 오히려 더 작아지거나 물렁물렁해져서 탄력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으로 오히려 더 고민하게 된 건 아닌지 소식을 듣지 못해서 알진 못한다. 물론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다. 다만 요즘처럼 비만이 문제 되는 시대가 오래 지속이 된다면 그런 A컵이나 그 이하인 여성의 유방이 아름다운 유방으로 대우받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란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개개인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서도 다르게 마련이다.

나는 임신부를 진료하고 출산을 돕는 것이 주인 산과 의사다. 그 기간은 거의 30년이 되어 간다. 그 정도 기간은 아니지만 10년 이상 유방 진료도 병행하고 있다. 유방의 진료는 유방 촉진과 유방 초음파 검사, 유방 X 선 검사, 유방 조직 검사, 유방암 수술 등이 있다. 나는 이 중에서 유방 초음파 검사를 주로 하고 있고 종양이 있는 분들은 유방 총 조직 검사를 하기도 한다. 유방암 수술은 비교적 큰 수술이라 개인 의원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라서 하지 않는다. 하루 최소 한분 이상의 유방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10년 이상을 보냈으니 영상 의학과 의사나 유방 외과 의사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도 꽤 많은 여성의 유방을 본 셈이다. 물론 초음파 검사실은 어두컴컴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유방의 대략적인 크기와 모양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유방은 흔히 방송 매체에서 본 연예인들처럼 큰 유방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A컵 정도인 분이 대부분이고 아니면 B컵 크기로 보였다. C컵이나 D컵 크기인 분은 많이 보지 못했다. 물론 내가 만난 얼마 안 되는 분들에 대한 느낌이라 실제와는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2015년도 국가기술 표준원 통계를 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통계에 따르면 AA컵이 35%, A컵이 32%, B컵이 21%, C컵이 8%, D컵이 3% 였다고 한다. AA컵은 컵 높이가 7.5cm, A컵은 10cm,  B컵은 12.5cm, C컵은 15.0cm, D컵은 17.5cm이다.

산과 의사인 내가 유방 진료를 하게 된 것은 어떤 행사 때문이었다. 15년 전쯤에 산부인과 개원의들의 단체인 산부인과 의사회에서 학술 이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물론 이사라고 해서 대기업의 이사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저 임원으로서 의사회의 회의에 참석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무보수 봉사직이다. 의사회에서는 매년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강좌로 연중 2회 봄가을에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비정기적으로 심포지엄이나 엑스포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회 활동을 막 시작하던  때 여성 의학 엑스포라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 주제에는 당연히 임신 출산 분야, 부인과 분야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 외 여성 의학 분야와  산부인과 개원의들의 경영난 돌파구로 막 인기를 얻고 있던 비만 치료와 피부 미용 분야가 들어 있었다. 또 한 분야는 아직 산부인과 의사들이 거의 진출해 있지 않던 유방 분야였다. 지금이야 유방 진료를 병행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많지만 그때는 유방 진료를 병행하는 산부인과 의사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의 없었다. 유방 분야는 외국에서는 산부인과 의사들도 많이 담당하는 진료 영역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진단은 주로 영상 의학과에서 하고 시술이나 수술은 일반 외과의 한 분야인 유방 외과에서 하는 실정이었다. 학술 이사인 나를 비롯하여  정보 이사, 재무 이사, 홍보 이사 등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이사들이 각각의 분야를 책임지고 연자 섭외나 부스 준비등을 맡아서 준비하기로 하였다. 다른 분야는 다 이사가 정해져 준비하는 것에 문제가 없었지만 유방 분야는 아무도 맡아서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유방 분야를 진료하는 산부인과 이사들도 없었고 도움을 받을 산부인과 의사도 거의 없는 형편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행사를 준비하려면 영상 의학과 유방 외과 선생님께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산부인과 의사가 유방 분야에 대한 식견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행사에 영상 의학과 의사나 외과 의사가 도움을 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유방 분야는 내가 책임지고 행사를 맡기로 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영상의학과나 유방 진료를 하는 유방 외과 선생님들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 후 몇 년 뒤에도 유방 조직 검사는 국내에서 견학을 못해보고 중국의 광저우에 있는 인민 병원에 가서 참관하면서 실습을 해 볼 수 있었을 정도다.

그때 다행히 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영상 의학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행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한분은 대학에 계신 분으로 열린 마인드로 산부인과 의사들의 유방 분야 지식 습득을 도와주셨고 이후 유방 세미나 때도 많은 도움을 주신 교수님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고집하고 벽을 쌓을 것이 아니라 산부인과 의사가 여성 환자들을 가까이에서 많이 보니까 기본적인 유방 질환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방암의 조기 발견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다른 한분은 개원가에 계셨던 분인데 직접 행사 부스나 강의로 도움을 주신 것은 아니지만 유방의 진료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과 실제의 진료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셔서 도움이 되었다. 물론 얼굴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진료에 참관하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어 아내와 함께 병원을 방문해서 아내의 진료 모습을 보면서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다. 그때 아내는 유방 초음파 검사와 X선 검사 그리고 유방 검사와 흔히 병행하는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아내를 대상으로 검사를 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사실 성형외과 의사들은 신의료 기술이나 장비가 나오면 자신의 가족 그러니까 아내에게 제일 먼저 시도를 해 본다고 한다. 과연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어떤 느낌인지 환자를 대상으로 실습을 해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성형외과 의사의 아내들은 온갖 종류의 시술을 가장 먼저 받은 혜택 (혹은 희생?)을 누린다. 그렇게 아내도 나를 위해 아니 내가 준비하는 행사를 위해 자신의 유방과 갑상선을 내보였고 진찰을 받았다. 사실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아내의 나이가 그 당시 이미 40이 넘은 나이라 정기적인 유방 검진을 받아야 했지만 하지 않고 있었으니 처음 받는 유방 진찰인 셈이었다.  흔히 집안에 의사가 있으면 건강 관련해서 이것저것 꼼꼼히 챙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다시피  의사 가족이 있는 집은 거의 무의촌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이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라고 하는 대신 그냥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니 걱정하지 마라거나 아니면 약국 가서 약 사 먹어라고 말하는 의사가 한 둘이 아니다. 폐암을 전문으로 다루는 모교의 대학 교수님께서는 담배를 하루 두 갑씩 피우시다가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위암 수술의 대가인 외과 교수님께서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산부인과 의사의 어머니가 자궁암이 많이 진행되어 발견된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점에서는 나도 뜨끔하다.

아내는 그날 진료를 받고 유방에 이상이 없지만 갑상선에 종양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후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하여 갑상선암으로 진단되었고  절제 수술을 받았다. 아주 초기는 아니라 방사선 치료도 받았는데 다행히 주변 조직에 전이된 상태는 아니라 잘 치료되었고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다만 갑상선을 제거하고 갑상선 호르몬을 복용하는 탓인지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성격이 조금은 더 까칠해지기는 하였다. 까칠한 정도가 나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때 행사를 준비하면서 유방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유방에 대하여 소규모 강의와 실습도 몇 차례 진행을 하였다. 그 후 많은 산부인과에서 유방 초음파 검사를 하게 되었다. 여성들의 유방과 관련한 건강을 증진하는데 나도 조금은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후 나도 유방 초음파 검사 정도는 하고 유방 조직 검사를 통해 아주 많지는 않아도 여러분의 유방암 초기 환자분을 진단하여 조기에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유방은 내게는 제2의 고향처럼 친숙한 진료 분야가 되었다.

여하튼 처음으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산부인과 의사로서 나에게 있어 아름다운 유방은 밀로의 비너스의 유방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의 유방도 아니다. 임신한 여성의 건강한 유방이 제일 아름답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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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영 [2020-03-28 14:27]  daphne [2020-03-24 21:25]  hanalakoo [2020-03-23 08:14]  달콤짱짱 [2020-03-23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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