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무지개
작가: 모지스 할머니
소장: 개인  

초등학교 삼사 학년쯤이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종종 놀러 갔던 곳이 있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아기 동산이라고 불렸다.  산 치고는 작은 봉우리여서 그렇게 부른 것인지 그것이 정식 명칭인지도 잘 모르겠다.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먼 거리라 자주 가지는 못했다. 네다섯 명의 또래와 아기 동산으로 놀러 갈 때는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막내 동생을 떼어 놓는 것이 관건이었다. 막내 동생을 데리고 가면 길을 잃지는 않을지 신경을 써야 해서 마음 놓고 놀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동생들이 대체로 그렇듯  언니 혹은 형과 노는  것만큼 재미나는 일이 없다.  그래서 동생이 못 찾을 때까지  동네의 골목을 이리저리 도망 다니면서 떼어 놓은 후에 아기 동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간 아기 동산은 자석이며 인형이며 노트와 연필, 장난감 등 온갖 보물들이 널려 있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쓰레기 하치장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쓸만한 것보다는 다 망가져서 쓸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그만한  물건도 없었다. 프랑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의 자전적인 소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녀가 세 살 때 집 앞마당에 있는 연못에 의도적인지 실수인지 빠져서 죽을 뻔한 기억을 서술하는 장면이 있다.

"지금까지도 나는 딱 잘라 입장을 정리할 수 없다. 1970 년 8 월말에 잉어가 있는 연못에서 길이 끝나는 게 나았을까? 어떻게 알겠는가? 삶이 한 번도 지루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저 건너편에 가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나한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대단히 심각한 건 아니다. 어쨌거나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애 돌아가는 방법일 뿐이니까. 언젠가, 더 이상 시간을 벌 방법이 없을 때가 올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물 가운데 떠 있으면서 아주 편안했다는 것이다. 이따금씩, 내가 꿈을 꾼 것은 아닌지, 그때의 결정적인 사건이 환상은 아닌지, 긴가 민가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거울에 가서 내 모습을 비추어본다. 왼편 관자놀이에, 생생한 웅변으로 말하고 있는 흉터가 보인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세 살은 고사하고 열세 살의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기억력이 나빠 어린 시절 기억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아기 동산에 대한 기억은 비교적 뚜렷해서 다시 찾아가라고 해도 갈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가 숭인동 무허가 달동네라서 철거되어 버리고 공원으로 조성된 탓에 길을 더듬어 찾아가 볼 방법은 없다.

음악 장르 중에 미국이나 영국의 민요 혹은 민속 음악을 뜻하는 말로 folk song이라고 불리는 분야가 있다. 그림에도 그런 부류가 있다. 78세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1세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린 모지스  할머니를 folk artist라고 부른다. 모지스 할머니는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한 적이 전혀 없었음에도 살아 있는 동안 1600점이나 되는 그림을 남겼다. 불과 20년 동안에 그린 작품의 수가 그렇게나 많다. "진주 귀걸이 소녀"를 그린 베르메르가 불과 37점의 작품밖에 남기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양이다. 물론 양이 많다고 다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가면서 게을러져서 그림이나 글은커녕 만사가 귀찮기만 한 내가 보기에  작품의 질은 어떻든 그만한 다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들은 양만큼이나 질에 있어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녀는 예전에 살던 동네를 소박한 필치로 그려내어 primitivism (원시주의라고 해서 원시적 생명력을 표현한 음악이나 그림의 분야) 화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아이가 그린 것처럼 서툰 필체, 어린 시절 살아 봤음직한 마을,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고전주의 화가들의 그림에 등장하는 성경 속 인물에 비하여  훨씬 정이 가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기 동산을 떠올릴 때처럼 모지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면서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 마을에 있는 듯한 행복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가 생애의 마지막에 그린 그림의 이름은 "무지개"다. 그녀의 나이 101세 때였다. 모지스 할머니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내 일생은 충실히 보낸 하루와 같았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다. 나는 어떤 것도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고 주어진 삶을 최대한 잘 살았다. 삶이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린 시절 무지개를 잡으려고 손을 뻗어보거나 잡으려고 무작정 달려간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부모님이었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쯤이 되면 무지개는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무지개를 보면서 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기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심지어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그의 시 "가슴이 뛴다"에서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내 가슴이 뛴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면
내 삶이 시작되었을 때도 그랬었고
지금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고
내가 늙어갈 때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그리고 나는 소망한다
나의 나날들이 자연의 경건함에 의해 하나하나 묶이기를

창세기 9장 12절과 13절에도 무지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한 무지개는 더 이상 홍수로 인간을 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의미다. 비단 성경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무지개는 보통 희망이나 행복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다. 프랑스 어느 지역에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설문이 있었다. 가장 많은 대답을 얻은 것은 "행복이란 농촌에 사는 교사가 음악을 들을 때"라고 하는 것이었다. 농촌이라고 하는 것은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는 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는 의미이고 교사라고 하는 것은 직업이 안정되어 경제 사회적으로 불안함이 없는 환경이라는 뜻이며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그런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다고 해서 행복감을 느끼거나 나중에라도 행복한 순간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도 환경이지만 자신의 마음 가짐이다. 불가에서 연꽃은 기독교에서 십자가처럼 중요한 상징물인데 연꽃은 진흙탕에서 피어난다. 모지스 할머니나 시인 워즈워드나 모두 소박한 곳에서 행복을 찾았다.

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외래 근무 직원이  급하게 화장실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원장님. 저 김 OO인데요. 분만실에서 진통 산모 때문에 원장님을 찾아서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조금 이따 나갈 거니까 그때 말해요."
"좀 급하다고 해서요."
"무슨 일이에요? 왜 산모한테 문제 있어요? 내가 좀 전에 보고 들어 왔는데."
"분만실  강 선생 님이 옥시토신을 20 거트로 준다는 것을 잘못 계산해서 4배로 투여했다고 연락받았습니다."
"뭐 어떻게 되었다고요?"
"빨리 분만실로 오시라고 전달받았어요."
"알았어요. 옥시토신 일단 중단하고 심플로 바꾸라고 해요. 내가 곧 갈 테니까."

몇 년 전에 분만실에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직원이 착각을 해서 촉진제인 옥시토신을 지시 용량보다 빨리 준 사단이 생긴 적이 있다. 옥시토신은 한 번에 많은 양이 들어가면 위험하기 때문에 1000cc나 500cc 포도당 수액 등에 한 개나 두 개의 앰플을 희석해서 투여를 한다.  투여 속도는 거트 (guttae)라는 단위를 사용하는데 gtt라는 약어로 표시하며  1 가트는 1분당 들어가는 1방울이 들어가도록 하라는 의미이다. 10 거트는 1분에 10 방울 그러니까 6초에 한 방울씩 떨어지도록 하라는 뜻이다. 수액 세트는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대략 20 방울이 1cc가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므로 10 거트의 속도일 경우 1 시간에 0.05cc x 10  x  60 해서 30cc가 들어가게 된다. 이런 속도라면 흔히 맞는 하루 동안에는  720cc 정도가 들어간다. 보통 많이 보는 1000 cc 수액의 2 / 3 정도가 들어가는 속도다.

옥시토신을 사용할 경우 보통 처음에는 낮은 용량인 10 거트 정도에서 시작을 한다. 이후 진통 간격과 주기를 감안하여 점차 증량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눈으로 보면서 방울 수를 조정하는 것은 번거롭기도 하고 잘못 조작해서 많은 양이 들어갈 수도 있어서 보통 중요 약이 혼합된 수액은 인퓨전 펌프라고 불리는 조그만 기계를 통해 투여를 한다. 대부분의 인퓨전 펌프는 용량을 좀 더 섬세하게 조절하기 위해  방울수보다 4 배나 그 이상 더 세밀하게 조정하게 만들어져 있다. 당시 우리 병원에서 쓰던 기계는 40으로 세팅을 할 경우 10 거트가 투여되도록 만들어진 기계였다.

내가 지시한 것은 인퓨전 펌프를 80으로 맞추어 놓으라는 내용이었고 이는 거트 수로 20 거트로 주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경험이 많지 않은 신규 직원이  80 가트로  주라는 것으로 잘못 해석해서 투여를 한 것이다. 즉 4배나 많은 용량이 투여된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찝찝한 채로 마무리를 급하게 하고 분만실로 달려갔다. 촉진제가 너무 빠르게 과다 투여될 경우 과도한 자궁 수축이 올 수 있으며 이럴 경우  태아가 위험해질 수 있다. 드문 경우지만 심하면 자궁 파열도 생길 수 있다. 급하게 촉진제를 중단하고 자궁 수축의 강도와 횟수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과다 투여된 시간은 10분 남짓으로 긴 시간은 아니었다.  수축의 강도는 이전과 크게 차이는 없었다. 옥시토신에 대한 반응은 산모들마다 다른데 그때의 산모는 촉진제에 대한 반응이 그리 빠른 산모는 아니었고 초기 진통 단계였던 덕분에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임신 출산 영역에서 쓰이는 약들은  아주 위험한 약들은 많지 않다. 조금만 잘못 투여되어도 생명이 위험한 항암제나 강심제 혹은 신경 안정제  종류는 없다. 다만 촉진제나 또는 진통을 억제하는 진통 억제제, 임신성 고혈압 시 발생할 수 있는 발작을 억제하는 약물 정도가 위험성 때문에 유의해서 살펴보아야 하는 약들이다. 촉진제인 옥시토신은 이런 과다 투여로 인한 부작용은 드물고 대신 적응례를 벗어나서 사용하는 경우들에서 분만 촉진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이렇게 촉진제로 쓰이는 옥시토신은 의외로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신뢰의 호르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옥시토신은 대인 관계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하는 것이 밝혀져 있으며 출산 후에는 엄마와 아기 사이의 결속력을 높여 주는 역할이 있다. 사람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포유동물은 옥시토신을 분비하게 만드는 상대방을 좋아하며 그 결과로 둘 사이의 신뢰가 형성된다고 한다.  암컷 들쥐에게 옥시토신을 주입하자 보다 수월하게 짝을 고르고 교미를 한 수컷 쥐와 함께 붙어 다녔다는 보고도 있다. 옥시토신을 맞은 동물들은 그렇지 않은 동물들보다 더 자주 핥고 끌어안는 경향도 있었다. 옥시토신은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낄 때도 많은 양이 분비된다. 섹스의 양과 질은 이것의 분비량에 직접 비례 관계가 있다고 하며 많이 분비될수록 성적 쾌감은 높아지며 상대에 대한 감정도 더욱 깊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산모는 출산 중 순간적으로 오르가슴과 같은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하는 데 이 역시 옥시토신의 작용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신뢰 형성이나 성감과 관련하여 옥시토신의 정확한 작용 기전은 아직 잘 모르지만 이 호르몬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육체적이던 정신적인 부분에서든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행복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수도승이나 기도원에서 수행하는 수녀들이 명상이나 수행 또는 기도 중에 간혹 그들이 믿는 신과의 만남을 경험할 때가 있다고 한다.  이때 신과 자신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느낌은 일반적인 성관계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경우의 오르가슴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그 순간에 뇌의 특정 부분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변화가 오면서 그 부분으로 가는 혈액 공급이 감소한다고 한다.  이 부분은 뇌에서 간질 발작을 초래하는 대뇌의 바로 옆 부분이다. 평생  간질 발작으로 고생한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도 자신의 글에서 신과 만남으로써 강렬한 행복감을 맛 보았다고 적었다. 이런 일치는 그저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많다.  또 오르가슴 때 뇌의 패턴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간질 발작 때와 비슷한 뇌파 양상을 보인다고 하며 성관계 중에 뇌의 신경 전달 작용을 촉진하는 물질인 아세틸콜린이라고 하는 화학 물질을 주입하면 더욱 격렬한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보고하였다.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거나 또는 반대로 불행한 감정을 느끼게 될 때 뇌 속에서 모종의 화학 물질의 변화 양상이 뚜렷하다는 연구는  많다.  결국 과학자들에 따르면 행복감이나 쾌락이라는 것은 모두 뇌 안의 화학 물질의 작용일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연구가 더욱 발전되어 행복을 유발하는 물질이 있어서 그것이 밝혀진다면 앞으로는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물질도 사고팔고 하는 세상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연구 결과들 때문에 "만일 신이 있다면 아마도 인간의 뇌 속 밖에는 존재할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신경 신학자들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엔도르핀과 비슷하게 작용하면서 쾌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엔케팔린이라고 하는 물질에 대한 연구는 좀 의외의 결과를 보여준다.  이 물질이 작용하는 신경 과정을 차단하도록 날록손이라는 물질을 자위행위 중에 투입하여도 쾌감을 줄이지는 못했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 쾌감이 어떤 경로로 어떤 물질에 의해서 발생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행복이 어떤 한 물질의 유무나 증감 여부에 따라 발생하는 것인지에 대한 완전하고도 확실한 연구는 없다.  과연 행복감이란 무엇이냐 하는 점에서 그 정체조차도 잘 모른다.  그러나 행복은 분명히 있다. 무지개가 그런 것처럼.
힘든 진통을 겪고 마침내 출산한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있는 산모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행복이 아니라면 나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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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ets [2020-06-06 22:41]  daphne [2020-04-0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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