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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책
작가: 피노 데니
소장: 피노 갤러리

출산을 위해 입원하면 자연 분만한 경우 별다른 후유증이 없으면 2박 3일 입원하고 제왕절개로 출산한 경우 4박 5일 정도 입원한다.  우리 병원은 모자 동실로 운영하므로 아기를 보느라 산모든 남편이든 심심할 틈이 별로 없다. 아기는 수시로 깨고 수시로 먹는다. 그래서 아기가 잘 때는 산모도 잠시 쪽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입원하고 있는 동안 아기 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할 여력이 별로 없지만 간혹 책을 보는 분들이 있다. 물론 시간이 날 때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내시는 분이 제일 많다.  휴대폰은 이제 일상생활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족쇄가 되었다.
휴대폰은 과거 책이 차지하던 부분 중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그러나 아직 종이책이 주는 즐거움조차 휴대폰이 다 빼앗아 가진 못했다. 또한 종이책이 가진 장점도 많다. 충전을 할 필요가 없고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불안함을 느낄 필요도 없다.  떨어트려서 깨질 염려도 없다. 오래 들여다본다고 해서 눈이 피곤하지도 않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우리 병원 입원실 로비에는 책장을 설치해 두었다.  물론 큰 병원이 아니니 넓은 로비가 아니라 로비라고 할 것도 없는 조그만 공간이다. 책의 권수는 많지는 않고 그나마도 내가 보거나 샀던 책이라 내 취향에 맞추어져 있다. 일부는 전에 산모들께 기부받은 책도 있기는 하다.  2, 3 년 전에는 책들을 외래에 비치해 두어  병원에 진료를 위해 오신 분들이 원하면 한 권씩 가져가시도록 한 적도 있고 산후 맘 모임 때 오신 산후 맘 분들께서 가져가도록 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외래 공간이 좁아 외래에 책장을 둘 곳이 없어 입원실 로비에 두었기 때문에 따라 가져 가시도록 하지는 않고 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새지만 산후 맘 모임은 흔치 않을 것이라 잠깐 설명을 해야겠다. 우리 병원에 대하여 들은 분들 중에는 아마 산후 맘 모임에 대하여 들으신 분도 있을 것이다. 산후 맘 모임은 우리 병원에서 출산한  분들 중 원하는 분들이 해당 출산 연도에 따라 기수별로 만든  모임이다. 첫 번째의 모임 구성은 내가  주도하여 이루어지지만 그 이후의 모임은 산후 맘들께서 알아서 하신다. 산후 맘 모임은 진오비 이름으로 다시 개원한 2013년부터 시작해서 2018년 모임까지 있다. 2019년 모임은 아직 만들지 못하였다.  2013년에 출산하신 분은 "순산 모임 2013"을 줄여 순 3으로 이름을 지었고 2014년에 출산하신 분은 순 4가 되었다. 한 모임 당 적게는 6분에서 많게는 이십여분 정도가 있다.  출산하고 나면 과거와는 다르게 아이를 기르는 산모가 주변에 없는 경우가 많아 소통을 나누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모임을 만들었다. 조리원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조리원 동기가 있지만 조리원에 가지 못하는 분들은 육아맘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없다. 또한 조리원 동기는 아기들의 출산 시기가 비슷하지만 우리 병원의 산후 맘 모임은 최장 1년 가까이 출산 날짜가 다르기 때문에 아기를 키우면서 얻는 노하우를 전하기에는 더없이 좋았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런 오프라인 모임이 사실 제일 바람직하지만 자주 모이지 못하는 탓에 아무래도 인터넷의 육아 사이트를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의 카페나 SNS를 통해 얻는 것들이 소통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책은  과거의  사람들과 소통을 나누는 방법이자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소통을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SNS 탓에 소통의 목적으로서 책의 효용성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책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장점은 지금도 여전하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책도 있던데 과거에는 여자가 책을 읽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기록한 책이다. 물론 지금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출산하면 시력이 많이 떨어져 책을 읽는 것은 좋지 않다는 속설이 있다. 물론 틀린 말이다. 글씨는 너무 장시간 보는 것, 어두운 환경에서 보는 것, 너무 작은 글씨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면 임신 중이든 출산 후든 문제 될 것이 없다. 책은 임신과 육아를 위한 정보의 도구로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공감대로서, 그리고 삶을 풍성하게 하는 도구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를 위해서 임신 중이거나 출산한 산모들에게 추천할만하다. 물론 육아에 매달리다 보면 책을 읽기에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출산하기 전 임신하는 동안은 꼭 태교가 아니라도 책을 읽기를 권한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비슷한 말을 많이 했지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은 4가지다.

1. 꾸준히 운동을 할 것, 2.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들 것, 3. 평생을 함께 할 취미를 가질 것, 4. 책을 가까이할 것.

나는 이 중에서 4번째 항목 한 가지만 하고 있다. 한때 책방 주인이 꿈일 정도로 책을 좋아한다. 문제는 좋아하는 만큼 읽지는 못해서 읽지 못해 쌓아두고 있는 책이 한두 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무망 한 것이라 생각해서 책방 주인이 되는 것은 포기했지만 한동안 서점 관련 책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 얼마 전 내 눈에 들어온 책이 송은정 작가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라는 책이었다. 책방이든 다른 것이든 서점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랑, 그리고 충고를 적은 책들이 많다. 인도의 모든 영화는 반드시 마지막에 모든 등장인물이 춤을 추면서 끝나야만 한다고 들었다. 그것만큼 이상하지는 않지만 착한 주인공이 원수도 못 갚고 비극으로 생을 마감하는 영화나 소설은 없다. 현실에서는 착한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고 원수를 갚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나 소설은 그렇지 않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소설처럼 성공담이 아니고 이게 소설이기는 한가 싶은 것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소설이나 영화의 결말은 대동소이하다. 불쌍한 사람이라는 뜻의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 형사 자베르만에게 잡혀 평생 감옥에서 살다 죽는 결말의 소설이라면  빅토르 위고가 그렇게 유명한 소설가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 결혼하지 못하고 재를 뒤집어쓴 부엌데기로 평생 혼자 쓸쓸히 살다가 독거노인으로 고독사 했다는 내용이라면 과연 지금처럼 유명한 동화가 되었을지도 의문이다. 흥부가 제비의 도움으로 형인 놀부에게 멋지게 복수하지 못하고 평생 형 밑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의 흥부전이라면 흥부전을 통해 통쾌한 마음은 고사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어야 할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에세이조차도 성공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들은 주목을 받기가 어렵다. 실패담도 다음의 성공을 위한 디딤돌 정도의 의미라면 모르지만 그저 단순한 실패담을 적은 글은 많지 않다. 아마도 현실이 이미 충분히 답답하고 삶이 구차한 데 역시 답답한 영화나 소설 혹은 에세이를 보거나 읽고 싶은 사람은 있다 해도 소수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짜릿한 카타르시스는 고사하고 고구마 백 개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대가라면 나도 그런 것에 아까운 돈, 귀한 시간을 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부터 망한 이야기를 쓰다니. 참신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왜 망했는지. 그리고 책방을 닫을 때의 마음은 어땠을지. 책은 책방을 열기까지의 설렘과 희망 그리고 닫기로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비교적 감정을 자제하고 담담하게 써내려 갔다.

"새로운 일에서 느끼는 크고 작은 성취와 성장의 기쁨은 얼마 못 가 다음 달 월세와 홍보, 수익을 적정하는 노파심으로 뒤바뀌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우선 불안감이 너무 컸다. 오늘은 장사가 잘 되었어도 당장 내일 매출은 어떨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다. 장사에는 변수가 많았다. 추위나 미세 먼지 같은 날씨부터 사회적인 이슈, 신간 라인업에 따라 매출이 들쭉날쭉했다. 매번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면서 언제까지 서점을 계속할 수 있을까?"

위 문장은 그 책에 있는 문장들이다. 아마도 작가가 글에 쓴 것보다 훨씬 마음도 아프고 답답하고 안타까웠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나도 작지만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으로 그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책이든 서점이든 아니면 조그만 가게이든 자신의 열정을 쏟아붓고 시간을 들인 것들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난 아직 부모님 모두 건강히 살아 계시고 속은 썩이지만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지내는데 아마 자식을 잃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나는 이번 생에서 책방 주인이 되는 것은 포기했지만 부모님의 입장에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슬픔은 안겨드리지 않는 것이 지금 남은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래서 건강 관리도 좀 더 신경 써서 하고 싶지만 생활이 불규칙하다 보니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두 분 부모님이 모두 80세 전후로 장수하는 편이시니 나도 그런 유전자를 타고났기를 바랄 뿐이다.

10여 년 전 진오비 산부인과로 재개원하기 전 분만실을 닫을 때 “분만실을 닫으며”라는 글을 한겨레 신문에 실었던 적이 있다. "책방을 닫았습니다."라는 말이나 "병원을 닫았습니다." 또는 "오늘 아들이 죽었습니다."라는 말은 살면서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반 백 년 이상을 살아보니  인간이 살면서 알 수 있는 것들도 상당히 많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미래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다. 책방이든 병원이든 작든 크든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모르는 그 둘을 매일매일 새로 만나야 한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사실 그런 것이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기는 하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숨이 붙어 있는 한 마주 해야 하는 엄중한 운명이다.

라마승들은 매일 아침마다 왼쪽 어깨에 앉아 있는 상상 속의 새--미래를 내다본다는 새--에게 오늘이 자신의 마지막 날인가 하고 마음속으로 묻는다고 들었다. 자신의 마지막 날인지 아닌지를 담담하게 물어볼 수 있는 수도승이 아닌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오늘 사업장을 닫지 않아도 될지, 혹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산다. 과거 학창 시절에는 사자 가슴은 아니라도 소 가슴 정도는 되어서 세상에 무서운 것이 별로 없었는데 산부인과를 하면서부터는 새 가슴이 되었다.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혹은 아내와 밥을 먹다가도 휴대폰 벨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한다. 혹시 아까 출산한 분이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산전 진찰받던 산모에게 갑자기 심각한 이상 증상이 생겼다고 급한 전화를 한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런 탓에 내 친구나 지인들은 내게 직접 전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내게 내용을 전달하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머니조차도 내 안부를 내게 묻기보다 아내에게 묻고는 한다. “오늘 병원을 닫았습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오면 결국 능력이 모자라서 병원을 닫았다는 것 때문에 우울감에 빠지고 자격지심이 들지 아니면 더 이상 휴대폰 벨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새 가슴으로 살지 않아도 되어서 안도의 마음이 들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알게 되겠지만.... 그 언제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책 읽는 모습을 특히 많이 그린 화가는 이탈리아의 화가 피노 데니다. 책과 함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많이 그린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로 미국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책 읽는 여인 혹은 소녀를 많이 그렸다. 아마도 그가 책의 표지나 삽화를 많이 그려 출판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는 르누아르를 닮은 특유의 섬세한 붓터치로 아름답고 생동감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의 그림은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힐링이 되는 효과가 있다.  ASMR이나 젠탱글보다 더 낫지 않나 싶다.  그는 누드화 혹은 누드에 가까운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 로랑생의 키스처럼 아름답지만 외설스럽지 않다.

오늘도 나는 책을 사러 중고 서점에 나간다. 홍대 주변에는  교보 문고와 영풍 문고를 포함해 중고 서점도 두 곳까지 국내 최대 서점 4곳이 다 있다.  나와 병원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점에서 보면 나도 아주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닌가 보다. 책을 볼 수 있는 산모도 행복하지만 책을 살 수 있는 남자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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