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은 낙엽이 떨어지는 대학교 교정을 비추다가 패닝하면서 서서히 한 건물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건물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창문의 모습이 화면을 채우고 한남자가 복도를 걸어 가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음악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흐릅니다.

페이드 아웃으로 장면 전환이 되면서 한 남자가 대학교 복도를 천천히 걸어 오고 있는 모습을 비춥니다.
실루엣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며 등뒤로는 환한 가을 햇살이 들어 오고 있습니다.
남자는 음악의 리듬처럼 천천히 걸어서 한 강의실의 문 앞에 섭니다.
그리고 잠시 회상에 잠기는 듯 눈을 감습니다.
한 여자의 화난 얼굴과 함께 "그만 좀 쫓아다녀, 난 네가 정말 싫어. 넌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야. 3 년씩이나 지긋지긋하지도 않니?"라고 하는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서 들리다가 희미해집니다.
노크도 하지 않고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갑니다.
안에는 지저분하게 정리되지 않은 꽃이며 조각상 등 정물이 어지러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몇명의 학생들이 스케치 북을 이젤에 걸어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습니다.
그가 한 여자 앞으로 걸어가 설때까지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녀의 앞에 섰을 때 음악은 멈춥니다.
그녀가 이상한 기분에 붓을 든채 그를 쳐다 봅니다.
그녀는 자신을 쳐다보는 그를 올려다 보고는 비웃는 듯한 가벼운 실소를 머금으며 그림에 다시 몰두합니다.
한참을 그녀만 쳐다 보던 그가 불쑥 혼자말처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네 마음을 알고 싶어서 왔어."
그녀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다시 침묵이 흐릅니다.
"나 다음 달에 군대간다. 네가 당장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더라도 나를 네 마음 속에서 쫓아 내지만 말아줘."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화면은 주변의 다른 친구들이 그 둘을 힐끔 쳐다 보는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네가 나를 받아 주기만 하면 난 평생 너를 사랑하고 지켜줄거야."
화면은 무표정한 여자의 얼굴에 잠시 멈춥니다.
이런 상황이 답답하다는 표정이 얼굴에 잔뜩 묻어나는 채로 그녀는 남자를 쳐다 보지 않고 대답을 합니다.
"너나 잘 지켜. 나는 너 없이도 나대로 잘 살테니까. 난 네가 정말 싫어."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다시 흐르고 화면은 가을 햇살이 œ쏫아지는 창밖을 비추고 멀리 누래진 가을 산의 모습이 들어 옵니다.
그때 화면이 갑자기 남자의 모습 쪽으로 급하게 돌아 옵니다.
세척한 물감으로 지저분해져서 짙은 회색으로 변한 물이 가득 든 커다란 물통을 든 그의 모습과 비장한 그의 모습이 화면에 비춥니다.
그가 더러워진 물을 그대로 마시기 시작하면서 음악은 빠른 템포의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그가 마침내 물을 다 마시고 물통을 바닥에 떨어뜨리듯이 놓습니다.
공포인지 당황인지 놀란 그녀의 눈을 카메라가 비추는 동안 그가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또박또박 한 단어씩 말을 합니다.
"너를... 사.랑.해. 너를 위해서라면..난..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이 세상에서 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거, 부디 잊지 말기를 바래. 잘..지내..."
여자의 당황한 모습과 놀라서 쳐다보는 다른 학생들의 모습이 광각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화면에 보이다가 문을 닫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으로 전환됩니다.
화면은 복도를 걸어 가는 남자의 실루엣을 보이다가 서서히 엷어집니다.
화면은 다시 실내로 돌아옵니다.
비바람이 지난 후의 평야를 비추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실내를 화면은 천천히 돌아가면서 비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으로 점점 가까와 집니다.
여자의 어깨 너머로 창문을 지나 저 아래로 넓은 운동장을 힘없이 걸어 가는 남자의 모습이 조그많게 보입니다.
갑자기 남자가 항아리로 된 쓰레기통을 발로 차 깨뜨림과 동시에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첫번째 마디가 시작됩니다.

남자는 걸어가면서 그렇게 하나둘 셋, 열 몇개의 항아리를 하나씩 깨뜨립니다.
그렇게 넓은 운동장을 지나가는 남자의 모습이 작아지다가 점점 희미해져갑니다.
사라져 가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여자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습니다.
그러나 다시 붓을 들지는 못합니다.
여자의 가슴에 무언가 잠시 꿈틀거리는 느낌을 반영하듯 여자의 얼굴 표정에 가벼운 변화가 일었습니다.
그후로 매일 같이 오던 남자는 오지 않지 않습니다.
화면은 낙엽이 떨어지는 교정의 모습과 나날이 숫자가 줄어드는 나무를 비추면서 몇날을 밝았다가 어두워집니다.
실습이 없는 날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여자는 혼자 화실에 앉아 있습니다.
여자는 지금까지처럼 매일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허전한 표정이 때때로 얼굴을 스칩니다.
간혹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가 다시 내려 놓기도 하고 멍하니 출입문 쪽을 쳐다 보기도 합니다.
물론 휴대폰은 울리지 않고 문도 언제나처럼 그대로 닫혀 있습니다.
잠시 장면 전환이 되어 화면은 노을이 빨갛게 깔리는 하늘을 비춥니다.
그러다가 화면은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린 화면으로 휴대폰을 집어드는 여자의 손을 비춥니다.
"열번 찍어 안되면 백번, 백번 찍어 안되면 천번이라도 찍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너 그거 밖에 안되었어?"누가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환청과도 같은 소리가 메아리처럼 공간을 메웁니다.
휴대폰의 전송 버튼을 누르면서 여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의 선율이 점점 커지면서 다시 낙엽이 내린 교정의 모습이 보이고 점점 건물과 교정의 모습이 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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