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면서 많은 선택을 하고 그 순간마다 양심에 비추어 이것이 올바른 것인지 자문해야 할 때가 있다.
빨리 가려고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간 적이 있고 길거리에 떨어진 돈을 주워 호주머니에 몰래 넣으면서 누가 보았을까봐 주변을 둘러 본적도 있다.
여하튼 살아 오면서 해야 하는 많은 선택에서 항상 양심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지는 못했다.
양심을 지키지 않은 대신 내가 얻은 것은 경제적인 득이었거나 자존심이었거나 편리함 등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런 득을 위하여 조금씩 조금씩 양심을 떼어냈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는 과연 얼마마한 양심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 받은 그대로에 가까운 지 아니면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지 잘 모르겠다.
아마 처음 받은 것에 비하여 많이 줄어 들어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은 때때로 양심에 거리낀다고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주 없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결국 산다는 것은 황금을 팔아서 음식을 사듯 자신의 양심을 때내어 조금씩 팔아 먹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아 있는 양심의 크기와 가진 돈의 무게는 정확히는 아니겠지만 대체로 반비례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경우에 다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이런 나라에서 의사로 사는 내게 있어서는 그렇게 생각이 든다.

현재 돈이 많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봐서는 아직은 양심을 많이 팔아먹은 것은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양심 또는 내가 양심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만 끌어 안고 살다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을 때 혹시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세상을 하직하는 날에 가족을 위해 남겨 놓은 것이 너무 없어 자녀들이나 아내가 힘든 삶을 꾸려 나가야 할 것이 분명할 때도 내가 남겨 놓은 양심의 크기가 크다는 것 때문에 뿌듯해 하면서 죽을 지 어떨지 자신이 없다.
솔직히 그때 가서 뿌듯함 보다는 미안함이 더 클까봐 걱정이다.

그래서 내가 싸우는 나와의 싸움은 양심과 돈 또는 편안함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양심과 미안함의 싸움이다.
다른 이들은 무엇 때문에 자기 자신과 싸우는 지 모르겠다.
아직은 이 싸움에서 양심을 지키려는 내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싸움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어서 언젠가는 이쪽이 저쪽에 굴복할지도 모른다.
물론 굴복하는 것이 꼭 지는 것은 아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내 자신이니까.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양심을 지키려고 하는 이쪽 자신의 모습이 초라한 자기 변명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양심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고 그저 치열한 생존만이 있는 세상에서의 패배자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든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점점 이쪽 나보다 저쪽 내가 득세하려고 해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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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산모 [2014-06-14 01:16]  
#2 thepetal 등록시간 2014-06-14 00:21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잘은 모르지만... 원장님처럼 양심적인 의사분이 드물거같은데요 ㅎㅎ
주변 사람들에게 진오비얘기, 원장님얘기 하면 다들 그래요
거기 정말 양심적이라고...

이런 글을 쓰신다는거 자체가.. 원장님이 아주 양심적인 사람이라는걸 보여주는듯한걸요:)

댓글

글쎄요 아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약간이라도 양심이라는 것을 잊지는 않고 살아보려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는 않네요. 여튼 격려하여 주시어 감사합니다. ^^  등록시간 2014-06-14 00:53
#3 땅콩산모 등록시간 2014-06-14 01:28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부와 양심의 반비례..
심장님 글을 위안삼아,  저희도 비교적 양심적이라 부자가 아닌거라며 살포시 숟가락 얹여 봅니다 ^-^ ㅎㅎ

그러게요.. 남들은 다들 무엇을 위해 자신과 싸울까요?
전 뭘까요.. ??
저는... 사는동안 제 소명을 찾기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제가 가진 재능을 도구로 삼아 무언가에 누군가에 기여하기..
아무리 못난 인간도 뭔가 소명을 가지고 태어났을거아고 생각하거든요.
그 소명이 부모일수도 있고, 그 소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절차가 부모됨일수도 있고...
전 더 살아봐야 그게 뭔지 알겠죵??

심장님이 말씀하시는 '산부인과 의사가 내 팔자인갑다.' 하시는 게 전 정말 부럽답니다 ㅋㅋ
누가봐도 산부인과의사요  딴 길로 가려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게 산부인과 의사요,  빼도박도 못하고 결국 또 산부인과 의사질이요.. 하는 모습에서  심장님의 소명이 확연히 드러나잖아요^^
소명은 소명일 뿐 하고싶은 일일수도 아닐수도 있으니..
가치있는 인간이 되고싶은 저로서는 불평불만 늘어놓으셔도 참 부러운 일인이십니다 ㅎㅎ

심장님이 남기시게 될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유산' 아닌가요?
독립운동가 저희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찢어질듯한 가난을 남기고 가셨지만, 자손인 저희가족은 자랑스럽기만 한걸요..   내 피가 그저 그렇고 그런 피는 아니구나... 하는 자존감을 남기신거죠*^^*

댓글

글쎄 말입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제 팔자인 것인지...얼마든지 좋은 다른 것들도 많은데..이를테면 꽃집 주인이라든지 , 서점 주인이라든지, 아니면 파인아티스트나 피아니스트도 좋고 ㅋㅋ. 그렇게 좋은 거 많은데 하필 그 많고 많은 것 중에 산부인과 의사인지....ㅠㅠ. 콩산모님도 무언가 소명을 가지고 태어났겠지요. 주원이 엄마로서든 연주자로서든...  등록시간 2014-06-14 01:55
어우야~오 노~~ 심장님은 예술가 하심 안되십니다 ㅋㅋ 변덕스럽고 자존심만 이빠이 강해선 땡전한 품 벌 수 없다죠 ㅎㅎㅎ 그야말로 처자식 굶기는 한량이 되실 거란 얘기죠^^ ㅎㅎ 꽃집주인도 쫌... 속에서 천불이 나면 문닫고 몇날며칠 나가 계시느라 물도 안주실거잖아요 ㅋㅋ  등록시간 2014-06-14 01:41
#4 이연경 등록시간 2014-06-15 17:11 |이 글쓴이 글만 보기
그놈에 양심이란 단어를 누가만들었는지 원장님을 힘들게 하는것같네요
어제 저희신랑이 길에 떨어진 천원짜리를 주어들고 막 뛰어와서 로또하자고 함박웃음짓던게 생각나네요ㅎ
뭐 다 그렇게 사는겁니다. 양심을 지키려 힘들게 자기 채찍하며 힘들게 살기보다는
남에게 피해안주는 선에서 잘~ 사는게 좋다고 봅니다.. ㅋㅋ
남에게 피해는 안주시잖아요~? 그니까 성공적이라 볼수있지요^^

댓글

남에게도 피해를 안 주는 선에서 잘~~이라 그게 힘듭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서..... 쥐뿔 원칙을 지키네 뭐네 하는 핑계로 부모님과 아내등 가족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요.ㅋㅋ. 연경님도 그럴 것이고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도 제 입장에 되면 아마 다 저처럼 하게 될 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사람마다 조금씩 있겠지만.....  등록시간 2014-06-15 17:18
5# ennead 등록시간 2014-06-15 17:15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양심과 미안함 사이 제목만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났네요.. 전혀 다른 의미일수도 있지만 요사이 마음 괴로운 일이 있었는데 저 둘 때문이었거든요. 출산직전에 형님댁에 잠시 맡긴 강아지를 이제 데려오겠다하니 양가에서 반대가 너무 심하셔서 신랑과도 다투게되고.. 분명 100일때 데려오겠노라 약속했는데 이제와서 다른데 주라고 같이키우면 안된다고 완강히 반대하시네요ㅠ 결국 핑계지만 어르신들 말을 계속 무시할수도 없고 합의점을 본것이 준이가 좀더 자라고 추석 때 데려오기로 했네요.. 솔직히 아이만으로도 힘든데 어떻게 둘을 같이 키우지라는 걱정을 안해본것도 아니고 내년에 복직하게될텐데 그땐 얼마나 더 힘들까란 생각을 안해본것도 아닙니다ㅠ 임신했다고 사정이 생겼다고 키우던 반려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했는데 제가 그런 사람이 될수도 있다는 죄책감에 속시끄러운 날들을 보냈구요.. 그러나 처음 상추를 키울때 했던 약속처럼 죽을때까지 함께할 것이란 결론만 내려집니다^^;; 제 몸 편하자고 잠시나마 나쁜 마음 먹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한 요며칠이었네요
누군가는 이해못할 일이지만 반려견을 키우는 또다른 누군가는 이해할것이라 봅니다.
제가 여기에 댓글을 다는 이유는 잠시나마 흔들린 제맘을 회개하고 제 글에 대한 책임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상추 데려와서 준이와 나란히 앉아 노닥거리는 뒷모습 공개하도록 할게요^^

댓글

강아지 이름이 상추인가 보구요. 특이한 이름이네요. ㅎㅎ. 임신 중에도 그렇고 육아중에도 그렇고 강아지는 함께 키워도 되는데 털이나 그런 것 때문에 알레르기 생긴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정서적 교감 차원에서 생각하면 반려동물을 함께 키우는 게 아이에게도 좋습니다. 여하튼 그런 일이 없으면 좋은데 살면서 미안한 일이 종종 생기더군요.  등록시간 2014-06-1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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