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매끈한 못보다는 스크류가 있어 굴곡이 있는 나사 못이 벽에 박히면 더 단단하게 고정이 되는 것처럼 인간 관계가 깊어지는 것도 사랑과 미움과 같은 여러 굴곡을 거쳐서라고.
그런 것도 같습니다.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하는 말도 아마 그런 의미일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편하기는 하겠지만 굴곡진 관계로 얻어지는 끈끈한 유대가 어쩌면 더 나은 것일지 모른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보통 나사못이든 그냥 못이든 못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그리 반가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는 말도 그렇고 자식이 어미의 가슴에 박은 못은 평생에 걸쳐 빼도 다 뺄 수 없다고 하는 말도 그렇습니다.
그렇듯 누군가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는 말은 가능하면 피했으면 싶은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좀 다른 의미에서 못을 바라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못이란 본래의 의미대로라면 아무 의미없이 박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걸거나 표시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보통 거울을 걸거나 줄을 걸거나 아니면 액자 같은 것, 혹은 달력을 걸기 위해서 박습니다. 벽에 상처를 주면서 못을 박았을 때는 무엇인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일 거라는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는 것은 그러한 어떤 목적 때문인 것은 아니며 대개의 경우 감정적인 제어가 안되는 상태에서 상처를 주는 행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찔린 상대로 하여금 심부를 찌르는 고통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한번 박은 못은 잘 뺄수도 없고 빼더라도 보기 흉한 흔적이 상처처럼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왕 어쩔 수 없이 못을 박고 말았다면 그 못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이라도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그림이든 무어든 무엇을 걸기 위해 존재한 못의 본래 목적대로 그 못이 그저 상처로 끝나지 않고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게끔 노력을 보태보자는 것입니다.
나사못처럼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고 벽에 박을 수 밖에 없었던 경우라면 좀더 무겁고 큰 어떤 것, 좀더 의미있고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거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견고한 지지가 필요했을만한 무언가 그리고 그런 가슴 깊숙한 상처를 안겨준 것을 상쇄할만한 의미있는 것 말입니다.
오늘 누군가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면 빼려는 노력보다는 차라리 나중에 그런 아픔이 다 의미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노력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못이 많이 박혀 벽이 아팠겠지만 아름다운 그림이 많이 걸린 화랑이거나 밝은 등으로 장식된 멋진 방이거나 향기나는 꽃들이 주렁주렁 달린 곳이 선물로 남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자기 위안과 착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못을 그것도 울퉁불퉁한 나사못을 많이 박고 사는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그렇게라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벽 못지 않게 못도 아주 많이 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바라기는 내가 쌓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는 못이기보다는 차라리 벽이고 싶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다만 벽에게 부탁하는 것은 어차피 박힌 못이라면 빼서 상처와 후회만 남기는 것보다는 지금 걸 그림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해도 조금만 기다려 주는 인내를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림을 거는 행위보다는 못을 박는 것이 우선하는 행위인 것처럼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멋진 그림이 걸릴 못일지도 모르니까요.
죽을 때까지 빈못으로 남고 말지 모른다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벽에게도 아마 견디기 쉬운 일일 것입니다.
살면서 제가 못을, 그것도 대못이나 나사못을 박고 만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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