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논쟁에서도 그렇고 불임 시술과 같은 분야에서도 종종 논란이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인간 생명의 시작을 어느 순간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 간에 보편적으로 일치된 견해는 아직  없는데 그동안 언급된 주장들을 큰 틀로 나누면 아래의 7가지 정도가 됩니다.

1. 출생설
출생하는 순간을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 생명의 순간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10개월의 임신 기간을 마치고 출생하는 순간을 기점으로  삼기 때문에 10개월설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출생이라는 사건 이외에는 태아로서는 그 이전과 이후에 달라지는 것은 없고 의학의 발달로 하여 비록 출산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태아의 존재가 분명히 확인되는 현재로서는 출산의 순간을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2. 체외 생존설
태아가 산모의 모체 밖에서 생존이 가능한 시기를 보호해야할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당시는 임신 28주를 체외 생존의 가능한 시기로 보고 28개월설이라고도 했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현재는 24주 혹은 20주까지도 생존하는 것이 가능해져서 단순히 28개월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주장의 논거는 같습니다.
이는 미국의 로대웨이드 판결에서 택한 기준이기도 하지만 체외 생존의 가능성은 의학의 발전과 거주 지역의 의료 발달 정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문제가 있어 순수하게 의학적 판단외에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3. 태동설
태동이 느껴지는 순간을 생명의 시작 혹은 보호해야할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과학적 지식이 없던 19세기에 보편적인 생각이었지만 현재 의학의 발달로 태아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태동을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 역시 많지는 않습니다.

4. 뇌파설
독일의 생명 윤리학자인 한스 마르틴 사스가 최초로 주장한 견해로 뇌의 형성이나 뇌파의 측정을 기점으로 삼자는 주장입니다.
태아의 뇌가 수정후 60일 정도 형성되고 이후 10 내지 20일 후 뇌파도 검출되기 때문에 이때를 기준으로 하자는 것인데 이는 생명의 끝을 뇌사로 정하는 대다수 학자의 견해를 감안하여 마찬가지로 뇌파가 발생하는 때를 기점으로 삼자는 것이 주장의 근거입니다.

5. 기관형성설 (심장설)
기관 형성설과 심장설은 약간 다르지만 시기적으로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함께 묶었습니다.
태아의 뇌와 심장등 주요 기관이 형성되는 임신 8주 정도를 기점으로 하는 견해입니다.
초음파라는 현재의 의학 기술로 태아가 정상적으로 생존하고 있는지를 의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최초의 시기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6. 잉태설(착상설)
수정란이 모체의 자궁에 착상되는 순간을 생명의 기점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수정후 대략 1주에서 2주 후에 자궁안에 착상되기 때문에 14일 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현대 의학의 발달 전이라 정확한 의미로 썼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하고 소위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알려진 선언문을 통해 밝힌 견해입니다.

7. 수정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되는 순간을 생명의 시작으로 보자는 견해입니다.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기까지는 약 1주일 정도의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잉태설과는 약 1주일 간의 시간차가 발생하며 종교계에서 주로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이상이 현재까지의 인간 생명의 시작에 대한 견해들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낙태 근절 운동에 앞장 섰던 의사의 한사람으로써 그리고 생명의 시작에 관하여 비교적 가까운 일선에서 일했던 산부인과 의사로서 인간 생명에 대하여는 착상(잉태) 순간을 그 시작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인간 생명의 끝에 대하여는 얼마전까지는 심장사를 택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뇌사를 인간 생명의 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우세해지고 있습니다.
뇌가 살아 있더라도 심장이 멎은 상태로 생명 현상을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반면 비록 뇌가 멎었더라도 심장이 멈추지 않았다면 얼마간은  대부분의 생체 활동은 지속됩니다.
그럼에도 의학자들이 뇌사를 심장사보다 더 의미있게 보는 이유는 생명 현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특징인 가역성 때문입니다.
심장이 멈추었다 해도 심폐소생술 등으로 다시 심장을 박동하게 할 수 있지만 뇌는 한번 죽으면 다시 살아 돌아 올 수가 없습니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심장사 대신 뇌사를 인간 생명의 끝으로 보는 의학적 이론이 사회의 공감대를 얻게 되면서  뇌사자의 장기 이식과 같은 의료 기술이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결국 뇌사자의 장기 이식이라는 문제가 인간 생명의 끝에 대하여 우리가 좀더 많은 고민의 시간을 갖게 만들고 현재의 견해가 보편적 견해로 잡리 잡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시작에도 같은 방식의 적용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의 시작에 대한 여러 견해 중 저는 수정설과 잉태설에 대하여만 초점을 맞추어 살펴 보겠습니다.
수정설과 잉태설의 차이는 수정란이 산모의 자궁에 착상이 되었는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요즘 시험관 시술의 발달은 그것이 자연적인 것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과는 별개로 인간 생명의 시작점에 관하여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생각할 필요도 없던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뇌사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에 던져졌던 것과 비슷한 질문입니다.
비록 시험관에서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켰더라도 수정란이 착상의 과정이 없다면 그 상태로 인간으로 발달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 의학 기술이 더 발달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리고 앞으로도 매우 먼 미래까지는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물론 수정이 없다면 착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마찬가지로 착상이 없다면 비록 수정이 있더라도 인간 생명으로 발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 생명의 시작을 수정으로 보는 것도, 착상의 순간으로 보는 것도 다 나름대로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좀 단순하게 보려면 수정과 착상의 관계는 심장사와 뇌사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 싶습니다.
즉 인간의 삶을 단순하게 도식화 하자면 [수정-->착상-->생명 현상-->뇌사-->심장사]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끝을 뇌사로 보든 심장사로 보든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를 것이 없지만 장기 이식이라는 점이 개입되면 뇌사의 인정이 중요해지는 것처럼  대부분의 경우 인간 생명의 시작을 수정으로 보든 착상으로 보든 별 다를 것이 없지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불임 시술이라는 점을 고려하게 되면  생명의 시작을 수정으로 보는가 착상으로 보는가 하는 것은 많은 차이를 낳게 됩니다.
만일 수정의 순간으로 본다면 우리는 시험관에서 수정된 모든 수정란의 폐기도 살인과 마찬가지로 간주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시술조차 하지 말고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장애 요인이 없었다면 소중한 생명을 얻었을  많은 가정이 한 생명의 탄생을 돕는 매우 효과적인 조치 중 하나를 가질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뇌사자의 장기 이식으로 살아난 사람의 가치는 무엇에도 비할 수 없지만 시험관 시술과 같은 불임 시술의 발달로  새로이 태어난 생명은 가치가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수정설이 아니라 잉태설을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사회적 공감대가 자리잡기 바라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위 사진은 Virtual Human Embryo라는 사이트에서 가져온 사진으로 수정란이 착상된 부위의 자궁 표면 모습입니다.)

본 글은 아래 보관함에서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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