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히 흘러온 역사 속, 의학과 의학자들은 인체와 질병을 연구하며 인류의 성장을 뒷받침해왔다. 지금 우리가 무심코 접하는 의료기기, 질병의 치료법 그리고 다양한 수술법들은 어떻게 발견, 발명된 것일까? [디스커버리(Discovery)]와 [영국의학지(British Medical Journal)]등 세계적인 잡지가 선정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생명을 살린 위대한 창조의 순간들을 살펴 보자.



인체해부학
발견시기 : 1543년 / 발견자 :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dreas Vesalius, 벨기에)

16세기 전까지 의사들은 동물해부를 통해 인체해부 자료를 얻었기에 신뢰가 떨어지고 오류가 많이 발견되었다. 때문에, 질병의 정확한 발병원인과 제대로 된 치료법을 찾지 못했고, 치료시기를 놓친 환자가 사망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던 중 16세기 벨기에 의사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인체해부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그리스 초기 갈레노스(Claudius Galenus)의 저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였지만, 베살리우스는 이러한 현셀에 큰 불만을 품었다. 결국 그는 베네치아공화국 파도바 대학에서 강의하던 시절 시체해부와 동물생체해부학 실험을 감행했다. 그 결과 1543년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On the Structure of Human Body)]를 출판했다. 이 책은 이후 300년 동안 과학적 해부학의 중요한 표지로, 해부학계의 상징이 되었다.



천연두 접종
발병시기 : 1796년 / 발명가 :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영국)

20세기에 천연두로 인한 사망자는 동시대에 일어난 전쟁으로 사망한 수의 3배에 달하는 3억 이상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중국에서는 '독으로 독을 다스린다'는 이치에 따라 인두접종술을 발명했지만, 인두를 접종하다가 천연두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도 많았다.
영국의 작은 마을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는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을 찾아 나섰다. 소젖을 짜는 여성이 가벼운 우두에 걸리고 난 뒤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착안해, 우두가 천연두에 면역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1796년 제너는 처음으로 우두에 걸린 여성의 손에서 액을 채취해, 천연두에 걸리지 않은 8세 남자아이의 팔에 접종했다. 6주 뒤 같은 남자아이에게 천연두 액을 접종하자, 아이는 천연두에 전염되지 않았다. 제너는 여러 번 실험을 반복한 끝에 우두접종으로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제왕절개 수술
발병시기 : 1689년 / 발명가 : 랑 루레오(프랑스)

고대 로마제국의 시저는 출산을 하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목숨을 잃은 영아들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죽은 산모의 뱃속에서 영아를 꺼내어 매장해주라는 법령을 내렸다. 이 수술이 바로 제왕절개로, '카이사르 절개술'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1600년 대에 이르기 전까지 살아있는 산모에게서 태아를 꺼내려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다.
1610년 비텐버그(Wittenberg)의과대학의 외과 의사였던 예레미아스 트로트만은 태아의 위치가 비정상적인 산모에게 제왕절개를 실시했지만, 산모와 아기 모두를 살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산모와 영아를 모두 건강하게 살려낸 최초의 기록은 프랑스의 외과 의사 랑 루레오다. 그는 1689년 산모와 영아의 건강은 수술 후 관리에 달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19세기 후기 마취술과 무균처리기술이 발달하고 수술절차가 개선되면서 제왕절개 성공률이 크게 올랐갔고, 보편적인 수술로 자리잡았다.




                                                               청진기
발명가 : 르네 라에네크(프랑스)

1816년 프랑스에서 이름을 떨치던 의사인 르네 라에네크가 귀족 아가씨를 진찰할 때였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라에네크는 심장병을 의심했지만 심장 소리를 듣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고민을 하던 리에네크는 문득 며칠 전 보았던 한장면을 떠올렸다. 나무더미에 앉아 놀던 아이들이 대못으로 나무의 한쪽 끝을 때리면 다른 나무 끝으로 귀를 대고 소리를 들으며 노는 장면이었다.
라에네크는 바로 두꺼운 종이를 가져와 둘둘 말아 원통으로 만든 후 아가씨의 심장부위에 대고 귀를 기울였다. 잡음이 조금 섞이긴 했지만 심장박동 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다. 무사히 진팔을 마친 후 약까지 처방한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둥근 나무관을 만들었고 '청진기'라고 불렀다. 이후 그는 여러 차례 실험을 거듭해 금속, 종이, 나무 등 재료와 길이와 형태가 다른 청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30cm 길이의 양 끝에 나팔모양의 나무가 달린 청진기를 만들어냈다.



                                                                                            출 처 : VOM
                                                                                            정리. 편집실 참고자료. [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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