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의 역사란 말할 것도 없이 인류의 시작과 함께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이 개입된 현재의 분만법은 사실 도입된 역사가 채 100년이 안되었으니까 그리 오래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래 전의 과거에는  출산은 전적으로 가족들이나 친지들만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후 조금 발달되어 집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출산하기도 했는 데 이렇게 산파 또는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출산하는 방법은 서양의 경우 13세기까지는 보편적인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3 세기나 14 세기 정도부터 산모가 위험할 경우 또는 태아가 사망할 경우 태아의 제거를 위하여 그 당시 이발사이자 의사인 남성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경계는 애매하지만 이 무렵부터 의사(대부분이 남성인)가 출산 현장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1588년 무렵에는 난산으로 출산이 지연되는 경우 겸자라고 하는 기구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는 데 득보다는 실이 많았습니다.
1800년대 초에 들어와서 여러 의학 분야가 발달하면서 의사에 의하여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으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반좌식 분만법이 침상에 누어 분만하는 방법으로 바뀐 것도 이 무렵부터라고 합니다.

1800년대 중반에는 무통 마취법이 개발되었으며 1900년대부터는 서구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사가 참여하는 병원 분만이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외래 문물의 도입이 늦어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950년대까지도 산파의 도움을 받는 가정 출산의 케이스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제왕절개 수술은 영어로는 Cesarean section 이라고 하는 데 시저의 절개라는 뜻으로 세간에는 로마의 영웅 시저가 이 방법으로 출산해서 붙은 이름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시저가 생존했던 시대의 의학 기술로는 제왕절개법으로 출산해서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판단되며 공식적으로 제왕절개로 출산하여 생존한 첫 사례는 1500년에 스위스의 낙농업자가 자신의 아내에게 시행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술이 보편적으로 안전하게 시행된 시기는 마취법과 소독법이 발달한 19 세기 말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에 들어서서는 통증을 줄여 주기 위한 라마즈 분만법이라든가 르바이에 분만법, 수중 분만법 등 새로운 분만법이 각광을 받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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