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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이 병원으로서는 제일 한가한 날이다 보니 글을 많이 쓰게 되는군요.
글을 쓰는 것이 한가해서 시간 때우기에도 좋지만 산모들께서 좀더 임신과 출산에 대하여 올바른 정보를 가지게 되어 안전하면서도 편안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아기를 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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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쓰는 글에도 먹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 글을 쓰다보니 이상하게 먹는 이야기에 많이 비유해서 말하게 되지만 그것은 제가 식탐이 많거나 뭐 요리에 일가견이 있어서는 아니고 아무래도 먹거리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친숙한 주제이다 보니 복잡한 문제를 설명하는데  있어 쉽기 때문입니다.
위 이미지는  저희 병원 근처에 있는 "어머니가 차려준 식탁"이라는 식당의 메뉴 중 하나의 캡쳐 사진입니다.
(참고로 저는 그 식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전에 두어번 가본 적이 있을 뿐입니다.)
한서너가지 정도의 코스 요리가 있고 몇가지는 기본적으로 동일하고 몇가지는 메뉴에 따라 다릅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런 코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부페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 의료 서비스는 현재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코스 요리에 가깝습니다.
임신 테스트기야 요즘 대부분 집에서 해서 오시는 경우가 많지만 초기에 태낭의 정상 착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초음파 검사부터, 몇가지 혈액검사와 자궁암 검사로 구성된 산전 초기 검사, 내진 진찰, 임신 3개월 무렵에 태아 목덜미 투명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하는 초음파 검사,   임신 3개월 또는 4개월에 하는 기형아 검사 (듀얼 검사, 트리플 검사 또는 쿼드 검사), 주기적인 초음파 검사, 임신 7개월 무렵에 하는 임신 당뇨검사, 임신 막달에 하는 태동 검사 및 분만전 혈액 검사와 심전도 검사등 대부분 검사들은 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임신 3개월의 융모막 검사나 임신 4개월 무렵의 양수 검사, 또는 임신 6개월 무렵에 하는 정밀 초음파 검사나 입체 초음파 검사, 그리고 흔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천자 검사 등 일부 검사는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안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앞에 든 것들이 기본 코스이고 뒤의 것들은 코스 중 선택 항목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요즘은 산전 검진과 출산 환경에 대하여 산모나 가족들이 좀더 주체적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요구가 커져서 위 항목들 중 일부를 건너 띄거나 아예 하지 않기를 바라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위의 기본 검사로 들은 것들은 대부분은 의학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횟수나 검사 여부가 반드시 획일적인 것은 아니라서 국가나 산모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달리 적용 되기도 합니다.

간단히 점심 한끼를 떼워야 할 때를  제외하고 병원 회식이라든가 제대로 식사를 해야 할 때에 저는 부페를 가는게 나을지 코스 요리로 나오는 식당을 가는게 나을지 고민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부페는 사실 뭐가 맛있는지 잘 모르겠고 항목은 많지만 정작 맛이 없는 경우가 있는 반면 코스 요리는 맛이 좋은 경우도 있지만 때로 과도하게 비용만 많이 들고 제가 원하지 않는 음식이 포함되거나 먹고 싶은 음식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라기는 누군가  비용을 부풀리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양심적으로 제가 좋아하거나 꼭 먹는 것이 좋은 음식들로만 식단을 맛있게 꾸며 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이용하는 환자나 산모의 입장에서 병원도 식당과 마찬가지로 꼭 맞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전에 제가 강남의 모 종합병원에 근무할 때 산부인과 건강 검진 항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그 결정을 책임지는 센터장과  포함 항목을 놓고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항목을 두고 저는 과도한 검사로 포함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그 책임자는 적자가 나는 병원에서 유일하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이 건강 검진이기 때문에 반드시 포함해서 총 검진 비용을 높게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항목은 포함되었는데 이렇듯 병원이란 의료 시술자로서의 공공성 측면과 함께 기본적 운영이 가능해야 하는 영리적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의사로서 경영은 생각지 않고 그저 공공성과 원칙, 양심만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고 그게 가능하다면 좋겠습니다.
그런 곳이 폐업하지 않고 장기간 유지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도 저희 병원에서 실험 중이라 결과는 모릅니다.
십수년간의 의원 경영동안 적자만 더 늘어난 것으로 보아서,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한 거의 모든 병원이 폐업 직전이거나 폐업을 하고만 전례로 보아서는  현재까지로는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에서 그것이 쉽지는 않은 듯 싶습니다.
여하튼 저희가 성공함으로써 다른 많은 동료 의사들에게도 희망이 되고 또한 다소 원칙에서 어긋나게 가고 있는 병원들에게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의료 서비스와 코스 요리 식당 혹은  부페 식당은 많이 다릅니다.
부페 식당은 얼마를 먹고 무엇을 먹던 간에 비용이 같지만 병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코스 요리 식당에서는 맛과 영양과 서비스의 질로 그 비용이 적절한가  평가할 수가 있지만 병원에서는 그 비용이 적절한지 어떤지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운영자의 양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선택하는 것에 따라 비용을 달리내도 되는 그런 식당에서처럼 자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최소한의 음식만을 고르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환경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지금과 같은 의료 환경이 만들어지게 된 주된 책임이 있는 의사로서 (제가 책임있는 의료 정책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정성을 가지고 꼭 필요한 것들(현재 임신 출산과 관련한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들은 다 나름의 필요와 의미가 있는 것들입니다만)로 구성된 식단으로 양심적으로 제공하는 그런 병원이 일반적 모습의 병원이고 그런 병원들이 사라지지 않고 번창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면 의사와 환자 관계가 지금처럼 적대적 관계는 되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여하튼 제가 개업 초기에 썼던 글의 제목이 "망하는 것이 목표인 병원 어디 없나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현재 제살 깍아 먹기라 망한 것과 진배없지만 하여튼 아직 문을 닫지는 않았으니 어쩌면 저도 비겁하게 한 여러가지 것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라 부끄럽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망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그 목표가 달성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아니 솔직한 심정은 그것이 아닙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망하지 않기를,
원칙과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고지식하게 보이지 않기를,
의사로서 제공하는 여러 서비스가 그저 의료라는 것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꼭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모든 것을 이해하여 주기를 바라지만……

바람직한 의료, 원칙적 진료가 가능한 의료, 서로 이해받고 존중받는 의료라는 점에서 갈길은 멀고 오해는 깊고 주변은 너무 척박하기만 하지만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 하루도 보냅니다.

본 글은 아래 보관함에서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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