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얼마 전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유행이었다지요.
저희도 진오비에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단기 결과적으로는 안녕하지만, 과정으로 볼 때나, 장기적으로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저희의 안녕하지 못함에 대해, 진오비에서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군요. 등록된 환자가 아니니까요.
그게, 제가 아픈 아내 진료를 보기 위해 오늘 밤 (벌써 어제군요) 급하게 전화해보고 진오비에서 들은 대답입니다. 오지 말라고. 등록된 환자가 아니라고.
예약한 초진은 내일 오전이지만, 사람이 아픈 건 예약하고 아픈 게 아니잖아요.
다른 병원에서래봐야, 임신 테스터기 두 줄 나와서 임신 확인하러 지금 사는 곳 근처 큰 병원에서 초음파 한 장 찍은 게 전부입니다. 아직 아이도 보이지 않고, 아기집 6.6mm라길래, 조금 멀어도, 안 되면 방을 병원 근처에 얻는 한이 있더라도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신 병원에 가려고 진오비에 초진 예약을 했습니다. 초음파를 찍은 병원은, 큰 건물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크고 화려하지만, 너무 기계적이고 공장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리고 진오비에서 초진 보기 전날 밤, 아내 배가 너무 아파서, 혹시 유산끼가 있는 건 아닌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진료를 급하게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전화했었죠. 진오비에서 외래를 본 적도, 초음파를 찍은 적도 없으니, 우리 환자가 아니니까 오지 말라더군요. 이 문단에 있는 대로 설명을 했고, 다른 병원이래봐야 기록이랄 것도 없다고 해봤지만, 대답은 결국 같았습니다.
원래 보던 선생님이 계시면, 그리로 가는 게 맞겠죠. 그런데 저희처럼, 원래 보던 선생님이 없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저희가 진오비에 초진 예약을 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듯 보여서.
그렇지만 새로이 알게된 놀라운 이야기는, 진오비는 '내 사람'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는 얘기더군요.
그래요.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을 아낄 수도, 그럴 필요도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출산을 진오비에서 했던 사람만 받겠다는 원칙이 아니라면, 많은 첫 예비 엄마아빠들은, 내 사람이기 전에, 그냥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게 되어야 내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요?
한참을 외국에서 살다 잠시 들어와 고국이 낯설기만 하고, 40세가 다 되어 가는 늦은 나이에 첫 임신을 하게 된 아내의 남편은,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만큼이나 또 여러 가지 걱정이 많습니다.
병원을 어디로 가야할까. 내 아내와 아이를 잘 지켜줘야 할 텐데. 멀지는 않을까. 아픈 시간이 정해진 게 아닌데, 책임감 있는 선생님을 찾아야 할텐데.
한국은 제왕절개 비율이 높다던데, 우리는 자연 분만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검사도 많고, 필요없이 비싼 검사도 많다던데. 그런 걱정 없이 그저 믿고 하라는 대로 따를 수 있는 선생님은 어디에 계실까.
인터넷에는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실제 내게 필요한, 제대로 된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무언가 검색을 할 때마다 느끼곤 합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닌지라, 임신의 기쁨을 안은 채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서, 뒤지고 또 뒤져서 알게 된 심상덕 원장님 그리고 진오비 산부인과에 예약을 하곤, 아내와 이런 저런 기대에 부풀었답니다. 분만실을 닫아야 했던 기사, 다시 열었던 기사, 진오비 산부인과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좋은 정보들, 출산 후기들, 출산한 어머니들이 모임을 만들어서 올린 글,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보면서 아내와 저는, 큰 숙제를 해결했다고 들떠있었죠. 동교동 근처 방을 찾는 일만 남았다고 즐거워하던 아내에게 오늘 이후 저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요. 그 좋았던 느낌들은, 사실 그 모임 안에 들어가야만 가능했던 일이라고, 우리같은 이방인에게 그들만의 리그에 진입하는 건, 쉬워보이지만 쉽지 않은 장벽을 뚫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하려니 목이 탁 막힙니다.
진오비. OB/GYN이 아니라 GYN/OB라서 이상하기도, 또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GYN이 먼저고, OB는 나중이었던 건가요.
아니면, 진짜 손님이 아니면 오는 게 비추라서, 진오비인가요, 그래서 저희같은 가짜 손님은 오지 말라는 건가요.
어느 쪽이든 씁쓸하고, 답답하고, 아쉽습니다. 다른 과와는 조금 다르게, 산과는 두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곳이고, 그만큼 사람이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저로써는.
이제 믿고 내 가족을 맡길 수 있는 선생님을 찾는 커다란 숙제를 다시 해야 합니다.
심상덕 원장님, 그리고 5월 27일 밤 제 전화를 받으셨던 간호사님 그리고 당직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안녕하려고 노력중입니다만, 현실은 참 마음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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