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연방 대법원에서 낙태 허용법이 통과된 1973년 1월 22일을 잊지 않는 의미에서 매년 1월 22일 수도 워싱턴 D.C.에서  "생명을 위한 행진 (March for Life)"이라는 이름으로 낙태 반대 운동 캠페인이 열려 수십만명이 참여하고는 합니다.
그 행사에 참여도 하고 또 같은 기간에 열리는 "낙태 반대 미국 산부인과 의사회"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하여 2년전쯤 최안나 선생님과 함께 미국의 뉴욕과 위싱턴을 1주일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세미나 참석을 마치고 관광차 뉴욕의 초고층 빌딩인 록펠러 센터에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록펠러 센터의 1층 로비에는 미국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요즘은 시들해졌지만 한때 미술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 벽화에 대하여도 관심을 가지고 보면서 벽화의 역사에 대한 내용도 찾아보고 그랬습니다.
알고보니 원래 그 벽화에는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원 그림 위에 새로운 그림을  덮어 그렸다는 것입니다.
원래 있던 벽화는 맥시코 출신의 유명한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벽화 였다고 합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역시 멕시코의 유명 여류 화가로 전신 장애가 있는 프라디 칼로의 남편이기도 하며 주로 노동자와 농민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회성 짙은 그림을 많이 남긴 화가입니다.
여하튼 당시 (1933년) 디에고 리베라가 그리던 그림이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 건물주인 록펠러가 그림을 보았더니 벽화의 중앙에  공산주의(사회주의)자인 레닌이 그려져 있었다는군요.
리베라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평소 레닌을 존경하던 터라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철저한 신봉자인 록펠러는 자신의 건물에 레닌의 모습이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아서 레닌의 모습만 지워달라고 요청했지만 리베라는 화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록펠러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록펠러는 할 수 없이 그림이 다 그려질때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그림이 다 그려지고 난 뒤 다른 화가로 하여금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넣도록 했는데 제가 방문했을때 본 벽화가 그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술가와 자본가의 싸움으로 유명했다고 하며 흔히 예술에 대한 자본의 승리라고 일컬어집니다.
물론 리베라는 그 뒤 멕시코로 돌아와 다시 그 그림을 완성시켰다고 하지만 여하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만은 부인할 수 없겠지요.
아래는 리베라가 록펠러 센터 1층 벽에 그렸다는 "Man at the Crossroads"라는 제목의 벽화입니다.  



요즘 SBS에서 "돈의 화신"이라는 드라마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던데 현재 시대는 누구나 인정하듯 자본 아니 더 어감이 확 와닿는 말로 돈이 예술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돈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도덕과 윤리도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도 돈을 고려하지 않으면 병원 운영이 어렵고 환자들도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기가 어렵거나 아니면 형편없는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돈이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돈으로 인해 한 사회의 윤리와 양심도 하찮게 내던져지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의료 영역도 마찬가지도 자본주의에 의해 크게 지배되는 현재의 시스템은 그리 좋은 방식이라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돈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질병의 여부 혹은 그 중증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제때에 받는 것, 의사가 돈에 따라 진료의 내용이나 질을 달리 하지 않고, 돈 때문에 병원의 운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방식으로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지에 대하여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완전한 사회보험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어서 국민들이 일체의 의료 비용 부담을 지지 않고 공평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영국식 의료 제도도 요즘 듣자니까 지나친 대기시간, 의료진의 나태함, 의료 사고 등 문제가 많아서 개선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자본주의 체제에 바탕을 둔 미국식 의료 제도가 바람직한 것이냐 하면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을 들어보면 그것도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양극단의  두 제도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그 중간쯤에 속하는 편이라 할 수 있고 외국에서는 의료 제도에 관한한 비교적 성공한 편으로 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의료계로서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희생에 대하여 불만이 많기는 하지만.
그러나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제도도 그리 완벽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미국식 제도과 영국식 제도의 단점만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식 제도와 영국식 제도의 장점만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아마도 그 방법을 알아내는 것은 개인의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개개인이 열성을 다해 땀을 흘리도록 하는 것이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개인이 희생하고, 중세 계급 사회보다 결코 덜하다고 할 수 없는 경제적 수준에 따른 계층 차별이 없고, 부유층과 권력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제대로 발휘되게 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만큼이나 힘들겠지요.
한마디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장점만을 가져온 그런 제도.
다른 분야에서는 몰라도 의료 분야에서 만큼은 그런 것이 좀 가능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어느 의사 개인 또는 의료계 한 집단의 희생과 각성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회의 수많은 사람, 리더들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고 거의 모든 국민들의 의식의 틀이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 것인데 솔직히 노력한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사회는 돈의 노예로 전락해 가고 있기 때문에 마약을 끊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돈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돈신이 지배하는 세상은 과연 언제쯤이나 사라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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