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양치기 소년이 살았는데 양들이 말썽을 피우는 일도 없고 해서 무료하게 지내면서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늘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니 사람들이 몰려오고 하는 것이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번인가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은 진짜로 늑대가 나타나서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도 거짓말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도 도와 주러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양들은 모두 늑대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위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많이 읽어서 이미 익숙한 이솝 우화 중에 "양치기 소년" 이라는 우화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삶에도 어쩌면 본의 아니게 그런 양치기 소년과 같은 경우가 생겨서 입니다.
앞 글 "초음파 검사, 태동검사의 의미--두 산모를 보면서"(http://gynob.kr/thread-753-1-1.html)에서 쓰기도 했지만 산부인과 의사로서 저도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양치기 소년처럼 결과적으로 산모들께 거짓말을 하게 되고 겁을 주게 된 경우들이 없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경험은 산부인과 분야 뿐 아니라 의료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종종 겪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의사가 가진 지식과 정보라는 것도 한계가 있고 또 진단의 도구로 삼는 의료 장비들도 100% 환자의 건강을 알아 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런 점에서의 한계 혹은 고충이랄까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더불어 진료 일선에서 항상 고민하게 되는 "과소 진단(under diagnosis)" 과 "과진단(over diagnosis)", "민감도(sensitivity)" 와 "특이도(specificity)"에 대하여도 간단히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산부인과에서 쓰이는 태동 검사나 초음파 검사 뿐 아니라 의사가 진단의 도구로 삼는 여러가지 검사들은 민감도와 특이도를 가지고 있는데 민감도라는 것은 어떤 질병 혹은 이상이 있을 때 정말 이상이 있는지 알아내는 정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상이 있을때 그런 경우를 모두 잡아내면 민감도가 100%가 되는 것이고 그런 이상 여부를 잘 검출해 내지 못하게 되면 민감도가 낮은 검사라고 말하게 됩니다.
반면 특이도라는 것은 어떤 이상이 있다고 검사에서 드러났을 때 정말 이상이 있는 확률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특이도가 높다는 것은 해당 질병을 정확히 반영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검사는 민감도와 특이도가 모두 높지만 어떤 검사는 민감도는 낮아서 검출은 잘 되지 않는 대신 특이도가 높아서 검사에서 이상이 있다고 하면 정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검사도 있고  반대로 어떤 검사는 민감도는 높지만 특이도가 낮아서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잘 알아 내지만 정작 특정 질병이 맞는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확률은 떨어지기도 합니다.

산부인과의 경우라면 태동 검사의 일종인 자극 스트레스 검사("태아의 건강을 평가하는 여러 방법들" http://gynob.kr/thread-727-1-1.html 글 참고)의 경우 민감도는 낮지만 특이도는 비교적 높습니다.
따라서 그 검사로 태아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잘 검출해 내지는 못하지만 이상이 있다고 결과가 나올 경우 정말 태아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초음파 검사든 악성 종양을 예측하는 종양 표지 물질 검사든 의료 현장에서 100% 민감도에 100% 특이도를 가진 검사는 없기 때문에  검사의 결과는 환자의 증상이나 다른 검사의 결과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 해도 100%의 정확성으로 진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래서 일본에서 명의로  소문난 어떤 내과 의사는 자신의 일생을 통털어 오진을 하지 않고 정확하게 진단한 예가 5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의사는 자신의 진단에 대하여 오진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설명도 하고 대응을 합니다.
그리고 오진을 하게 될 경우 오진의 종류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과소진단"과 "과진단"이 그것입니다.
과소진단이라는 것은 실제의 병보다 가벼운 병으로 진단을 하였다는 뜻인데 넓게는 이상이 있는데 이상이 없다고 진단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과진단은 실제 병보다 무거운 병으로 진단을 하였다는 뜻입니다.
의료 전문가들은 최대한 오진을 줄여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오진하게 되는 경우라면 과소진단보다는 과진단이 낫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임신 중인 산모의 경우 태아가 이상이 없음에도 이상이 있는 것으로 과진단을 할 경우 필요가 없는 제왕절개를 하게 될 뿐이지만 태아가 즉각적 조치가 필요한 이상이 있음에도 별 문제가 아니라고 과소진단을 하게 되면 심할 경우 태아의 생명이 위태롭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중의  하나가 임신 중에 간혹 발생하는 전치 태반입니다.
전치 태반은 태반이 자궁의 입구를 막아서 자연분만이 어려운 경우인데 심하지 않은 경계성 전치 태반의 경우 간혹 태아의 머리에 가려서 태반의 경계가 불분명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전치 태반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태반이 조금 아래쪽에 위치한 것일 뿐 전치 태반은 아닌지 확실히 판단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때 실제로 전치 태반인데 과소진단으로 별 문제 없다고 판단하여 자연분만을 시도하게 되면 많은 출혈로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해 지게 됩니다.
반면 실제로 전치 태반이 없는데 과진단으로 전치 태반으로 진단을 하여 제왕절개를 하게 되면 특별히 태아가 위험할 것은 없지만 산모가 하지 않아도 될 제왕절개라는 수술을 하게 되는 손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애매한 경우에는 전체적  기대값 또는 안전이라는 차원에서 전치 태반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전치 태반에 준하여 대응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의료란 이런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 쉽지 않은 영역입니다.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포함하여 많은 의사들은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고자 많은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의사의 오진은 그저 양 몇마리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산모와 태아 또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 글은 아래 보관함에서 추천하였습니다.

#2 심상덕 등록시간 2013-03-08 18:56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다는 데 요즘 그 의미를 어렴풋이 느낍니다.
사람의 몸은 과학이나 수학처럼 칼로 잰 듯 정확하게 예상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종종 예상과 어긋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술은 하나 하나의 작품이 모두 다르고 이 세상에 같은 작품은 없는 것처럼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고 매번의 출산이 다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점점 더 머리를 이용해야 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가슴이 살아 있는 예술가로서의 의사가 더 필요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감성보다 지성이 더 우세한 저와 같은 의사는 적응이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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