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이 다 그렇지만 특히 의사 그중에서도 산부인과 의사가 하는 일이란 거의 대부분이 무언가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하는 일입니다.
촉진제를 써서 유도분만을 해야 하는게 나을까 아니면 더 기다려 볼까?
제왕절개 수술을 권할까 아니면 일단 흡입 분만을 시도해 볼까?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할까 아니면 좀더 기다릴까?
이 약을 쓸까 아니면 저 약을 쓸까?

아기를 낳는 당사자는 산모 자신이니 사실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과 관련해서 하는 일이란 정상 진행 과정인지 판단하고 어떤 쪽의 길로 안내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이 거의 다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크게 두가지 점이 영향을 끼칩니다.
하나는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이성적 측면 즉 의사로서 배운 지식과 그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정보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으로서의 감성적 측면 즉 한 인간으로서 산모와 아기를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이성적 측면에서의 고려라는 점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산부인과 의사가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한 인간으로서 감성적이고 혹은 양심적인 측면에서의 고려라는 점에서는 특별히 산부인과 의사라고 하여 산모와 아기를 가장 잘 배려한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점은 아마도 산모 당사자나 혹은 산모의 남편이 가장 진지하고 가슴 깊이 고민할 것입니다.

요즘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의료 분쟁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산부인과 의사의 지식과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상호 신뢰의 부족 또는 의사가 양심적으로 또는 최선을 다해 원칙적으로 진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심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꼭 분쟁 때문이 아니라도 산모와 아기 그리고 의사를 위해서라도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 산부인과 의사가 할 수 있는 것 역시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머리를 빌려 주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가슴을 빌려 오는 일입니다.

머리를 빌려 준다는 의미는 어떤 결정의 순간에 의사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산모 당사자 혹은 남편에게 솔직하고 충실하게 전달하여 당사자와 남편이 거의 산부인과 의사의 수준에서의 지식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여 결정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가슴을 빌려 온다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가 산모 당사자나 가족의 입장과 감정에 완전하게 합일되어 결정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결정의 주체는 의사의 머리를 빌린 당사자와 가족이 되는 방법이거나 아니면 당사자와 가족의 가슴을 빌린 의사가 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의사는 어디까지나 조언자이자 조력자이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산모 당사자와 가족이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의사로서 당사자와 가족이 어떤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누가 결정했던 결과적으로 누가 주체적으로 결정을 했는가 하는 것은 위의 상황에서 어떤 쪽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됩니다.

저는 머리를 빌려주거나 가슴을 빌려 오는 일이 모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더 쉬운 것을 고르라면 머리를 빌려 주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100% 같을 수는 없겠지만 충실히 환자와 가족의 입장이 되어 보기 위해 모든 의사들이 가슴도 빌려 오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지만 솔직히 잘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 아마도 지금과 같이 환자 혹은 산모와 의사간에 신뢰가 없고 의사 집단이 일반 대중의 비난을 받게 되는 원인의 하나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황이 분명해서 그리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아니고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저는 의사로서의 제 머리를 빌려 주어서 당사자와 가족이 진정한 의미에서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을 더 선호합니다.
사실 이러한 결정 방식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너무 우유부단하거나 책임 회피적인 대응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가슴을 빌려와서, 나와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인 환자나 산모에 대한 의사의 결정과 조언과 조치가 거의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내리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신뢰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머리를 빌려 주어서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도록 돕는 방식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러한 조언이랄까  머리랄까 지식도 양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전달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머리를 빌려주던 가슴을 빌려오던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간의 신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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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8437 [2015-06-0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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